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 이득은 업체와 의사에...부담은 국민 몫

2019년 01월 23일 18시 49분

뉴스타파-ICIJ 공동기획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 : 업체와 의사의 '검은 공생법'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지난해 11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 주관으로 36개국, 59개 언론기관과 함께 글로벌 의료기기 산업의 문제점을 공동취재하면서 의료기기 업체와 의료인들이 불법적인 유착 관계를 맺어 온 실태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후 후속 취재 과정에서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한 의료기기 업체의 비리 관련 공익신고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그 업체는 바로 지난 보도에서도 등장한 국내 심혈관 스텐트 시장 점유율 1위 한국애보트였습니다. 뉴스타파는 애보트가 수년 간 의사들에게 불법 로비를 벌여 온 내막을 1월 22~23일 이틀 연속 보도합니다.

1월 22일
(1) 의료기기업체-의사 부당거래...애보트 내부자료 무더기 입수
(2) 애보트의 해외학회 '의사 모시기'...세션조율부터 비자발급까지

1월 23일
(3) 애보트, 해외 학회·교육훈련 빙자해 불법 관광접대
(4) 부당거래 이득은 업체와 의사에...부담은 국민 몫

4개월 전 공정위 제재 받고도 “법망 피해 의료인 불법 지원 계속하라”

뉴스타파가 입수한 애보트 내부 자료엔 지난 2014년 7월 박동택 한국애보트 심혈관사업부 사장의 육성이 담긴 내부 회의 녹음 파일도 있다. 여기엔 애보트가 현행 리베이트 규제 장치를 바라보는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회의에서 박 사장은 2014년 10월 일본 CCT(Complex Catheter Therapeutics) 학회에 참가하는 국내 의사 지원 방안을 마케팅과 세일즈 직원들에게 세부적으로 지시한다. 동시에 4개월 전 해외 학술대회 불법 지원 건으로 공정위 제재를 받았던 사실을 직원들에게 상기시키며, 이번에는 이메일 기록 등을 남기지 말고 업무를 진행하라는 지시도 함께 내린다. 당국의 제재에도 아랑곳없이 의사들의 해외 학술대회 참가 비용 지원을 기존 방식으로 계속 진행하라고 사장이 직접 지시한 것이다.

지금 이거(해외 학술대회 참가비 지원할 의사들 사전 지정) 코디네이션하고 이러는 거, 공정위 폴리시(규정)에서 문제가 되잖아, 어? 그러니까, 그렇다고 이걸 안 할 수는 없는 거고, 전화랑 이거 누구랑 같이 해서 (특정 교수들을 지원하기로 했는지) 이메일 기록 남기지 말고…

박동택 / 한국애보트 심혈관사업부 사장

녹음 파일엔 의사들에 대한 애보트의 불법적 지원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발언도 담겨 있다. 이날 회의에서 박 사장은 기존에 10명을 후원하기로 했던 CCT 학회에 의사 2명을 추가로 후원하고, 일본 측 패널의 강연료와 추가 대실료 천만 원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CCT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한국애보트가 후원하지 않은 행사지만 뉴스타파가 입수한 2014년 에보트 마케팅 예산자료에 따르면 한국애보트는 약 3천500만 원을 지출한 것으로 확인된다.

  • 박동택 사장 : 그래서 인원수가 늘어난다?
  • 세일즈 직원 : 인원수가 두 명 정도 늘어날 수 있고요. 패널 어나너리움(사례비)을 CCT 쪽에서 우리 쪽에 얘기를 했대요.
  • 마케팅 직원 : 그러니까 이걸 직접적으로 CCT에 줄 수 없으니까
  • 세일즈 직원 : 얼마야? 얼마를 줘야 하는데 지금? ㅇㅇㅇ한테
  • 마케팅 직원 : 네. 근데 룸렌탈비(대실료)가 일단 천만 원입니다.

해당 회의 내용과 입수된 문서 기록에 따르면 2014년 한국애보트의 마케팅 예산은 총 16억 원이었고, 이 가운데 상반기 동안 국내외 학술대회와 교육훈련에 지출한 비용은 총 10억여 원에 달했다. 한 행사당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최대 3억 원까지 지출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애보트 2014년 마케팅 예산 자료

“장사 되는 곳에 영업비 써라”... 애보트의 마케팅 타깃은 심혈관 전문의

당시 회의 녹음파일 내용은 애보트의 영업 전략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날 회의에서 박 사장은 매출이 저조한 사업부의 마케팅 예산을 실적이 좋은 심혈관 사업부로 이전시키겠다고 밝힌다. 스텐트를 비롯한 심혈관 관련 의료기기 시장 공략에 마케팅 자금을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지금 Coronary(심혈관사업부)는 플랜 대비 102%로 나가고 있잖아. Endo(말초혈관)는 지금 계속 펑크내고 있잖아. 백만불이나 펑크낼 거 같은데 (마케팅) 예산 가지고 있는 거 다 쓰려고 그러면 안 되지. 무슨 얘긴지 알아? 포인트가?

