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중인 장소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소위 ‘엄마 부대’라 불리는 그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의사자 지정과 대학 특례 입학에 대해 반대한다며 소란을 피웠고, 세월호 희생자들이 국가를 위해 죽는 것도 아닌데 과도한 특혜를 받는다며 항의했다.

이러한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인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어떻게 같은 부모로서, 무엇보다 스스로를 ‘엄마’라고 내세우며 유가족들의 아픔에 소금을 뿌릴 수 있냐며 분노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으며, 이들이 그러는 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흔히들 매우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에 대해 그들의 개인적 자질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그러한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설사 그들 개인의 자질이 다른 이들과 특별하게 다르지 않은 매우 ‘평범한’ 것일지라도 그들이 놓인 ‘구조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비인간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걸 사회심리학자 짐바르도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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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스탠퍼드 대학교 지하에 감옥을 만들고 그 안에 평범한 젊은이들을 교도관과 수감자의 두 그룹으로 나눠 일종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 실험이다. 짐바르도는 특별히 나쁜 인격의 소유자가 아닌 말 그대로 평범한 이들만을 선발하기 위해서 신원조회와 각종 심리검사를 실시한다. 이렇게 선발된 이들 대부분은 범죄경력이 전혀 없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총 14일간의 관찰이 예정되어 있던 실험. 그러나 짐바르도는 5일만에 실험을 중단하고 마는데 그 이유는 놀랍게도 너무나 평범했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발생한 끔찍한 폭력 때문이었다. 평범했던 젊은이들이 악랄한 교도관으로 바뀌어 각종 폭력을 행사했고 그로 인해 더 이상의 실험이 어렵게 된 것이다.

더욱 끔찍한 건 수감자 역할을 맡은 이들 중 부당한 폭력에 저항한 사람이 그나마 한 명 존재했는데, 이 저항하는 한 명에 대해 다른 수감자 역할을 맡은 이들의 평가가 ‘말썽꾼’이었다는 점이다. 가해자만이 아니라 피해자조차 ‘폭력’을 내재화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진짜 범죄자도 아니고 그저 실험을 위해 동원된 말 그대로 평범한 이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들은 5일 만에 이러한 폭력에 휩싸이게 된걸까? 이 상황에 대해 짐바르도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

"개인의 자질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어떤 인간이 저지른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끔찍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들 모두가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적절한 아니 부적절한 상황적 조건만 형성된다면 말이다. 썩은 사과가 썩은 상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썩은 상자가 썩은 사과를 만드는 것이다"

썩은 상자, 즉 억압과 피억압의 요소를 지닌 ‘교도소’라고 하는 구조적 문제(상황)가 평범한 이들을 폭력에 매몰된 ‘썩은 사과’로 만들었다는 게 실험에 대한 짐바르도의 분석 결과인 셈이다. 이는 폭력을 단순히 개인적 자질의 문제에 국한시키거나 기껏해야 자라온 환경 정도만을 고려했던 기존 시각에 매우 강렬한 충격을 안겨주게 된다.

개인들간의 폭력이 ‘구조적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게 된다는 건 실험만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알제리에서 발생한 민중들간의 무차별적인 폭력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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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당시 알제리 사람들에 대해 갖가지 방식으로 폭력을 가했는데, 이는 식민지배라고 하는 구조 속에서 가해진 일종의 ‘수직 폭력’이었다. 그렇다면 알제리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근원인 프랑스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저항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비슷한 처지에 있던 알제리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동시대를 살았던 정신과 의사이자 사상가였던 프랑츠 파농은 이 같은 현상을 목격하고,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를 ‘수평 폭력’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자신에게 가해진 ‘수직 폭력’으로 발생한 스트레스와 분노를 분노의 근원을 향해 해소하지 못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수평적으로 폭력을 가해 해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해 폭력의 근원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혹은 폭력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피폭력자가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느 쪽이든 수평폭력은 수직 폭력을 가하는 폭력의 근원을 은폐시키고 수직 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알제리의 경우 식민지배)를 은폐시키게 된다. 그래서 수평폭력은 결국 폭력의 피해자들 사이에서 맴돌며 폭력이 그저 피해자들의 개인적 자질 문제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을 만들어내게 되는 셈이다.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과 프란츠 파농의 ‘수평 폭력’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서슴치 않은 이들이 왜 그러한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 개인적 자질의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적 문제에까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들이 ‘의사자 지정’을 특혜라고 생각하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공적 희생자(피해자)가 의사자로 지정되기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대학특례에 대해 민감하게 여기는 것 역시 지나친 입시 경쟁에 매몰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그들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 자질에만 있다기 보다는 문제의 근원을 향해 저항하지 못하고 대신 비슷한 처지의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수평 폭력’의 일종임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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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의 설계자인 짐바르도는 실험을 마치고 자신이 미처 제기하지 못했던 중요한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부디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온갖 모욕적인 언행을 일삼는 이들이 한 번만이라도 이 질문을 떠올려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세월호 유가족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썩은 상자’ 속에서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교도소)실험이 끝난 후 우리는 핵심적인 질문이 제기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누가 무엇이 그 일이 그런 식으로 발생하도록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이다.

행동의 배경이 되는 상황을 설계하고 유지하는 힘을 가졌던 자는 누구였나?

그렇다면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을 가지고 있을까?

-필립 짐바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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