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이 쏘는' 예산 비위, 왜 못 막나?

2021년 06월 25일 10시 00분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다른 공기업과 달리, 수도권 근무인데다 '워라밸(Work-Life Balance)'과 정년이 동시에 보장된다. 공기업 중 초임 연봉도 가장 세다. 인국공은 취업준비생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공기업 1순위로 꼽힌다. 
 그래서일까. 인국공이 쓰는 기부·후원 예산은 상당한 편이다. 지난 5년간(2015~2019년) 694억 원이다. 연평균 138억 원에 이른다. 국토교통부 소관 공기업 중 가장 많다.

5년간 694억 쓴 인국공, 기부·후원 예산 세부 내역 미공개… '검증 방해'

 그러나 그 많은 기부·후원 예산이 정확히 어디에 얼마를 쓰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타파가 지난해 11월, 인국공의 지난 5년간 기부·후원 예산의 지출 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했는데, 인국공은 예산 자료를 분야별 총액으로 뭉뚱그려 제공했다. 세부 지출 내역은 공개를 거부했다.
 인국공은 연도별로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사회단체 73억 원, 환경단체 1억 6천만 원, 사회복지단체 284억 원, 문화·체육단체 18억 원, 교육·학술단체 25억 원 등 기부·후원 분야별 총액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 공개했다. 이걸로는 어디에 얼마의 기부·후원금을 줬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언론의 검증 작업을 방해한 셈이다. 
▲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공개한 기부·후원 예산의 세부 집행 내역, 기부금 수혜기관을 "사회복지단체"로만 기재했다. 
 인국공 역대 사장 9명 가운데 6명이 국토부 관료 출신 낙하산이다. 현 김경욱 사장도 국토부 차관을 지낸 '관피아' 출신이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고 이후 인국공 사장으로 임명됐다.

7개월째 비공개로 버텨… '행정소송 하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공개 

 지난 해 11월, 뉴스타파는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관할 공공기관 73곳을 대상으로 기부·후원 예산 내역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많은 공공기관은 자료를 보내왔지만, 일부 기관은 비공개로 버티며 예산 집행 내역을 숨기고 감췄다.  
 한국건설관리공사(현 국토안전관리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5년 치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7개월이 지난 이번 달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비공개 사유가 황당하다. 지난해 12월, 한국건설관리공사는 한국시설안전공단과 통합해 국토안전관리원으로 출범했는데, 이 과정에서 업무 공백이 생겨 예산 자료를 공개하지 못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한국건설관리공사는 부실공사 방지와 건설사업 관리를 전담하는 공기업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국토정보공사는 우리나라 국토의 토지 측량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인데, 여기도 기부·후원 예산의 세부 집행 내역을 6개월째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2018년 낙하산으로 내려온 상임감사가 직권을 남용해 기부 예산으로 사익을 추구한 비위가 드러났기에, 또 다른 예산 오·남용은 없는지 추가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사는 뚜렷한 이유 없이 비공개로 버텼다. 이번 달 초, 취재진은 공개하지 않을 경우,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공사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예산 자료를 뉴스타파에 보내왔다. 
 우리나라 공공기관·공기업이 한해 쓰는 기부·후원 예산은 대략 1조 원이 넘는다.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공기업 사장들이 앞다퉈 복지 단체를 찾고 성금을 전달하는 행사를 쏟아낸다. 널리 알리고 귀감으로 삼아야 할 기부·후원 예산의 사용처를 이렇게까지 숨기고 감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이번 달 8일부터 프로젝트 [낙하산이 쏜다]의 취재 결과물을 공개하고 있다. 어느 정권도 뿌리 뽑지 못한 공공기관 낙하산의 폐해가 국민의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기부·후원 예산의 오·남용과 사익 추구로 뻗어가고 있음을 폭로하는 작업이다. 

'프로젝트: 낙하산이 쏜다' 잘못 쓰인 예산 6억 원 확인

 올해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공공기관(공기업 포함)은 모두 350곳이다. 이 중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 73곳의 5년 치 (2015~2019년) 기부·후원금 예산 집행 내역을 검증했다. 그 결과, 낙하산들이 이 예산을 '쌈짓돈'처럼 써 온 사실이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지금까지 확인한 잘 못 쓰인 예산은 6억 원이 넘는다.
 권력의 연줄로 공공기관의 사장과 이사장, 상임감사 자리를 꿰찬 낙하산들이 국민 세금과 다름없는 기부·후원 예산을 철저히 사유화한 것이다. 그 수법은 다양했다. 
①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지역에 수천만 원의 기부·후원금을 뿌리며 사실상 사전 선거 운동을 벌이고 ② 본인이 설립해 대표, 회장으로 있던 특정 단체에 예산을 몰아주고 ③ 사장의 모교는 물론, ④ 사장의 개인 취미 활동에도 ⑤ 고교 동창 친구인 국회의원의 지역구에도 수억 원의 기부·후원금이 사용됐다. 
 이것이 지난 4개월 동안 뉴스타파가 취재한 공공기관 기부·후원 예산의 민낯이다.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소외·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데에 쓰여야 할 공적부조 성격의 예산이 낙하산들의 사익 추구를 위해 쓰이고 있다. 

공공기관 기부·후원 예산 오·남용… '통제할 방법이 없다'

 결국, 문제는 시스템이다. 예산의 오·남용은 공공기관 내부 통제 체계, 그리고 시민사회를 포함한 외부 감시, 독립된 정부 기관의 관리·감독 및 감사를 통해 방지할 수 있다. 
 먼저, 공공기관 내부 통제 시스템을 확인해 봤다. 공공기관 대부분이 예산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제도와 규정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기부·후원처를 심사해 결정하는 별도의 위원회는 거의 없었다. 사장이나 상임감사 등 경영진이 마음대로 결정하는 구조다. 기부·후원 예산의 집행은 사실상 경영진의 '양심'에 맡겨진 상태였다. 
위원회는 없고 처장, 상임이사 정도에게 보고를 하고, 여기서 판단을 해서 결정을 합니다.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
위원회는 따로 없고요. (필요하다고) 하면 만들어야 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그런 생각은 하고 있고요.

한국산업단지공단 관계자
 관리·감독의 책임과 권한이 있는 정부도 손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예산 오·남용 사실이 확인된 공공기관의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모두 "산하 공공기관의 기부·후원금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확인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심지어 국토교통부는 공공기관의 예산 문제는 '각 기관의 상임감사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취지로 답변하기도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낙하산 상임감사들은 감시는커녕, 예산의 사유화에 앞장서고 있었다. 

'사각지대' 낙하산 오·남용 예산… 2차 검증 예정

 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자체 감사가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면,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취재진은 "공공기관의 기부·후원 예산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한 적이 있는지" 감사원에 물었다. "없다"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전체 공공기관 350개 중 73곳, 이제 20% 정도 검증했을 뿐이다. 뉴스타파는 앞으로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4개 부처의 산하 공공기관 114곳을 대상으로 2차 검증 취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같이 자료를 감추는 공공기관에 대해선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벌여 끝까지 자료를 받아 낼 방침이다.
제작진
영상 취재이상찬, 최형석
편집박서영, 정지성
CG정동우
웹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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