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이태원 특별법' 거부... 그럼에도 진상조사는 필요하다

2024년 01월 30일 17시 34분

오늘(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이 의결되고 불과 몇 시간 만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절규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정부·여당은 이렇게 말해 왔다. '이미 진상규명은 완료됐다', '특별법을 통해 만들어질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편파적이다', '특조위 권한이 무소불위다'.
정부·여당은 "피해자 지원에 온 힘을 기울였다"고도 강조했다. 오늘 오전에도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 재의요구 및 피해지원 종합대책 관련 브리핑'에 나와 ▲정부가 이태원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국가애도기간을 지정한 점 ▲전국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한 점 ▲장례 기간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이 여러 차례 합동분향소와 사고 현장을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 점 ▲유가족마다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장례를 지원한 점을 강조했다. 정말 그럴까.

이태원 참사는 명백한 '사회적 참사'다

가습기·세월호 참사를 조사했던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사회적 참사'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회적 참사'에서 쓰인 '사회적'이란 말은 이 중 무엇에 해당할까? 법적 책임 이상을 물어야 할 때, 개인적 차원에서는 대처하기 힘든 구조적 어려움에 봉착할 때, 국가 기능의 최고 한계선까지 동원되어야 할 때 참사는 비로소 사회적 참사가 되는 것인가?..(중략).. 그러나 우리 모두가 적어도 합의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참사'라고 명명하는 순간, 이는 더 이상 개인의 불운이나 기술적 오류에 의해 발생하는 재난·참사가 아니라는 것이고, 우리 모두가 같은 위험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이에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대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으로서는 스스로의 능력이나 예지, 혹은 동료와의 개인적 결합에 의해서도 유효하게 대비할 수 없는 본질적 위험을 우리는 흔히 '사회적 위험'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참사라는 말은 재난·참사를 사회적 위험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보아야 한다.

진성영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안전사회국장 칼럼 <사회적 참사란 무엇인가?> 중
이 설명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는 분명 '사회적 참사'였다.
이태원 참사는 특정 개인의 잘못으로만 생긴 일이 아니었다.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신고에도 출동하지 않은 일부 경찰관들이 특별히 나태해 벌어진 일이었을까? 불법 건축물로 골목을 좁게 만든 해밀톤 호텔 측이 특별히 부도덕해서 벌어진 일이었을까? 참사 조짐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던 박희영 등 용산구청 공무원들이 다른 지방치단체보다 더 무책임해서 벌어진 일이었을까? 일례로 코로나 19 시기를 제외하면, 용산구청이 이태원 핼러윈 축제 때 인파관리를 위해 서울교통공사에 무정차 통과를 요청하고, 안전 대책을 세웠던 적은 없었다. 핼러윈 축제에 대한 용산구청의 방치는 박희영 이전에도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현재 이태원 참사로 재판을 받고 있는 공무원 23명의 형사적 잘못이 참사의 원인', '경찰·검찰 수사로 진상규명 완료'라는 정부·여당의 주장은 틀렸다. 
어제(29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하지 말아달라"며 서울 이태원역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윤석열·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진상조사' 필요한 이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진상 조사는 사회적 원인에 대한 물음을 해소하는 과정이다. 밝히고, 기록하고, 대책을 세워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선 여러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지만, 그 중 '경찰은 왜 압사 위험을 호소하는 112신고 11건을 듣고도 출동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예로 들어 보자.
취재진은 한 경찰관으로부터 "원래 이태원, 홍대 같은 곳은 사람이 많고, 출동 건수도 전국 최고 수준이니까 '끼었다', '사람이 너무 많다'는 신고에 하나하나 대응하기 어렵다. 누가 와도 그랬을 것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 다른 경찰관도 비슷했다. "홍대도 금요일이면 폭행, 성추행, 주취 난동, 마약 등 강력 신고가 워낙 많이 들어온다. 그런 상황에 '사람에 끼어서 힘들어요'라는 신고는 후순위에 놓일 가능성도 높다."
경찰관들의 말은 이태원 참사 당일 용산경찰서 상황실의 무전 녹취록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압사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반복해 들어오는데도 "특이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하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 모 경사 : 둘폭(일반폭행)인가, 떼폭(집단폭행)인가.
용산경찰서 상황실 근무자: 그런 건 아니고,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계속 들어온다.
최 모 경사 : 특이한 상황인가.
용산경찰서 상황실 근무자: 특이한 상황은 아니다. 신고가 계속 들어온다.  

