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사냥법] ① "협박, 회유, 표적 수사"... 죄수가 쓴 비망록 13권

2021년 09월 23일 10시 00분

횡령 혐의 등으로 4년간 옥살이를 했던 한 중견기업 대표가 감옥에서 쓴 비망록 13권을 들고 뉴스타파를 찾아왔다. 검찰의 회유와 협박, 선택적 수사를 고발하기 위해서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134번 검찰에 불려갔던 그는 검찰에서 대체 무엇을 보고 겪었던 것일까. 뉴스타파는 4회에 걸쳐, 없는 사건을 만들고 있는 사건은 덮었으며,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했던 '대한민국 검찰'을 고발한다. 
검찰의 사냥법 ① "협박, 회유, 표적 수사"... 죄수가 쓴 비망록 13권
<편집자 주>
박진우(가명)는 2014년 5월까지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플랜트 제조업체 우양HC의 대표였다. 1994년 80평 임대공장에서 시작한 이 회사를 20년 만에 연 매출 2000억 원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2000년 8명에 불과했던 직원 수는 같은 기간 약 300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2014년 5월 박진우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되며 박진우의 성공 신화는 멈췄다. 4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을 때, 박진우에게 남은 건 엄청난 빚과 전과뿐이었다. 20년 넘게 일군 회사는 이미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간 뒤였다.
지난 7월 초, 뉴스타파는 박진우와 인터뷰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박진우는 낡은 노트 꾸러미를 가져와 취재진에게 건넸다. 감옥에서 주는 초록색 교정 노트에 쓴 일기였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박진우가 수감되고 1년쯤 뒤인 2015년 4월부터 2018년 5월 출소하기 전날까지 쓴 글이 들어 있었다. 박진우는 "2015년 4월 이전 것은 잃어버렸다. 2018년 5월 27일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하루하루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박진우(가명)가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보여준 비망록. 죄수 시절 직접 수기로 쓴 것이다. 

"검찰을 믿느니 지나가는 개를..." 죄수의 비망록

박진우가 쓴 비망록은 대부분 감옥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유독 반복되는 한 단어가 있었다. '검찰'이었다. 특히 검찰의 수사 행태에 분노하고 절망하는 대목이 많았다.
"검찰을 믿느니 지나가는 개를 믿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비망록 2016.10.17)
"검찰은 그렇게 하나 같은지 모르겠다. 보는 사람 없고, 듣는 사람 없으니 자기들 맘대로 협박한다." (비망록 2016.2.18)
취재진은 박진우가 공개한 13권의 비망록이 실제로 감옥에 있을 당시 작성된 것인지 확인했다. 박진우에 대한 수사 기록, 특히 검찰 출정기록과 비망록을 비교 검토했다. 하루 일과를 빠짐없이 쓴 기록이 맞다면, 출정 기록과 비망록 내용이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진우가 공개한 기록에 따르면, 박진우는 2014년 5월 구속된 때부터 2017년 말까지 무려 134번 검찰에 불려 나갔다. 그리고 확인 결과, 박진우의 출정 기록과 비망록의 날짜는 모두 일치했다. 그리고 박진우가 출정을 나간 날, 비망록에는 검찰에서 보고 겪은 내용이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이 비망록이 사후에 조작되거나 첨삭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정황 증거였다.    
인명은 재천이 아니에요. 인명은 검찰에 있다. 인명재검이다. 그 말을 혼자 생각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박진우(가명) / 전 우양HC 대표

"횡령에 관심없다"... 검사의 '거래 제안'

사건이 시작된 곳은 경기도 평택이다. 2014년 5월, 우양HC의 대표 박진우가 검찰에 구속됐다.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였다. 박진우는 곧바로 검사실에 불려가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 김영준 검사실이었다. 박진우는 "수사 초기부터 검사가 구형량을 낮게 줄 테니 빨리 죄를 인정하라"고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검사가 "횡령 금액을 50억 원 밑으로만 하면 그렇게 많은 벌을 받지는 않는다"며 사실상 '거래'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박진우와 함께 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우양HC 전 임원 B 씨의 주장도 비슷했다. B 씨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검찰에서 횡령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검사가 '회사는 살려야 되지 않느냐. 횡령 금액을 50억 이하로 해 주겠다. 그렇게 하면 증권거래소 제재도 받지 않는다'고 계속 회유했다"고 말했다. 
검사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들은 수사 독점, 기소 독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내가 다 할 수 있다. 그냥 (검사만) 믿고 (따라)와라. (그러면 횡령금액을) 50억 이하로 해 주겠다'...

B 씨 / 전 우양HC 임원
결국 박진우와 B 씨는 "형량을 낮게 받을 수 있다"는 검찰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횡령 혐의를 인정했다고 한다. 박진우는 구속 15일 만에 기소됐다. 하지만 수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진우의 검찰 출정 기록을 보면, 박진우는 2014년 6월 10일 기소된 뒤 그 해 12월까지 무려 54번이나 더 수원지검 평택지청에 불려나갔다. 왜 검찰은 이미 기소된 박진우를 계속 불러 냈을까.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 박진우(가명)는 2014년 5월 평택지청에 횡령 혐의로 체포·구속됐다.