뭐 장사 안 되는데 왜 거기다 계속 투자를 하냐고. 뭔가 나오는 쪽으로 투자를 다시 해야지 응?

박동택 / 한국애보트 심혈관사업부 사장

심혈관 스텐트는 매년 국내에 1억 달러 이상 수입돼 수입 의료기기 가운데 금액 기준 매년 1, 2위를 기록하는 품목이다. 매년 4% 이상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 만큼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하다. 국내에선 애보트와 보스톤사이언티픽, 메드트로닉 등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애보트는 국내 시장의 약 35%를 점유하면서 2010년대 들어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스텐트 등 심혈관 관련 의료기기는 가격 결정 구조가 일반 소비재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공단이 심혈관 관련 의료기기의 상한 가격을 결정해 주기 때문에 어느 업체의 제품이건 비슷한 가격이 형성된다. 제품가격이 주요 경쟁요소가 될 수 없는 구조다.

업체들이 매출 실적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많이 파는 것이다. 그리고 제품을 많이 팔기 위해선 환자들에게 해당 의료기기를 처방할지 말지 판단하는 의사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지난 2014년 애보트와 보스톤사이언티픽의 불법 영업에 제재를 내렸던 공정위도 당시 의결서를 통해 “심혈관 스텐트는 대부분 제품이 보험급여 제품이기 때문에 가격은 경쟁요소가 될 수 없어서 제품의 품질과 성능 외에 제품설명, 신제품 설명회 등 (의료인과의) 대면접촉을 통한 우호적인 관계 설정이 중요한 경쟁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2014년 3월 한국애보트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시정명령 의결서

애보트의 심혈관 스텐트 관련 마케팅 전략도 이와 유사하다. 뉴스타파 입수 자료에는 애보트가 전국 심혈관 전문의 538명의 소속과 직급, 주소, 전화번호 등 기본적인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의사들의 영문 이름, 해외연수 여부까지 파악해 정리해둔 이른바 ‘의사 관리 명단’도 있었다. 개별 의사 관리를 담당하는 영업 직원들까지 일일이 지정돼 있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애보트의 스텐트 매출에 도움이 되는 의사들, 환자들에게 자사 제품 시술을 적극 처방해 판매량을 늘려줄 수 있는 의사들을 직접 발굴해 키우겠다는 애보트의 영업 전략은 박동택 사장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근데 그거 (해외 학술대회 참가비 지원) 허접한 애(의사)들 해주면 안 되는데… 작은 세미나도 많을 거고. 그걸 전략적으로 누군지를 지금부터 아이덴티파이(식별)해서 그 사람들을 좀 보내서 계속 키우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

박동택 / 한국애보트 심혈관사업부 사장

업체-의사의 부당거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이처럼 판매 실적을 늘리기 위해 의료기기 업체들이 의사들에게 불법적인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는 행위가 확산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먼저 업체에서 각종 이득을 받은 의사들은 보답으로 환자들에게 무리한 시술 권유 등 과잉진료에 나설 가능성이 현저히 커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무릎 관절이 나쁜 사람들한테 뭔가 무릎 관절에 맞는 어떤 연골 주사를 할 거냐 말 거냐를 결정하는 중간 단계에 있는 사람이 많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연골 주사 업체의 로비를 받은 사람(의사)은 당연히 이거를 하나, 예를 들면 연골 주사를 하나 할 때마다 내가 리베이트를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는 공격적으로 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레이존(적극적 처방과 추적 관찰의 중간 상태의 환자)에 있다는 거는 치료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추적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이니까 3개월 뒤에 한 번 더 보시죠, 6개월 뒤에 한 번 보시죠. 이렇게 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정형준 /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정책위원장

