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 불과 3일차에 한강 다리를 끊고 도주한 이승만 대통령과 군 수뇌부. 그리고 다시 16일 후 맥아더 사령관에게 편지를 써 ‘대신 군을 지휘해’ 달라고 요청하는 이승만 대통령. 편지는 내용은 물론 뉘앙스까지 굴욕적이었다.

“현 작전상태가 계속되는 동안의 지휘권 일체를 이양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며... 한국군은 귀하의 휘하에서 복무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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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작전통제권은 이렇듯 허망하게 유엔군에게 넘어갔다.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였다.

“the most remarkable concession of sovereignty in the entire world”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형태로 주권을 양보한 사례)

그래서일까? 유엔군은 전작권이 이양되고 나서도 당분간은 형식적으로나마 한국군 지휘부를 통해 명령을 하달하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불과 10여 개월 후 한국군 3군단은 수적, 물적 우위에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현리 전투에서 대패를 하게 된다. 특히 패배의 주요 이유가 주요 지휘관들이 계급장을 떼고 도주하고 최고 지휘책임자인 3군단장이 회의 참석을 이유로 현장을 벗어나 군단 사령부로 복귀하는 등 지휘체계가 붕괴함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유재흥 3군단장은 미8군사령관이자 UN군사령관 밴 플리트에게 치욕적인 질책을 당하고 만다.

“당신의 군단은 지금 어디 있소?”(밴 플리트 UN군 사령관) “잘 모르겠습니다.”(유재흥 3군단장) “당신의 예하 사단은 어디 있소? 모든 포와 수송 장비를 상실했단 말이오?”(밴 플리트 UN군 사령관) “그런 것 같습니다.”(유재흥 3군단장)

현리 전투 패배로 인해 한국군에 대한 UN군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지고 이를 계기로 형식적으로나마 존중되던 지휘권은 완전히 박탈된다.

한국군 3군단을 해체하고 육군 본부의 작전권도 폐지한다. 육군본부의 임무는 작전을 제외한 인사와 행정, 군사 훈련에만 국한한다. 국군 1군단은 내 지휘를 직접 받아야 하고 육군본부 전방지휘소도 폐지한다. -1951년 5월 25일 강릉비행장 육군지휘본부에서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

그로부터 40여년 후 노태우 대통령은 전작권 회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전작권 회수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지휘권을 갖지 못한 것은 주권국가로서는 창피한 일이었다. 민족자존이다, 자주외교다 해서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국가 안보 면에서 아무리 평시라 하지만 지휘권을 갖고 있지 못함으로써 일종의 패배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더구나 미국 측이 감군, 철군을 거론할 때마다 얼마나 우여곡절을 겪었는가. 나는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취임할 때만 해도 한국군 내부에서는 ‘미군이 서울에서 나가면 큰일 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우리 스스로 문제를 결정할 때가 왔고, 그만한 자신을 가질 때도 됐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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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전현직 군 장성들의 반대가 있긴 하였으나 보수언론을 포함한 대개의 언론들은 전작권 회수에 긍정적이었고 결국 절충을 거쳐 94년 말 우선 평시작전통제권을 가져온다. 그러자 보수 언론은 긍정적 평가와 함께 전시작전통제권까지 가져와야 한다고 당부한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시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 -조선일보. 1994년 12월 1일 사설 중-

"휴전이 성립된 지도 41년이나 지났으니 작전권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하루속히 되찾아야 할 일이다.” -동아일보. 1994년 10월 9일 사설 중-

하지만 막상 노무현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자 보수 언론들의 태도는 돌변한다. 많은 지면을 할당해 전작권 환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한다.

"전작권 환수를 주권으로 보는 건 잘못" -중앙일보. 2006년 8월 10일-

“戰時작전권에 관한 대통령의 傲氣와 모험주의” -동아일보. 2006년 8월 10일 사설-

"前국방장관들 '작통권 논의중단 성명서' 준비” -조선일보. 2006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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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따라 달라지는 전시작전권에 대한 보수언론의 태도. 전시작전권을 순수한 안보문제나 주권문제로 보지 않고 정치적 이해득실로 판단하고 있음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흥미로운 건 조선일보의 보도처럼 얼마 후 전직 국방장관, 참모총장, 군 장성 출신들은 전작권 환수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이 날 참석자 명단에 익숙한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유재흥. 대패한 현리전투의 지휘 책임자였던 유재흥 전 3군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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