검찰의 진짜 목적은 '공무원 뇌물 사건'

박진우는 처음부터 검찰의 목적이 다른 데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박진우를 이용해 공무원 뇌물사건을 기획하려 했다는 것이다. 박진우는 2014년 당시 수원지검 평택지청 이명신 부장검사에게 들었던 말을 기억해 냈다. "부장검사가 처음부터 '나는 횡령에 관심 없다'고 말했다. 오로지 A 전 평택시장과 평택시 공무원이 산업단지 개발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사건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목표로 삼았다는 A 전 평택시장은 당시 야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평택시장을 4번이나 역임한, 평택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다.  
우양HC 전 임원 B씨의 말도 박진우의 주장과 비슷했다. B 씨는 "검찰이 그림을 딱 그려놨다. (뇌물을 받은) 은행원이 나와야 되고 공무원도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진우에 따르면, 검찰에 처음 A 전 평택시장 관련 의혹을 알린 사람은 횡령 혐의로 박진우와 함께 수사를 받고 있던 우양HC 전 임원 이 모 씨였다. 이 씨가 검찰에 "박진우가 여러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건넸다"고 진술하며 사건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박진우는 "검찰은 이 씨가 쓴 진술서 등을 근거로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불라'고 나를 압박했다. 이 씨가 쓴 진술서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줬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 검찰이 우양HC 전 임원 이 모 씨의 진술을 토대로 짠 시나리오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취재진은 박진우의 주장과 관련 기록을 통해, 2014년 평택지청에서 진행된 수사 과정을 재구성해 봤다. 

엉터리 시나리오, 불발된 검찰 수사

2011년 4월, 이 씨는 박진우의 지시를 받고 A 전 평택시장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 씨는 결혼식장에서 A 전 시장의 측근 김 모 씨에게 현금 3천만 원을 전달했고, 이 돈이 A 전 시장에게 들어갔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이 씨의 진술을 받은 뒤, 검찰은 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A 전 시장의 측근 김 씨를 긴급체포했다. 그리고 "A 전 시장에 대한 뇌물 공여 사실을 인정하라"며 박진우와 김 씨를 압박했다. 두 사람은 혐의를 부인했다. 김 씨는 취재진과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박진우에게 3천만 원을 받은 적도, 이 돈을 A 전 시장에게 건넨 적도 없다. 검찰은 내가 종이봉투에 담긴 돈을 받아 A 전 시장에게 줬다고 주장하는데, 예식장에서 뇌물을 주고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이 모 씨의 주장에 의존해 진행되던 수사는 의외의 곳에서 암초를 만났다. 박진우가 A 전 시장 측에 돈을 줬다는 날, 박진우와 박진우의 지시를 받아 A 전 시장 측에 돈을 건넸다는 이 모 씨의 알리바이가 확인된 것이다. 두 사람은 A 전 시장 아들의 결혼식이 있던 바로 그 시간, 충청북도 음성군의 한 골프장에 있었다.
박진우(가명)가 우양HC 재직 시절 충청붕도 음성군의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 박진우는 2011년 4월 A 전 평택시장 아들의 결혼식 날에도 이 골프장에 있었다. 
당시 결혼식 참석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A 전 시장 아들의 결혼식은 오전 11시 반쯤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서 열렸다. 반면 뇌물을 줬다는 박진우와 이 씨는 같은 날 12시경까지 서울 영등포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충청북도 음성군의 한 골프장에 있었다. 
이상한 건 시간만이 아니었다. 뇌물을 줬다는 장소도 사실과 달랐다. 
박진우와 A 전 시장의 측근인 김 씨에 따르면, 우양HC 전 임원인 이 씨는 "결혼식장에 딸린 뷔페 식당에서 A 전 시장 측에 뇌물을 건넸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그런데 확인 결과, 문제의 결혼식장에는 애초 뷔페 식당이 따로 없었다. A 전 시장 측에 직접 돈을 줬다는 이 씨의 주장, 이 씨의 주장을 근거로 '뇌물 시나리오'를 짰던 검찰의 판단이 무참히 깨지는 증거였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검찰은 수사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이상한 일을 벌이며 수사를 무리하게 이어갔다는 게 박진우의 주장이다. 박진우는 "검찰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던 이 모 씨에게 '결혼식장에 한 번 다녀오라'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말했다. "결혼식장에 갔다 온 뒤 다시 진술하라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박진우는 "검찰이 사건을 억지로 만들려 한다는 의심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검찰에서) 이 씨한테 결혼식장에 다녀오라고. 내심의 뜻은 모르겠지만, 왜 갖다 오라고 그러겠습니까? (갖다 와서 다시 진술을 하라는)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그거 말고는... 이 진술이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데...

