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때깔 옷을 입은 비단잉어는 예로부터 부귀영화와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동양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고관저택에는 으레 연못을 유유히 헤엄치는 잉어 한두 쌍이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청와대 상춘재 앞에도 15제곱미터 남짓한 조그마한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이 곳에 잉어가 삽니다. 청와대는 내년 예산안에 조류와 어류구입비로 1000만 원을, 위탁관리비로 600만 원 등 모두 1600만 원의 예산을 청구했습니다.

상춘재가 주로 외빈 접견 용도로 사용되는 까닭에 연못에 풀어놓을 잉어를 구입하고, 이를 관리하는 비용이 필요하다는 청와대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보입니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역대 대통령 비서실의 예산을 분석한 결과, 청와대는 지난 2004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잉어예산’을 책정했고, 그 총액이 1억 원을 훌쩍 넘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청와대는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예산안에 ‘별도의 항목을 두고, 1마리에 10만 원이나 하는 잉어 100마리를 구입했습니다. 2008년부터는 ‘조류, 어류 등’이라는 항목으로 뭉뚱그려 놨지만 구입 예산은 매년 1000만 원으로 동일했습니다.

정말 청와대가 매년 1000만 원 어치의 잉어를 산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예산을 전용한 것일까요. 연간 천억 원이 넘는 청와대 전체 예산에 비하면 ‘잉어 예산’은 ‘새발의 피’ 수준입니다. 하지만 수십 년을 사는 잉어를 매년 새로 사기 위해 예산을 편성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잉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관상어점 주인 A씨는 “수천 평의 양어장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매년 100마리씩 구입하는 것은 지나치게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겨울을 보내는 사이 일부가 동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청와대가 연간 600만원의 어류 위탁관리비를 별도로 책정했다는 취재진의 설명을 듣고 그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국가재정법 45조는 국가기관이 국민이 정해준 목적 이외의 용도로 예산을 쓰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가 국회에 제출한 2015년도 예산안에는 이같은 ‘잉어 예산’처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예산 항목들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청와대는 내년에 카메라를 구입하겠다며 1100만원의 예산을 책정했습니다. 앞서 청와대는 C사의 카메라 ‘마크5’와 N사의 카메라 ‘D4X’를 구입한다는 명목으로 2013년과 올해 2년 연속 모두 2800만 원의 예산을 받았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청와대가 사겠다는 카메라는 아직 시판되지도 않은 모델입니다. C사의 최신 모델은 ‘5D Mark3’. ‘마크5’라는 모델은 아직 시장에 내놓지 않았습니다. N사의 ‘D4X’ 역시 수년 전부터 출시에 대한 인터넷 루머만 있었을 뿐 출시된 적 없는 모델입니다.

2014112500_01

한마디로 청와대는 있지도 않은 카메라의 모델명 이름을 써서 수년 째 예산을 타내고 있는 겁니다.

청와대는 또 행사에 사용한다며 내년에 팔걸이 의자 35개를 새로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1개에 100만 원짜리인 ‘명품’ 의자입니다.

청와대에 가구를 납품한 적 있다고 홍보하는 한 가구업체의 매장을 찾아가 대략의 시세를 살펴봤습니다. 점원에게 100만 원 상당의 팔걸이 의자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렇게 비싼 의자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혹시나 싶어 고급 원목과 가죽을 사용해 멋을 낸 최고급 소파를 골라 가격을 물었지만 90만 원이 채 넘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구의 가격은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국빈을 모시는 청와대인 만큼 일반 국민의 입장에선 상당히 고가인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겠지요.

문제는 이 의자에 대한 청와대의 사랑이 남다른 나머지 지난 10년 간 매년 40~50개씩 모두 470개를 구입한 겁니다. 보관을 위해 별도의 창고를 지어야 할 정도로 많은 의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년에 또 사야하는 이유가 뭘까.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청와대의 필라테스 시설 구입, ‘쌈짓돈’은 어디서 나왔나?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되었던 ‘청와대 필라테스 시설 구입’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구입 사실을 극구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조달청 물품취득원장을 통해 8800만 원에 이르는 필라테스 시설이 국고로 구입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청와대가 구입한 필라테스 시설 가운데 단가가 2000만 원이 넘는 최고급 기기인 ‘파워플레이트(Power plate)’도 포함돼 있다는 점, 청와대의 구입 시기가 국내 최고의 개인 헬스 트레이너로 알려진 윤전추 행정관이 청와대에 입성하는 시기와도 맞물린다는 점은 쓴 웃음을 자아내는 뒷이야기입니다.

