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최용익 칼럼_오보에 대처하는 조선일보의 자세

2012년 09월 07일 08시 31분

조선일보가 대형 사고를 저질렀습니다. 나주에서 일어난 7살 난 어린이 성폭행범의 사진이 엉뚱하게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특종 욕심이 앞선 나머지 사진 대조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일어난 사고입니다.

조선일보 때문에 졸지에 성폭행범으로 몰린 해당 시민은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난데없이 날아온 유탄을 맞고 인격을 유린당한 이 평범했던 시민이 겪은 정신적 고통과 충격이 얼마나 클지는 상상하기 쉽지 않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7월 말에도 태풍 ‘카눈’ 관련 보도에서 다른 사진을 실어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태풍이 부는 해운대 앞바다의 높은 파도를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3년 전에 촬영한 사진으로 대치함으로써 독자들의 눈을 속인 것입니다.

나주 성폭행 오보는 한국 언론들의 인권 불감증과 특종 지상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일보의 이번 오보 사고는 언론사들 간의 오보 등 특종 경쟁과 맹목적 속보 경쟁이 빚은 참사라고 할만 합니다. 범죄자의 얼굴을 실어야 한다는 강박과 마감 시간에 쫓기면서 범인의 얼굴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인쇄해 넘길 수밖에 없는 편집국 시스템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큰 사건이 났다 하면 당사자의 입장이나 심정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진을 확보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내려온 케케묵은 전통이 아직도 지속돼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오보 사건은 어린이 대상 성범죄를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독자들의 눈을 끌기 위한 선정주의와 알 권리를 빙자한 범죄 상업주의 소산이라는 비판이 파다합니다. 그런데 언론사로써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형 오보 사건이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침묵을 고수했습니다. 옛날에 횡횡했던 언론사들 간의 침묵의 카르텔 혹은 동업자 봐주기 관행이 다시 부활한 것일까요. 이것은 작년 3월에 SBS가 장자연 사건을 보도하면서 낸 오보에 대한 조선일보의 대응과는 대조적입니다.

조선일보는 당시 영국이나 일본에서는 이 정도 초대형 오보를 내면 해당 방송사가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선진 외국에서 조작 등의 대형 오보가 발생할 경우 장문의 사과문 게재와 더불어 사장 등 책임자의 사퇴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2003년 뉴욕타임스는 제임슨 블레오 기자가 다른 신문 기사를 표절한 데에 대해서 4페이지에 걸쳐 해명기사를 게재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편집인과 편집국장이 사임했습니다.

1989년에는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바다 속의 자연훼손을 보여주기 위해 산호초에 글자를 새겨넣고 찍은 사진을 1면에 보도한 것이 들통 나면서 역시 정정기사와 더불어 사장이 사퇴하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1등 신문이라는 조선일보는 대답해야 합니다. 본의는 아닐지언정 한 선량한 시민에게 성폭행범이라는 낙인을 찍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넣은 대형 오보 사고에 대해 사장이나 편집국장 등 편집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사퇴할 용의가 있는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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