2022년 10월 29일 밤 10시경 용산경찰서 상황실 무전녹취록 중
뉴스타파가 만난 경찰 두 명의 말과 녹취록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혹시 경찰 내부에 압사 위험 신고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관행, 안전 관련 신고보다 강력·형사 사건 신고를 더 우선시하는 관행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태원 참사 당일 압사 위험을 알린 112신고 11건 중 현장 출동이 의무인 코드0 코드1 신고 8건 중 경찰이 출동한 건 1건 뿐이었다. 박상은 재난사회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게끔 만드는 조직의 우선순위 혹은 문화가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 정해진 방식이 아니라 어떤 관행에 따라 해결하는 문화가 유구하게 있을 수 있고, 그게 조직 내에서는 너무 당연했을 수 있다. 그런 구조적 원인을 밝혀내는 게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관행이나 구조적 원인(문제)은 법원 판결문이나 국정조사 보고서에 나오지 않는다. 재판이나 국정조사 모두 피고인의 형사적 책임, 특정 사람의 잘못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오해가 많지만, 이태원 특별법에 있는 특조위는 단순히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물론 범죄 혐의자를 고발할 권한과 의무를 갖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게 된 사회적 원인과 책임을 정리·기록하는 것이다. 그걸 못하면 진상조사는 하나마나 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법적 처벌을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우리 사회 대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내러티브(이야기)'를 못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추모 등 다음 단계로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의 진짜 목적은 바로 이 이야기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자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서울 이태원역에 설치된 추모 공간의 모습. 

참사 이후도 진상조사 대상이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진상조사의 대상 기간은 참사 전부터 참사 당시까지 만이 아니다. 참사 이후 우리 사회와 정부의 대응, 즉 후속조치는 어땠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오늘 정부 브리핑에서 그 동안 정부가 한 이태원 참사 관련 각종 조치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자랑했다. ▲이태원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국가애도기간을 지정 ▲전국에 합동 분향소 설치 ▲장례 기간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이 여러 차례 합동분향소와 사고 현장을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 것 ▲유가족마다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장례를 지원한 점 등이다.
그런데 방 실장의 주장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바로 잡으면 이렇다.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고, 유족에게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를 전국에 설치했다. 참사 직후 곧바로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금 규모를 공개해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시체 팔이'를 한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행안부는 유족 명단을 대부분 갖고 있었지만, 유족 간 접촉을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알음알음 자력으로 다른 유가족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해야 했다. 빗발치는 2차 가해에 대해서도 정부는 경찰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만 대응을 맡겼다. 결국 2차 가해 대응은 참사 이후 두 달 간만 반짝 진행됐고, 이후엔 별다른 실적도 없었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여러 외국인 유가족들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들에게 어떠한 정보 제공, 의료 지원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 없어서'라는 이유였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 중 외국인은 26명이다. 
앞에서 정부가 열거한 사례는 과연 '적절한 행정'이었나. 정부가 과연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했는지 파헤쳐야 한다. 그래야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좀 더 나은 행정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이태원 특별법에는 "이태원 참사의 발생원인, 수습과정, 후속조치 등 사실관계와 책임소재의 진상을 밝힌다"고 돼 있다. 
이태원 참사 직후인 2022년 10월 3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같은 해 11월 4일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한 진짜 이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태원 특별법은 원안에서 일부 수정된 것이다. 특조위원을 뽑는데 유가족은 전혀 참여할 수 없게 됐고, 여당(4명), 야당(4명), 국회의장(3명)에게 각각 추천권이 돌아갔다. 유가족이 특별검사 임명을 국회에 요청할 수 있는 권한도 사라졌고, 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는 요건도 '정당한 이유 없이'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2회 이상'으로 강화됐다. 특조위 활동 기간도 최대 1년 6개월에서 1년 3개월로 짧아졌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특조위의 권한이 너무 크고, 구성이 편파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유도 비슷하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11일 '여당판' 이태원 특별법을 발의했었다. 이 법에는 진상조사 관련 내용이 아예 없었다. 피해자 지원과 배·보상, 추모시설 설치에 대한 조항 뿐이었다. 아예 '피해자 보상 분과위원회'를 설치하자고 돼 있었다. '보상은 필요 없다. 진상조사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외친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다. 대통령이 거부한 이태원 특별법은 유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배·보상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없었다. 
오늘 대통령실도 이태원 특별법을 거부하며 '신속한 보상·지원 대책'을 만들겠다고 했다. 반면 진상조사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만약 정말 특조위 권한과 구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면, 국회 내에서도 충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걸핏하면 집단 퇴장했고, 법안 수정을 위한 안건조정위원회에도 불참했다. 대통령실은 한마디 말도 없었다. 
결국 정부와 여당이 이태원 특별법을 거부한 진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진상조사 자체에 대한 거부다. 
오늘(3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기자회견에서 정의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규탄했다.  

대통령의 권력욕보다 유가족의 간절함이 더 크다

정부·여당은 처음부터 이태원 특별법을 '총선용 악법'으로 규정해 왔다. 이번 거부권 행사도 총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진상조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 이태원 참사가 다시 주목받게 되면, 총선에 악재가 될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는 2027년 5월까지다. 3년 남은 대통령의 권력욕보다 더 크고 강력한 것은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의 비통함과 간절함이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의 재통과를 위해선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야당만으로는 무리다. 22대 총선 전 남은 임시국회 본회의는 다음 달 1일, 29일 열린다.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총선 국면이라 임시국회 개회를 기대하기 힘들다.
곧 열릴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이태원 특별법에 찬성하길, 그래서 유가족들의 비통함과 간절함에 조금이라도 호응하길, 기대해 본다.  
제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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