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회] 시선 - 구청장은 고문가해자였다

2012년 10월 23일 06시 00분

@ 2012.10.11. 서울 남부 지방법원 판결 선고 중

“피고인을 포함한 수사관 6명은 유OO로부터 간첩 혐의에 대한 자백을 받기 위해 소위 ‘잠 안 재우기 고문’, ‘인간 바비큐 물고문’, ‘엘리베이터실 고문’, ‘전기고문’, ‘소금 밥 먹이기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하였고, 수시로 유OO을 폭행하는 등 불법적인 수사를 자행하였다.”

<기자>

피고인이 고문행위에 가담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이 날 법원의 판단으로 양천구청장 추재엽 씨는 법정 구속됐습니다.

그는 비교적 성공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인구 50여만 명의 양천구에서 세 번이나 구청장에 당선됐습니다. 유력 정치인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책도 냈습니다. 언론에도 자주 등장 했습니다. 일 잘 하는 구청장의 모습이었습니다. 성실하고 인간적인 이미지였습니다.

그에 자서전에 따르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공업 고등학교를 거쳐, 국방부 공무원을 하면서 야간으로 대학을 다니다 4급 공무원, 2급 공무운, 한나라당 부대변인, 그리고 양천구청장까지 됐으니 그만하면 성공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추구해왔던 삶의 모습을 이렇게 말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 타인의 그늘진 얼굴에 밝은 웃음을 선물하는 사람, 젊어서부터 내가 걷고 싶었던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실제 걸어왔던 삶의 모습은 그의 자서전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국방부 공무원이었다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는 보안사 수사관이었습니다. 81년 보안사 중사로 전약한 뒤, 같은 해 10울 다시 특채로 채용되어 보안사에서 수사관으로 근무하다가, 84년부터 85년 10월까진 또 대공처 수사과에서 일 했습니다.

그의 전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보안사에서 일본인 통역을 맡았던 재일교포 김병진 씨가 보안사라는 책을 쓰면서였습니다. 김병진 씨는 그 책에서 추재엽 씨의 고문사실을 폭로 했습니다.

“유OO씨의 몸은 등이 아래쪽으로 쳐진 모습으로 공중에 매달렸다. 얼굴은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입이 위에 있었다. 추재엽은 젖은 손수건으로 코에 눈까지 덮었다. 공기를 마실 구멍이란 입밖에 남지 않았다.”

“불어라 불어, 항복해! 사나이들의 욕설이 한층 더 높아졌다. 추재엽이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최후의 구멍에 새빨간 물이 부어졌다... 나는 이 광경을 더 이상은 쓸 수 없다.”

그러나 보안사가 김병진 씨가 쓴 책 대부분을 수거해 이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02년 추재엽 씨는 한나라당 후보로 나와 첫 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2006년 다시 한 번 의혹이 제기 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그가 보안사에 다녔다는 사실을 확인보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직접고문은 하지 않았다고 말 했습니다. 다만 분단국에서의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말 했습니다.

당시 그의 선거를 도왔던 사람도 그를 믿었다고 말 합니다.

[김순환 前 미래희망연대 서울시당 양천위원장] “(고문가해자가) 아니라고 하니까 그 때는 그렇게 신경을 안 썼죠. 아닌가보다 생각을 했죠.”

고문을 했다는 의혹은 있었지만 증거는 없었습니다. 보안사 수사관이었다는 전력도 그의 승승장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2007년 그는 다시 무소속으로 양천구청장이 됐습니다. 또 4년이 흘렀습니다. 추재엽 씨는 2011년 다시 재보궐 선거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 했습니다. 당시 여권 내부에서도 그의 보안사 전력 때문에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김순환 前 미래희망연대 서울시당 양천위원장] “이 문제가 좀 심각하다 생각되어서 (추재엽) 개인을 지적하기 보다도 한나라당의 신뢰감이 떨어진다, 특히나 작년 10월, 올 4월 정도 되면 우리 미래희망연대하고 한나라당하고 합당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식구죠. 식구임에도 불구하고 ‘아니다’라고 공문을 보냈어요. 이건 좀 재고해달라, 후보에 대해서.”

하지만 그는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폭로가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목격자가 직접 증인으로 나섰고 고문 피해자도 일본에서 추재엽 씨를 고문 가해자로 확인 했습니다.

[유OO 고문 피해자] “이 사람은 그 당시(85년)에는 안경을 안 썼고 지금처럼 살찐 것이 아니고 좀 야윈형이었습니다. 그리고 몸집이 작았습니다.” (이 사람이 고춧가루 물을 먹인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추재엽 씨는 이런 폭로들이 정치적 모략 선전인 양 홍보했습니다. 유권자들에게도 문자를 보내 이는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추재엽 씨는 세상을 한 번 더 속일 수 있었습니다. 집권여당 한나라당의 공천도 받았겠다, 중앙당의 지원도 든든했습니다. 결국 그는 세 번째로 구청장에 당선 됐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법원은 추재엽 씨가 보안사에서 인간 바비큐 물 고문에 가담했음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추재엽 씨가 계속 말을 번복하고 거짓말을 한 점이 인정됐고, 고문의 목격자와 피해자 말은 일관성 있는 사실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이 사람이 고춧물을 먹인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의 고문사실을 법정에서 부인했던 추재엽 씨는 결국 위증죄와 더물어 무고죄, 그리고 공직선거법위반죄가 적용 돼 모두 1년 3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그러나 추재엽 구청장은 자신의 양형에 대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항소할 뜻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사람을 고문했던 보안사 수사관이 정치인으로 성공하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1985년 10월 보안사를 나온 추재엽 씨는 신민주공화당 기획조사부장을 거쳐 6년만에 서울시의회 전문위원이 됐습니다. 4급 공무원 신분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6년 뒤인 97년 국회 정책연구위원이 됐습니다. 2급 공무원입니다. 2001년엔 한나라당 부대변인이 됐습니다. 2002년엔 양청구청장으로 선출됐습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김용환 현 새누리당 상임고문에게 충성했고, 김무성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총괄본부장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정치적 소신과 의리를 지켰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처세만 잘하면 고문 가해자가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고급 공무원으로, 또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1988년부터 무려 20년 넘게 지속된 의혹과 고발 그리고 폭로에도 그는 3선 구청장이 됐습니다. 2012년 10월, 법원이 그의 고문사실을 확인하자 그를 공천했던 새누리당은 몰랐다고 주장하면서 선거 때도 통상적인 지원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 “저희들로서는 그(공천) 때까지는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고, 그런 선거철이 되면 왜, 말 그대로 통상적인 누구를 가려서 가는 게 아니라 통상적으로 지원 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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