<특집 다큐> 문재인정부 검찰개혁 잔혹사

2021년 12월 30일 20시 06분

5년 전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됐을 때, 많은 국민은 국정농단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검찰을 비판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정의와 공정은 외면한 채 정치권력과 손잡고 진실을 은폐하고, 때로는 스스로 정치권력화한 검찰의 행태와 시대에 맞지 않는 검찰권을 지적하는 목소리였다.
촛불시민의 열망을 한 몸에 안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온 국민이 ‘검찰개혁’을 핵심국정과제로 주문한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 완수’를 장담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은 좌표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 등 일부 제도적 과제는 달성했지만, 검찰개혁의 최종 목표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지는  못했다.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내는 데도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대통령 선거를 두 달여 남긴 지금, 뉴스타파는 지난 5년의 핵심 장면들을 통해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발자취를 되돌아봤다.
결정적 장면 1.
2017년 5월 19일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한다고 발표한다. 국정농단 사건 공소유지를 수행할 적임자라는 이유였다. 발표를 듣던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와’ 하는 탄성이 뿜어져 나왔다.
이 발표가 있고 얼마되지 않아 ‘윤석열 측근’으로 분류되는 검사들이 서울중앙지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윤석열과 함께 ‘대윤 소윤’으로 불리던 윤대진 검사가 부산지검 2차장에서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박영수 특검 등 윤석열과 여러 특수사건에서 손발을 맞춰온 최측근 한동훈 검사가 3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렇게 모인 ‘윤석열 사단’은 두 전직 대통령(박근혜, 이명박), 이재용 삼성 부회장, 양승태 대법원장 등을 상대로 이른바 ‘적폐 수사’에 돌입한다.
결정적 장면 2.
2019년 7월 26일
대검찰청 간부 인사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신임 검찰총장에 임명한다. 전임 문무일 검찰총장에서 무려 다섯 기수나 내려간 파격인사였다. 문 대통령은 “정치검찰의 행태를 청산하고, 수사권 조정에 적극 나설 것” 등을 윤 총장에게 주문했다. 윤 총장은 “헌법 정신에 비춰서 깊이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바로 다음날인 7월 26일, 윤 총장은 대검찰청 간부인사를 단행한다. 총장을 보좌하는 대검 부장 6자리 중 5자리에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특수통 검사들이 포진한 전례가 없는 인사였다. 심지어 공안부장에도 특수 검사 출신인 박찬호 검사가 임명됐다. ‘윤석열 사단’, 정확히 말해 윤석열을 중심으로 한 특수 검사들의 전성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하지만 이 인사가 훗날 파국의 전조곡이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결정적 장면 3.
2019년 8월 27일
조국 장관 후보자 압수수색
2019년 8월 27일,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검찰이 조국 후보자 일가를 겨냥한 강제수사에 나선다. 공개 수사 첫 날에만 20곳이 넘는 압수수색이 전방위로 진행됐다. 조국 후보자 자녀 입시 의혹과 관련된 대학들, 조국 일가가 관여하거나 소유한 사모펀드, 웅동학원 등이 주요 대상이었다. 당시 압수수색은 박상기 법무장관에게도 보고되지 않았다. 이날 오후, 박 장관은 서울 서초구 모 호텔에서 윤석열 총장과 한시간 가량 만났다. 박 장관은 “윤 총장이 이 자리에서 조국 후보자 부인이 관련된 사모펀드 의혹만 주로 언급하며 ‘조국 낙마’를 직접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시작된 검찰 수사는 이후 끝도 없이 폭주했다. 심지어 검찰은 조국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일 밤, 조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표창장 위조 혐의로 기소한다. 소환조사 한번 없이 이뤄진 기소였다.
결정적 장면 4.
2020년 7월 2일
추미애 법무장관 수사지휘권 발동
2020년 7월 2일, 추미애 법무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다. 내용은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 관여된 의혹이 있는 이른바 ‘검언유착’ 수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라”는 것. “법무부장관은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 감독한다”는 검찰청법(제8조)에 따른 조치였다. 그로부터 세 달 뒤, 전현직 검사들에게 술접대를 했다고 폭로한 라임사건 핵심 관계자,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옥중 서신이 공개됐다. 추 장관은 두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윤 총장이 라임사건 수사, 부인과 장모, 그리고 본인 관련 수사와 감찰에서 손을 떼라”는 내용이었다. 윤석열 총장은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와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11월 24일, 추미애 장관은 판사 사찰, 채널A 사건 수사 및 감찰 방해 등의 이유로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 및 직무배제를 발표한다. 얼마 뒤 법무부징계위원회는 ‘정직 2개월’을 결정했다. 하지만 윤석열 총장은 곧바로 법무장관의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뒤, 2020년 12월 26일 업무에 복귀했다. 세 달 뒤인 2021년 3월 4일, 윤석열 총장은 검찰총장 임기를 네 달여 남기고 스스로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윤 총장은 대검찰청을 떠나면서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이상 지켜보고 있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정적 장면 5.
2021년 9월 2일
고발사주 의혹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이 막 시작되던 2021년 9월 2일, 인터넷 언론 뉴스버스는 2020년 4월 총선 당시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검찰 출신인 김웅 국민의힘 후보를 통해 유력 정치인들과 언론사 기자들을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의혹을 보도한다. 이 사실을 언론에 제보한 사람은 조성은 씨, 그는 2020년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조성은 씨는 고발장이 전달된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발장이 조 씨에게 전달된 때는 4월 3일과 8일. 그보다 앞선 4월 2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보다 사흘 전인 3월 31일에는 MBC를 통해 채널A 이모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관련된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이 보도됐다. MBC 보도 이후 불과 3일만에 고발장이 만들어져 야당에 전달됐고, 한 달 뒤인 4월 8일에는 최강욱, 황희석 당시 열린민주당 후보에 대한 고발이 실제로 이뤄졌다. 손준성 등 검찰 관계자들이 작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고발장에는 윤석열 본인, 그의 처 김건희 씨, 윤 총장의 최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피해자로 적시돼 있었다. 고발사주 의혹에 대해 윤석열 후보는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021년 11월 5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이 자리에서 그는 스스로를 “조국의 위선과 추미애의 오만을 무너뜨린 공정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검찰개혁의 핵심 목표는 두 가지였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다. 2016년 촛불정국 때도, 2017년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원하고 요구한 것은 이 두가지 목표를 완수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촛불정권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는 이 두가지 과제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제도개혁과 실행을 미루고 인사에서 실패한 탓이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속에 제도 개혁을 통한 검찰개혁은 빛을 잃었다. 윤석열로 대표되는, 사람에 의지한 인사·제도개혁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이에 더해 문재인 정부가 선택한 검찰총장이 야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2020년 12월, 20여 명의 국회의원들은 검찰개혁의 최종 목표인 ‘검찰의 수사권 기소권 분리’를 목표로 검찰청법 폐지 법안을 준비했다. 하지만 정치권 내부 이견과 검찰의 반발에 부딪혀 발의도 못하고 좌초됐다.
또 다시 검찰개혁을 외치는 여당(더불어민주당)과 검찰총장 출신 인사를 대선 후보로 선출한 야당(국민의힘)이 맞붙는 대선까지는 이제 두 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제작진
기획김용진 최승호
내레이션백경훈
타이틀, 그래픽정동우
웹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영상협조KTV
음악Habi Music 이지영 이지현 최정은
녹음스톰 권민석 최재옥
데이터최윤원
영상취재정형민 김기철 최형석 신영철
편집박서영
글, 구성김근라
취재한상진
연출송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