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올리면 고용 쇼크? 전경련과 언론의 합작 꼼수

2021년 07월 13일 17시 24분

-경제단체의 “주문 제작 보고서” 
-부정확한 추정을 언론이 사실처럼 호도
-연구자도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 출신
시급 9160원, 월급으로는 191만 4440원. 7월 12일 밤 늦게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 내년 치 최저임금이다. 올해보다 5.1% 올렸지만 노동계 숙원이자 문재인 정부 공약인 1만 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올해도 ‘올려야 산다’는 노동계와 ‘올리면 망한다’는 사용자가 맞선 모습이 되풀이 됐다. 기업을 회원으로 둔 경제단체는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면 저임금 노동자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을 퍼뜨렸다. 이 예측에 살이 붙어 ‘최저임금발 고용 쇼크’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고 ‘1만 원 불가’ 논리가 횡행했다. 그 밑바탕엔 추정치를 사실처럼 호도해 여론을 지배하려는 꼼수가 숨어 있었다. 불러 준 대로 받아쓰는 언론 덕에 ‘추정치’는 사실의 날개를 달고 인터넷에 도배됐다.

최저임금 심의 시작하자마자 ‘고용 쇼크’ 기사 도배

최저임금위원회가 2022년 최저임금 심의를 시작한 지난 6월 15일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면 일자리가 30만 4000개나 줄어들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중앙·문화·세계일보, 한국·매일·서울경제, YTN·TV조선·한국경제TV, 뉴시스·머니투데이·조선비즈를 비롯한 50여 매체가 같은 날 같은 내용을 전했다. 이어 사설과 칼럼을 통해 ‘최저임금발 고용 쇼크’ 주장이 되풀이 됐다. 
이른바 ‘일자리 쇼크’ 주장의 뿌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낸 보도자료. 한경연이 최남석 전북대 교수에게 의뢰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시나리오별 고용 규모’를 짚어 봤더니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인상될 경우 최소 12만 5000개에서 최대 30만 4000개의 일자리가 감소될 것”으로 추정됐다는 것이 보도자료의 골자였다. 
이들 매체는 <한경연, “최저임금 1만 원 되면···일자리 30만 개 사라질 수도(중앙일보)”> 있다거나 <“최저임금 1만 원 이상” vs “일자리 30만 개 줄 것(한국경제TV)”>이라며 한경연 주장을 그대로 받아썼다. 심지어는 <최저임금 1만 원 땐 일자리 30만 개 사라진다(매일경제)>고 단정해 일자리 상실 공포에 기름을 부었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인상 수정안으로 1만 800원을 내놓은 6월 24일 한경연은 일자리 감소 추정치를 49만 4000개로 끌어올렸다. 김용춘 한경연 고용정책팀장이 “최남석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1만 800원으로 인상될 경우 손실되는 일자리 규모는 최대 49만 4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 것. 언론도 김 팀장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낸 기사 <재계 “최저임금 1만 800원 되면 일자리 49만 개 증발(뉴시스)”>로 맞장구쳤다.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된 6월 15일부터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진다는 기사가 거의 모든 매체에 실렸다. 

누구도 증명 못할 최저임금발 일자리 변화

최남석 교수의 보고서에 나오는 수치는 모두 ‘추정’이다. 한국복지패널의 2017년과 2019년 사이 개인패널자료를 사용해 최저임금 변화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의 일자리 감소 규모를 추정한 것. 최저임금이 전년보다 16.4% 올라 시급 7530원이 됐던 2018년에 15만 9000개, 10.9% 올라 8350원이 된 2019년에 27만 7000개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전체 취업자 숫자를 보면 양상은 다르다. 2018년에는 취업자가 9만 7000명 늘었다. 해마다 2~30만 명씩 늘어나는 예년의 경향과 비교해 증가 폭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9년 취업자 수는 다시 30만 1000명 증가했다.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집단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고용이 늘지 줄지는 학자나 연구자에 따라서 (예측치가) 다릅니다. 그건 아무도 증명 못하는 거예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 문제를 두고 “세계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된 건 없고 (연구) 데이터 쓰임새와 시점이 달라 좌우 버전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로지 추정할 뿐이기 때문에 “지난 50년 동안 (세계) 학자들 대척점”이었고 “다수의 지배설은 있지만 양쪽 이견이 있고, 논문에 따라서도 다르다”고 짚었다. “2017년과 2018년 (최저임금 10% 이상) 인상이 일자리에 영향을 준 건지 논쟁은 있는데 주장과 논문에 따라 다르고, 한경연도 (자기 추정치가 실제로 이뤄질지를) 장담 못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양쪽에서 끊임없이 이념적으로 싸우는 거다. 양쪽 다 (일자리 증감 추정치를) 100% 자신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오른쪽)은 한경연의 추정처럼 일자리 쇼크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공포를 주기 위한 과잉 추정”

