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이동관 특보는 탄핵이 두려웠을까?

2023년 07월 14일 10시 15분

남은 임기 두 달 뿐이었는데 왜 잘랐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면직안을 재가한 날은 지난 5월 30일. 한 위원장의 임기가 불과 두 달 남은 시점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여권의 온갖 압박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틴 사람을, 임기를 불과 두 달 앞두고 ‘찍어낸다’는 건 누가 봐도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일이지만 현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면직 절차가 진행되자 여권 실세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당연한 것이라며 두둔했다.
“임기가 2달밖에 안 남아 탄압할 이유도 없다. 뭐하러 탄압하느냐, 범죄 혐의가 있어 면직하려는 거다. 두달 참으면 되는데 왜 못참겠냐. 범죄 당사자를 두는 것이 직무유기라 면직에 처한 것이다”(권성동 국민의힘 의원/5월 24일)
하지만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면직 당시 이런 우려를 나타냈다.
“2개월을 못 기다리고 면직이라는 강수를 둔 것은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경영진 교체 등이 이른바 ‘언론 장악 플랜’에 따라 차차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한상혁 방통위원장/5월 31일)
한 위원장의 면직 전후에 벌어진 일들을 살펴보면 미리 준비된 각본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앞뒤 순서에 맥락도 있고 짜임새도 있어 보인다.

직무대행 체제 방통위에서 벌어진 일

변곡점은 지난 5월 2일, 검찰이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불구속 기소한 날이었다.
다음날인 5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한 달 동안 미뤄왔던 대통령 몫의 방통위 상임위원 자리에 이상인 변호사(전 인천지법 부장판사, 전 KBS 이사)를 지명했다. 이상인은 2008년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BBK 특검'에 참여했다. 이상인의 임명으로 방통위 상임위원 구성은 여야 1(김효재)대 2(한상혁, 김현)에서 2(김효재, 이상인)대 2(한상혁, 김현) 동수가 됐다.  
이후 인사혁신처는 한상혁 위원장에 대한 면직 절차를 개시했고 5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면직안을 재가했다. 이로써 방통위 구성은 여야 구도가 2대 1로 역전됐다.
방통위 구도의 역전이 가능했던 것은 국회에서 야당 몫으로 3월 30일에 추천한 최민희 전 의원을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고 계속 보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방통위의 여야 구도가 2대 1로 역전되자마자 이례적인 일들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면직 일주일도 안 돼 대통령실이 KBS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안을 방통위에 제시했다. 대통령실 권고 11일 만에 방통위는 시행령 개정안을 통상적인 40일이 아닌 단 10일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 기간 중 접수된 의견의 90%가 반대의견이었음에도 방통위는 분리징수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30년 동안 운영해오던 KBS 수신료 통합징수제도가 분리징수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한 달 남짓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방통위는 KBS 윤석년 이사 해임 건의안을 의결했고 대통령은 재가했다. 이제 KBS 이사진 가운데 1명만 더 바뀌면 방통위처럼 여야 구도가 역전돼 KBS 사장 교체가 가능해진다.
대통령이 방통위 사무처장에 방통위 출신이 아닌 감사원 출신을 임명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 감사원과 검찰, 국세청에서 감사 인력이 방통위에 대거 파견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아직 문재인 정부의 인사가 수장으로 남아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EBS에 대한 검사에 투입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직무대행 체제에서는 벌어지기 힘든 수준의 일들이, 그것도 임기가 8월 23일까지로 얼마 남지 않은 김효재 직무대행 체제에서 주도면밀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동관 대통령 특보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이동관 특보는 탄핵이 두려웠을까?

야당은 이동관 대통령 특보(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방통위원장 내정설이 나온 뒤부터 학폭 논란과 MB시절 방송장악 연루 이력을 들어 방통위원장 지명을 반대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동관 특보 임명 강행은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신료 분리징수 같은 이슈가 이동관 방통위 체제에서 터졌다면 야당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탄핵 사유로 삼을 수도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법 6조 5항에 ‘국회는 위원장이 그 직무를 집행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과반 찬성이 있으면 되는데, 지금의 여소야대 구도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탄핵이 되면 직무상 권한이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최종 심판이 나오기까지는 6개월이 걸린다. 이태원 참사 책임 문제로 지난 2월 8일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선고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이동관 특보가 방통위원장이 된 이후 야당이 대다수인 국회에서 탄핵받아 직무권한이 6개월이나 정지된다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사전에 자신에게 유리한 방송 지형을 만들려던 여권의 계획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방통위원장 탄핵 사유가 될 만한 일들은 김효재 직무대행 체제안에서 최대한 마무리 지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김효재 직무대행의 임기는 오는 8월23일까지다. 현재의 여야 2대1이란 방통위원 구도가 유지되는 시한도 딱 8월23일까지다. 한상혁 위원장의 임기를 겨우 두 달 남겨놓고 면직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만들어놓은 그야말로 '최적조건'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8월23일까지의 시간을 “매우 위험한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남은 기간 수신료 분리징수만큼 임팩트 있는 일이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 중의 하나가 KBS 이사회 구도 역전을 통한 사장 교체 작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제작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