의료기기 업체들이 불법적 마케팅을 통해 의사들을 움직여 제품 판매량을 늘려 수익을 키워갈수록 국민들이 분담해야 할 사회적 부담도 커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대다수 의료기기는 제품 가격의 80% 이상이 건강보험료에서 지급되고, 특히 심혈관 스텐트는 95%를 건강보험에서 지원받는다. 부당한 로비의 대가로 팔려나가는 제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국민들이 나눠 낸 돈으로 조성돼 운영되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불필요한 지출이 늘어나게 되고 결국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국가보험체계는 사실 재정 건전성이 제일 중요합니다. 근데 만약에 이렇게 리베이트나 혹은 이런 일탈들이 일상화되고 그걸 통해서 결국은 그게 제품가격으로 이제 반영되면 그거는 건보 재정에 대한 어떤 침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건강보험의 도움을 받으셔야 하는 분들의 기회를 뺏는 게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보장성이 악화되는 결과도 나올 거고요. 결국은 그 피해는 다 국민 전체가 보게 되는 거고요.

이진휴 / 의료기기규제연구회 위원

나아가 의료기기 업체의 과도한 로비는 기술 투자 예산 감소로 전체 업계의 기술력을 떨어트릴 가능성도 안고 있다.

일단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환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죠. 일단 의료기기는 다른 일반 재화와는 달리 최종 소비자인 환자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의료인이 선택해서 결정하는 특수한 시장구조 안에 있잖아요. 그래서 이제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함으로써 특정 의료기기를 선택하는 경우에 치료 적합성을 고려하기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의료기기를 선택할 우려가 있죠. 국민건강보험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의료기기 업자가 리베이트를 제공함으로써 영업 비용이 증가하면 의료기기 가격을 올릴 것이고 의료기기 가격이 오르면 당연히 국민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 더 넓게 보면 의료기기 업체가 새로운 의료기기 개발에 투자할 비용을 불법 리베이트 지급에 사용하게 되는 경우에 새롭게 등장하는 질병에 대처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국내 의료기기업체가 견고하게 자리잡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신재은 /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 사무관

현행 규제 장치 사실상 무력...엄정한 처벌과 제도 개선 필요

의약품 및 의료기기 업체와 의사 사이의 부당 거래로 인한 각종 폐해를 막기 위해 정부와 민간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만들어졌다. 지난 2010년에는 업체의 불법 리베이트 적발 시 이를 받은 의사도 같이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도입됐다. 2011년에는 업계 자율로 공정경쟁규약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효과를 거뒀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의 구조는) 마케팅 비용이 많은 업체, 임상 비용을 높게 많이 주는 업체들이 1위가 되는 거예요. 이게 마케팅 비용 경쟁인 거지 제품의 경쟁이 아닌 거예요. 마켓쉐어(시장점유율)를 점령하는 거는 마케팅 비용인 거죠. 그런데 마케팅 비용의 대부분이 이렇게 불법적으로 된다는 거죠.

전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 직원

지난해부터는 제약과 의료기기 업체에 의료인에 대한 지출 내역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는 이른바 ‘한국판 선샤인액트' 제도도 시행됐지만 역시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것에 한해 지출보고서를 작성할 의무가 생긴다는 점, 기업의 회계연도에 맞춰 작성 기간을 길게 잡고 있다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된다. 업체의 지출 보고서를 공공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미국, 협회와 개별 업체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일본 등과 비교해 한국은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리베이트의 원천적 예방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애보트 본사(애보트래보러토리스)에서 각종 자금을 지원받은 미국 의료인 순위 (출처: 미국 CMS Open Payment 홈페이지 갈무리)

이 때문에 의약과 의료기기 관련 리베이트 근절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자조까지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리베이트를 없앨 수 있는 대안은 솔직한 얘기도 없어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있는 한은 안 됩니다. 모르겠어요. 이 기사가 나갈지 모르겠지만 주는 자는 망하기 전날까지 줄 거고 받는 자도 적발되기 바로 전날까지 받을 거예요.

전영철 / 의료기기산업협회 공정경쟁규약심의위원장

이런 측면에서 이번에 드러난 애보트와 의사들의 부당 거래를 수사 당국, 감독 당국이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 현행 규제 장치를 대놓고 무시한 불법 로비의 증거가 쏟아졌는데도 이를 처벌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떤 보완책이 나와도 업체와 의사들이 이를 준수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와 일부 의사들의 유착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산업계의 자정 노력, 정부의 실효성 있는 규제 제도 마련과 함께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

취재 : 연다혜, 김성수, 홍우람, 김지윤
촬영 : 김기철, 오준식, 정형민, 최형석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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