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5·18 북한개입설' 원조..."북한군 2~3천 명 비정규전쟁 기획"

2020년 05월 15일 15시 30분

뉴스타파가 입수한 일본외무성 문서에서 전두환이 광주항쟁 당시 신문사 편집국장들을 모아놓고 ‘5·18 북한군 개입설’을 직접 언급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이 일본 외무성 보고서에는 1980년 5월 24일 전두환이 편집국장단과 비공개 간담회에서 “김일성은 영리하게 2000~3000명의 비정규군에 의한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적혀 있다.

전두환의 이 같은 발언 내용은 지난 40년간 지속돼 온 이른바 ‘5·18 북한군 개입설’의 원조격으로 추정된다. 뉴스타파 확인결과,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전두환의 80년 5월 24일 발언 전에는 그 누구도 구체적으로 북한군 병력 숫자까지 거론하며 ‘북한군 침투설’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같은 문서에는 전두환이 광주항쟁 유혈진압계획을 직접 언급한 기록도 들어 있다. ‘광주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이 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이틀 후에 강제진압 할 것이다’라는 취지로 발언한 내용이다. 실제로 계엄군은 전두환이 예고한 바로 그 날(5월 26일) 광주항쟁을 이끈 시민지휘부가 있던 전남도청을 유혈진압했다.


광주항쟁이 벌어진 1980년 5월, 보안사령관이자 중앙정보부장 서리였던 전두환은 모두 4번에 걸쳐 언론인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1980년 5월 보안사령부가 작성한 문서 ‘광주소요사태-중진언론인국민계도유도계획’에 따르면, 전두환은 80년 5월 22일에는 언론사 사장들을, 이틀 후인 24일에는 언론사 편집국장을, 그리고 이후 정치부장과 사회부장을 서울시내 한 호텔에 불러 모았다.

하지만 40년이 지나도록 80년 5월 당시 전두환이 언론사 관계자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 5월 22일 전두환이 언론사 사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내뱉은 말이 적힌 손글씨 문서를 지난해 뉴스타파가 입수, 공개한 게 전부다.(관련기사: ‘전두환 프로젝트 5편’ https://newstapa.org/article/zwdLc) 이 문서에는 당시 전두환이 “2시간 이내에 광주를 제압할 수 있다”고 말하고 언론에도 강하게 경고성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군은 결심한 이상 물러설 수 없다. 언론간부 경영인도 동조 내지 묵인하는 행동을 한다면 일찍이 보지 못했던 조치를 취할 각오가 돼 있다. 24일 기해 광주 시가전 각오. 일대 작전 펴겠다.”
- 1980년 5월 22일 전두환과 언론사 사장단 간담회

일본 외무성 문서에서 전두환의 80년 5월 24일 발언내용 발견

그런데 뉴스타파는 1980년 5월에서 6월 사이 생산된 일본외무성 문서에서 전두환이 전남도청 유혈진압 이틀전인 5월 24일, 언론사 편집국장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발언한 내용을 발견됐다. ‘광주사태, 전두환 기자회견’이라는 제목의 문서로 주한 일본대사관이 5월 24일 오후 8시 13분에 일본 외무성에 보낸 정보보고서다. 다음은 전두환의 발언 중 일부다.

“본인은 직업군인이기 때문에 정치에는 어디까지나 관심이 없다. 12·12 이후 자신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고, 미국에서도 비판을 받고, 아내한테서도 이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라고까지 말을 들었다.”
- 1980년 5월 24일 전두환 발언 (일본외무성 문서)

전두환이 직접 광주항쟁 강제진압 의지를 밝힌 발언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어디까지나 난국 타개를 이루고 시국 수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약한 정부이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1980년 5월 24일 전두환 발언 (일본외무성 문서)

이 보고서에는 이어 전두환이 광주항쟁과 북한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지난 40년간 전두환 세력이 줄기차게 제기해 온 이른바 ‘5·18 북한군 개입설’과 관련된 내용이다. 문서에는 전두환이 “북한 비정규군 2000~3000명이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뉴스타파는 일본 외무성 문서로 새롭게 확인된 전두환의 ‘북한군 개입설’ 발언이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 알아봤다. 우리나라 정부나 정보기관 혹은 미국 정부 등이 확인한 내용을 전두환이 인용한 것인지, 아니면 전두환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먼저 취재진은 1980년 5월 당시 광주항쟁과 북한의 관계를 언급한 언론보도를 찾았다. 모두 3건의 기사가 확인됐다.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기 직전인 80년 5월 16일 신현확 당시 국무총리의 담화, 80년 5월 24일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 등 주한 미국 대사관 고위 외교관들의 발언, 그리고 전남도청 유혈진압 전날인 80년 5월 26일 최규하 대통령의 특별방송이다.