한경연은 위 보도자료에서 2018년과 2019년을 추정한 것과 같은 논리로 2022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0% 올라 1만 464원이 되면 일자리가 최소 17만 1000개에서 최대 41만 4000개, 25% 올라 1만 900원이 되면 최소 21만 3000개에서 최대 51만 8000개가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나타나지 않은 결과를 추정한 건데, 고용이 그렇게 많이 감소하지 않는데 과대 추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김종진 위원은 최저임금이 당장 1만 원이 되는 흐름이 아닌데도 ‘1만 원으로 인상 시 최대 30만4000개 일자리 감소’라고 주장하면 “과잉 추정이고, 과잉 일자리 상실 공포를 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특히 “한경연 시나리오는 임금 노동자 총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인데 (만약 최저임금 1만 원 때문에) 30만 실업자가 나오더라도 실업급여를 받는 3개월여 뒤에 재취업할 가능성도 있다”고 김 위원은 짚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돼 사용자나 기업이 일자리를 줄이더라도 “7~8시간 노동 계약을 6~7시간으로 바꾸는 등 노동 시간을 감축하는 방향으로도 나온다”며 한경연의 단순한 추정처럼 일자리 쇼크가 일어나긴 어렵다고 봤다.

한경연의 ‘추정’은 언론에서 ‘사실’로 둔갑

▲2021년 6월 28일 매일경제신문 33면 <매경춘추: 누구 위한 최저임금 인상인가> 일부. 권태신 한경연 원장이 전경련 상근부회장 자격으로 쓴 글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2018년과 2019년 일자리는 43.6만 개나 감소했다.”
지난 6월 28일 매일경제신문 <매경춘추: 누구 위한 최저임금 인상인가>라는 칼럼에 쓰인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말이다. 그는 한경연 원장이기도 하다. 권 부회장이 끌어 쓴 ‘한 연구결과’는 한경연의 6월 15일 자 보도자료 속 일자리 감소 추정치 ‘2018년 15.9만 개와 2019년 27.7만 개를 더한 43.6만 개’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올 6월과 7월 사이 같은 수치가 언급된 다른 연구 보고서가 따로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한경연의 보고서를 두고 굳이 ‘한 연구결과’라며 출처를 감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추정’에 지나지 않은 연구결과를 두고도 “감소했다”고 사실처럼 말했다. 
권혁민 한경연 홍보팀장은 ‘43.6만 개’라는 수치의 출처를 묻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매경춘추에 제시된) 그 숫자가 저희가 냈던 보도자료 숫자인지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경제단체의 “주문 제작 보고서”

한경연의 의뢰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시나리오별 고용 규모’ 보고서를 쓴 최남석 교수는 국제무역·투자, 다국적 기업, 통상정책, 경제발전을 전공했고 강의하고 있다. 최 교수의 연구이력은 무역이나 투자에 집중돼 있다. 최저임금 관련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최저임금 연구 활동 경력이 13년째인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도 “듣거나 보지 못한” 이름이라고 말했다. 
▲최남석 전북대 교수가 2010년부터 최근까지 냈거나 진행 중인 연구보고서. 대부분 무역과 투자 분야다. 15건 가운데 14건을 한국경제연구원과 함께했다. (자료 : 전북대학교 무역학과 홈페이지)
최남석 교수는 ‘최저임금과 일자리 관련 연구 보고 이력’을 비롯한 뉴스타파의 여러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김다미 한경연 고용정책팀 선임연구원이 “(최남석 교수가) 전에 저희 연구를 맡아 주기도 했고, (최저임금과 고용 쪽을) 공부하신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을 뿐이다.
최남석 교수는 2010년 7월부터 2015년 8월까지 5년 동안 한경연 산업연구실 연구위원이었고, 2015년 9월 전북대학교 무역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낸 연구보고서 14건 가운데 13건을 한경연과 함께했고, 현재 연구보고서 ‘직접투자의 고용 순유출 규모 분석’도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이 같은 연구보고 배경을 두고 “한경연이라는 곳이 경영계에서 만든 기관이고 그곳에서 오래 연구하시다가 관련 보고서를 썼다면 사실은 주문 제작, 외부에서 볼 때는 6월 15일 한경연 자료는 주문 제작한 페이퍼가 아닌가 보여진다”고 말했다. 그는 “(한경연으로서도) 대학에 맡기는 게 (홍보 등) 자료 이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7월 8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가 함께 연 ‘국민 여러분! 최저임금 보도 괜찮으세요?’에 토론자로 나온 임동준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모니터팀장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최저임금 관련 언론의 받아쓰기’ 행태를 질타했다. 그는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경련 산하 기관이라는 걸 (언론이)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한국경제연구원 통계에 대해서 타당성이 있는지 취재할 마음이 없었다”며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장하면 그대로 받아쓰겠다는 마음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보도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주 단체가 말하는 대로 받아쓰기 일쑤인 상당수 언론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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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