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청년실업으로 인해 새롭게 만들어진 유행어 세 가지. 학자금 대출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된 ‘청년실신’. 좁은 취업문에 장기간 미취업자인 ‘장미족’. 31살까지 취직 못하면 취업길이 막혀 ‘삼일절’. 언뜻 들으면 미소를 자아내는 재치있는 말들이지만, 청년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결코 웃고만 넘길 수 없는 의미심장한 말들이다.

우선 주거 공간의 경우 청년의 14.7%인 약 139만명이 최저주거공간(14㎡) 미만인 고시원, 반지하, 옥탑방 거주한다. 그에 더해 (주거비 외에 필요한) 기본적 생계를 이어갈 생활비가 한 달에 66만 원 정도로 아직 직장을 잡지 못한 청년이 간신히 발을 뻗고 잘 공간에서 기본적 생계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한 달에 백 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돈이 필요하게 된다.

주거비용의 경우 부모님이 내 주더라도 생활비 66만 원은 대부분 청년 스스로가 충당한다고 하면, 66만 원은 최저임금 5,580원 기준으로 하루 6시간씩 20일을 꼬박 일해야 간신히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다. 최저임금이라도 잘 지켜지면 다행이지만 대개의 아르바이트 자리는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청년들에게 제시한다.

만약 학생 신분이라면 이에 더해 등록금까지 내야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을 듣는 것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쏟아 부어도 이 금액을 감당할 수 없다. 결국 많은 청년들은 기본 생활 유지를 위해 대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현실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평균 부채액이 무려 642만 원으로 대학문을 나서는 순간 설레는 미래를 꿈꾸기는커녕 빚쟁이로 전락하는 셈이다.

당연히 청년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칠 수밖에 없고, 그 탈출구로 비교적 높은 연봉과 복지수준, 무엇보다 잘리지 않고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을 선호하게 된다. 중소기업에 들어갈 경우 해가 지날수록 연봉격차가 오히려 더 커지기 때문에 자칫 빈곤의 굴레 속에 갇힐 거란 ‘현실적 불안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청년들에게 정규직은 단순히 고생하기 싫어서 찾는 회피처나 현재 살만한 상태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쫓는 목표 따위가 아니라, 현재 처한 빈곤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라 할 수 있다.

20150204_01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청년들을 기다리는 건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그냥 ‘비정규직’이다. 점점 줄어드는 정규직 일자리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보니, 당장의 생계를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선택할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비정규직이야말로 빈곤의 굴레로 떨어지는 급행열차와도 같다는 점이다.

우선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4.3%에 불과하다. 사회보험 가입률도 44.7%로 84.1%인 정규직의 절반 수준. 평균 근무기간도 2.5년에 불과해서 (정규직 7.1년) 일을 익힐만 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결국 비정규직을 선택하게 되면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성에 시달리며 이 곳 저 곳을 떠돌며 나이만 먹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서른을 넘기게 되면 그 어느 곳도 받아주지 않는 ‘떠돌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게 비정규직 일자리를 선택한 청년의 전형적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결하려면 당연히 정규직 일자리를 확대하고, 비정규직 일자리도 정규직에 버금가는 임금 수준과 고용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상식적인 해법이다. 하지만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와 전혀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한다.

정규직은 과보호하고 비정규직은 덜 보호하다 보니 기업이 겁나서 정규직을 못 뽑고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상황 -2014년 11월 26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급기야는 며칠 후 정규직의 해고요건 완화와 비정규직 근무 기간 확대를 골자로 한 비정규직 종합대책 발표한다.

물론 이러한 정책의 근거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과거 독일에서 시행했던 소위 ‘하르츠 개혁’이 그것이다. 높은 실업율과 저성장으로 어려움을 겪던 과거 독일은 노동 시장의 유연화로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파견근로제나 파트타임 일자리 등 미니 잡(Mini job)을 허용하는 등의 특단의 조치를 시행한다. 일종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통해 실업률을 낮추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가능했던 ‘독일의 사회안전망’ 수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복지 시스템 말이다. 독일의 경우 노동자가 실직하면 실직 전 임금의 90%를 무려 3년간 지급 받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엔 실직 후 하루 구직 급여는 최대 4만 원으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의 급여를 길어야 8개월 정도만 지급 받을 수 있다.

정책의 틀도 완전히 다르다. 독일의 경우 비정규직의 임금과 복지를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향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규직의 고용 안정성까지 낮추는 ‘일자리 하향평준화’에 가깝다. 독일은 노동 시간만 짧을 뿐 시간제 일자리의 수준이 정규직과 거의 차이가 없지만,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앞에서 보듯 그 격차가 차마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크다.

20150204_02

심지어 우리나라에 비해 월등한 수준의 사회 안전망을 갖추고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마련한 독일에서조차 하르츠 개혁으로 인해 과거에 비해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고, 고용주가 이 제도를 악용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현실이다. 이러한 방식의 일자리 나누기가 임시방편이 될 순 있지만 궁극적 해결이 되긴 어렵다는 걸 시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커녕 겉핥기식 따라 하기로 그나마 안정적이던 정규직 일자리의 안정성까지 허물려 하니 청년들의 입장에선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한 청년이 최경환 경제 부총리에게 분노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고, 이 편지는 작년 말 대자보 형태로 서울 모 대학에 게재됐다. 내용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최경환 아저씨, 저는 좀 화가 나 있습니다. 아저씨가 하신 말 때문에요.

시쳇말로 ‘애를 끊는’ 듯 한, 하지만 분노를 넘어서서 설득력 있는 합리적 주장을 펼치는 청년의 성숙한 편지 내용은 동영상 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