국정 전반을 돌봐야하는 대통령의 건강을 챙긴다는데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필라테스 기구를 사는데 국민의 세금이 쓰였는데도, 그 돈이 어디서 나왔고, 누가 어떤 명분으로 지출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취재진은 올해 청와대 예산안 가운데 필라테스 시설을 구입하겠다며 8000만 원이 넘는 예산을 요구한 항목이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대통령 비서실 예산 가운데 ‘체력단련기 구입’ 명목으로 2400만 원 가량이 책정돼 있긴 하지만 실제 지출된 8800만 원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액수입니다.

청와대가 국민 몰래 챙긴 ‘쌈짓돈’을 챙기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입니다.

‘쌈짓돈’의 비밀은 지금도 국회에서 심의 중인 예산안 속에 있습니다. 겉보기에 아주 꼼꼼하고 상세하게 쓰여진 듯한 예산안, 좀처럼 빈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치 예산안을 한데 모아 놓고보니 얘기가 좀 달랐습니다.

매년 중복 구매가 필요없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 간 예산안에 반복해서 올랐던 항목들을 모아봤습니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항목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수량이 많거나 단가가 높은 물품을 위주로 11개 항목을 선정했습니다. 이 항목들은 조달청이 공시한 사용연한이 5년 이상인 것들로 따로 관리대장을 만들어 관리해야하는 물품입니다.

품목 사용연한 5년간 누적개수* 단가
방독면 7년 750개 7만원
진공청소기 7년 100대 25.8만원
카페트세탁기 9년 5대 400만원
전동 바닥 청소기 7년 21대 300만원
복사기 5년 110대 460만~1600만원
냉장고 9년 120대 30만~80만원
세단기 11년 83대 79만~250만원
텔레비전 7년 78대 110만~135만원
냉동고/온장고 7년 30대 300만~600만원
사무용 책상 8년 425개 23.5만원
사무용 캐비넷 8년 300개 20만원

(*'5년간 누적개수'는 예산안대로 집행됐을 때를 가정한 수치)

청와대의 대통령 비서실 근무자가 500명 안팎인 점을 감안할 때 넘쳐도 너무 넘치게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청소기, 복사기, 냉장고는 100대가 넘고, 한 개에 수백만 원에 이르는 카페트 세탁기, 전동 바닥 청소기, 냉동고, 온장고 등도 매년 새로 구입합니다.

이 때문에 이들 물품 중 상당수는 실제로 사지 않고, 배정받은 예산은 다른 용도로 전용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멍 뚫린 청와대 예산 심의 시스템...임기 1년 운영위원회로는 감시 불가능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청와대는 이에 대해 지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국민을 대신해 예산안을 심의하는 국회는 대체 뭘하고 있었던 걸까요?

물론 국회는 이 예산안을 들여다 봅니다. 다만 그 기간이 아주 짧습니다. 그나마도 규모가 큰 예산을 두고 줄다리기하는데 많은 힘을 쏟기 때문에 청와대의 ‘쌈짓돈’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작업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청와대 예산이 다른 정부기관보다 예산 심의가 어려운 내막도 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한 의원실 보좌진은 대통령 비서실을 관할하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다른 상임위와는 달리 1년 단위로 위원이 교체돼 제대로된 예산 감시가 이뤄지기 힘들다고 설명했습니다.

운영위원회는 기본적으로 여야 교섭단체의 원내대표단으로 구성되도록 돼 있는데 통상적으로 정당의 원내대표 임기는 1년이기 때문입니다. 심도있는 예산 검증을 위해선 소관부처의 예산을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그 흐름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청와대 예산은 애당초 그런 감시가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청와대 예산 감시를 어렵게 하는 또다른 이유는 고질적인 청와대의 비밀주의입니다.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공개한 전례가 없다’며 회피하기 일쑤입니다. 의원실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가장 자료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 기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2014112500_02

내년(2015)도 예산안은 오는 11월 30일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다음날인 12월 1일 곧바로 정부의 예산안이 그대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됩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의기간은 불과 25일.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 376조 원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그 안에 낀 낭비 요소와 거품을 빼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다음 뉴스펀딩에서 보기(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