“새삼 말씀드릴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가 혼란에 빠져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틈만 있으면 한반도를 무력 등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적화통일하겠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북한공산집단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 1980년 5월 16일 신현확 당시 국무총리 담화

“카터행정부는 최근의 한국사태를 중요시하고 있다. 북한이 광주 등 한국사태를 악용해서 자행할지도 모를 어떠한 무력도발에 대해서도 분쇄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 1980년 5월 24일 글라이스틴 당시 미국 대사 발언

“그 원인이야 어쨋든 이러한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누가 잘잘못을 가릴 겨를도 없이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안위에 관련되는 중대사태가 될 위험성마저 있다. 우리가 항상 잊어서는 안 될 일은 우리들의 대결상황을 북한 공산집단이 악용하고자 할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 80년 5월 26일 최규하 대통령 특별방송

하지만 모두 북한군의 개입 가능성을 걱정하는 수준일 뿐, 전두환이 언론사 편집국장들에게 말한 것처럼 구체적인 병력 숫자, ‘전쟁 기획’ 등의 정보를 담은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 1980년 5월 24일 오후 8시 13분 주한 일본대사관이 자국 외무성에 보고한 정보보고 문서. 전두환이 언론사 편집국장들에게 “김일성은 영리하게 2000~3000명의 비정규군에 의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두환, “북한 비정규군 2000~3000명이 전쟁 기획...” 발언

뉴스타파는 일본외무성 문서 파일에서도 광주항쟁 당시 북한의 동향 등이 언급된 내용을 찾아봤다. 여러 건이 확인됐다.(괄호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취재진이 넣은 것이다.)

● (1980년 5월) 13일 합동통신이 이케다(일본대사관 직원)에게 연락한 것에 의하면, 같은 날 낮에 신(현확) 국무총리는 각 보도기관 편집장과의 오프더레코드 석상에서 (5월) 12일 한국내에 유포된 ‘북한의 제 8군 특수군단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라는 정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하였다.
- 1980년 5월 13일 일본 외무성 문서

● (1980년 5월) 22일, OOO 등은 마에다 (주한 일본) 대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북한의 특수군단 1개 소대가 이미 잠입해 한국군으로 위장한다든지, (북한이 광주) 사태를 한층 더 혼란스럽게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보는 자도 있다.
- 1980년 5월 22일 일본 외무성 문서

● (1980년 5월) 23일 오후 대스파이대책실무위원회 회의 개최, “최근 광주 소요사태 각종대책과 북한특수부대의 후방침투 대비 대책, 대남전략분실 비정규전 대비 대책 강화, 효율적 대간첩작전 법안시행 수속 검토...”
- 1980년 5월 23일 일본 외무성 문서

하지만 이것들 역시 시중의 소문을 전하거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자는 취지일 뿐, 전두환처럼 ‘비정규군 2000~3000명’, ‘김일성의 전쟁 기획’ 등 구체적인 정보를 담은 내용은 아니었다.

비보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전두환의 ‘북한 비정규군 침투’ 발언은 이후 여러 언론사들을 통해 확산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980년 5월 27일 주한 일본대사관이 자국 외무성에 보낸 문서에 담긴 내용은 이를 반증하는 사례 중 하나다.


전두환의 입에서 시작된 ‘북한 비정규군 전쟁 기획설’이 기자를 거쳐 일본에 전달되면서 ‘해상을 통한 공중 투하’, ‘게릴라부대 침투’ 등으로 확대재생산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일본 외무성 문서를 검토한 박태균 서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위기감을 조성함으로써 굉장히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압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내는 거죠. 그런데 이후에 재생산이 되면서 오히려 이때보다도 더 심각한 가짜 뉴스들이 생산이 되고 있는 거라고 볼 수가 있는 것 같아요. 민주화 과정을 폄하하고 진압한 전형적인 시도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박태균 서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전두환이 북한 특수전 부대의 광주침투 계획을 언급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일본외무성 문서에는 전남도청 학살극으로 끝난 광주진압계획도 전두환이 직접 결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충정계획’으로 불린 전남도청 유혈진압을 전두환이 실행 이틀 전에 직접 설명했다는 기록이다.


전두환, 언론사 편집장들에게 광주 유혈진압 계획 직접 설명

실제로 계엄군은 전두환이 지목한 바로 그 날, 즉 전두환의 발언이 나오고 이틀 뒤인 1980년 5월 26일 밤 시민지휘부가 있던 전남도청에 대해 강제 유혈진압을 감행했다.

“그런 이야기는 총 책임자인 계엄 사령관이 할 수 있는 이야기죠. 그리고 계엄 사령관의 보고를 받아서 실질적으로 승인을 해줄 수 있는 대통령의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하고 있어요. 사실상 전두환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죠.”
-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 연구위원

뉴스타파는 광주항쟁 40주년을 맞는 오는 5월 18일, 1980년 5월 당시 전두환이 권력찬탈을 위해 어떤 일을 꾸몄는지를 보여주는, 지난 40년간 여러차례 진행된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검찰수사에서 단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전두환 세력의 행적을 공개할 예정이다.

제작진
취재강민수 한상진
공동기획 전갑생(뉴스타파 전문위원), 이재의(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김용철(5·18재단 오월지기)
촬영이상찬 신영철 오준식
편집김은 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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