박진우(가명) / 전 우양HC 대표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는 결국 불발됐다. 긴급체포됐던 김 씨도 풀려났다. 김 씨는 "48시간 체포 만료 기간이 끝나서 나왔다. 수사는 A 전 시장까지 가지 않고 내 선에서 끝났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당시 수사 상황을 묻기 위해 A 전 시장에게 연락했다. 오랜 설득 끝에 인터뷰에 응한 A 전 시장은 "수사를 받은 사람들한테서 '수사의 초점이 내게 맞춰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검찰이 왜 그렇게 무리하게 수사를 하는지 지역에서도 의문이 제기됐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와 인터뷰 중인 A 전 평택시장. A 전 시장은 "검찰이 나를 표적수사하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조력자'의 '횡령죄'엔 눈 감은 검찰

취재진은 검찰에 'A 전 평택시장 뇌물 수수 의혹'을 최초 제보한 우양HC 전 임원 이 모 씨에 대해 알아봤다. 금융감독원 공시 자료에 따르면, 이 씨는 박진우의 대학 동창이었고, 1993년 경부터 우양HC에서 일했을 만큼 박진우와 막역한 사이였다. 특히 검찰이 우양HC에서 횡령이 발생했다고 본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이 씨는 우양HC의 등기 상무이사이자 2대 개인주주였고, 회계 관리 책임자이기도 했다. 우양HC 전 임원 C 씨는 "이 씨는 자금·총무·인사 등을 총괄하는 부서의 장이었다. 박진우 사장이 굉장히 신임을 했기 때문에 회사 일은 이 씨를 통하면 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 씨는 박진우의 회삿돈 횡령 사건 판결문에서 '횡령 공범'으로 명시돼 있다. 
박진우는 회사 자금을 유용하기로 마음먹고, 재무담당이사 및 이 모 씨에게 이에 따른 업무 처리를 지시했고, 재무담당이사 및 이 모 씨가 이를 승낙함으로써 횡령 행위를 모의했다. (중략) 이로써 박진우, 재무담당이사는 이 모 씨와 공모하여 업무상 보관하던 회사의 법인 자금 138억여 원을 횡령했다.

박진우(가명) 1심 판결문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우양HC 횡령 사건의 피고인 명단에 이 씨가 없었던 것이다. 검찰은 이 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회삿돈 횡령 혐의로 대표인 박진우와 담당 직원이 기소됐는데, 회사의 2인자였던 이 씨는 법망을 빠져나간 것이다.
이 씨를 기소하지 않은 검찰의 태도는 박진우의 횡령사건 재판과정에서도 논란이 됐다고 한다. 우양HC 전 임원 B 씨는 "재판부조차 검찰이 이 씨를 기소하지 않은 사실에 의아해했다. 판사가 '왜 이 씨는 횡령 혐의로 기소 안 하냐'고 검찰에 물어본 적도 있는데, 당시 검사는 '기소할 겁니다'라고 답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판사까지 나서 문제를 삼았지만, 검찰은 끝내 이 씨에게 횡령죄를 묻지 않았다. 평택시 공무원에 대한 뇌물 공여죄로만 기소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씨는 벌금 1000만 원 형만 받았다. 검찰 수사에 협조한 대가로 편의를 제공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취재진은 이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고, 문자도 보냈지만 이 씨는 답하지 않았다. 이 씨의 집으로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박진우(가명)의 횡령 혐의에 대한 법원 1심 판결문. 우양HC 전 임원 이 모 씨는 횡령의 공범이었지만, 피고인 명단에선 빠져 있다.

"전혀 사실무근"... 입 다문 검찰과 검사

취재진은 이 사건을 수사한 평택지청에 연락했다. A 전 시장 수사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종결됐는지, 검찰에 공무원 뇌물 의혹을 처음 제보한 이 씨는 왜 횡령죄로 기소하지 않았는지 등을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평택지청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평택지청 공보담당자는 "내부 규정상 공보 대상이 안 돼서 답변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사건 담당 검사에게 연락해 입장을 물었는지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2014년 평택지청에서 박진우를 수사했던 김영준 검사와 이명신 당시 부장검사에게도 연락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고 있는 김영준 검사는 "진술 회유나 강요, 끼워 맞추기식 수사는 전혀 사실무근이고, 법과 원칙을 준수해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2018년 검찰을 떠나 최근까지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으로 있었고 지금은 김앤장 변호사로 활동 중인 이명신 전 부장검사는 취재를 거부했다. 

최초 자백 "거물 정치인에게 뇌물 줬다"

검찰로부터 '뇌물 사건'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한 사업가 박진우. 그런데 박진우가 뇌물을 준 정치인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박진우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2014년 검찰에 '정치인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자백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박진우가 쓴 13권의 비망록에도 해당 정치인의 이름은 여러 번 등장했다.  
그렇다면 죄수 박진우의 자백을 들은 검찰은 이후 어떻게 움직였을까. 야당 소속이던 A 전 시장을 수사했던 것처럼, 그렇게 끈질기게 수사했을까. 
박진우(가명)가 죄수 시절 쓴 비망록에는 그가 뇌물을 줬다고 자백한 국회의원의 이름이 수차례 등장한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촬영오준식 신영철
편집김은
디자인이도현
CG정동우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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