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1901_01

이게 바로 제 눈을 좋게 만들어준, 왕의 열매라고 하는 아로니아입니다!

지난 1월 4일, MBN의 인기 프로그램 <천기누설>에는 아로니아 덕분에 잃었던 시력을 되찾았다는 사례자 A씨가 등장했다. 아로니아를 먹고 0.2였던 시력이 1.2까지 좋아졌다는 것.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료진들의 설명이 따라붙었다.

아로니아 성분이 심각한 염증을 호전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이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수정체 혼탁의 발생과 진행을 억제하는데 효과적입니다 - 아로니아 편 출연 안과 전문의

과연 아로니아 섭취만으로 이렇게 극적인 시력 회복이 가능한 것일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A씨에게 직접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천기누설> 홈페이지에는 방송에 출연한 이들의 연락처를 공개하는 ‘출연자 정보’ 코너가 있지만, A씨의 연락처는 공개할 수 없다고 되어있었다.

그런데 바로 아래, 아로니아 구매에 대해 문의하라며 적혀있는 전화번호가 있었다. 이 번호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아로니아를 판매한다 올린 글에 A씨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A씨는 경북 상주에서 아로니아 농장을 경영하는, 아로니아 판매자였다. <천기누설>에 출연했다며 자신의 농장 블로그에 프로그램 영상을 올려놓기도 했다.

상주에 있는 농장으로 직접 찾아가 A씨를 만났다. A씨는 자신이 판매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아 방송 이후 마음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내가 TV에서 봤는데 A씨 맞냐고 그러고, 어디서 (아로니아) 사먹었냐고 그러면 ‘아, 내가 농장하니까 사세요’ 그러기도 참 찝찝하고... 그게 참 그랬지요

2015031901_02

나는 농장을 하니까 나는 광고를 좀 하려고 멘트를 날렸더니 그런 멘트는 못한다고 딱 자르더라고. 자기네(제작진)들은 순수하게 어떤 이익을 바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촬영 당시 본인이 아로니아 판매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제작진이 말렸다는 것. 또 방송은 ‘눈이 좋아져 안경이 필요 없다'며 안경을 방송국으로 보낸 제보자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안경을 소포로 보낸 것도 제작진이 시켜서 보낸 것이라고 했다.

자기네들이 (시력을) 확인한다고 보내라고 해서 보낸 거죠. 확인해봐야 한다고.

취재진은 방송에 출연했던 안과 전문의에게서도 방송된 내용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분은 아마 외상성 백내장이었던가 그런 분일 거에요. 외상성 백내장은 많은 경우에 시간이 지나면 혼자 좋아지거든요. 굉장히 많은 얘기를 하는데 필요한 부분 편집을 해서 나가는 것 같은데요. 그 다음 다음 (프로그램)에 너무 근거가 없어서 저희가 조금 곤란하다 한 이후로는 저희한테 연락 안 하시는 것 같은데...

MBN은 왜 이렇게 무리하게 프로그램을 제작했을까. 이번에 유출된 MBN 미디어렙 업무일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 MBN 미디어렙 업무일지
▲ MBN 미디어렙 업무일지

<천기누설> 아로니아 편이 광고주 한국인삼공사로부터 3천만 원을 받고 만든 프로그램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한국인삼공사 홍보팀 관계자는 ‘누가 집행을 했는지, 누가 기안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관련 사실을 확인해 주지 않았다.

한국인삼공사는 지난해 9월, <홍삼담은 아로니아>라는 신제품을 출시했고, <천기누설> 아로니아 편이 방송된 당일인 1월 4일, 한 홈쇼핑 채널에서 이 제품의 판매 방송을 시작했다. 같은 달 20일 작성된 MBN 미디어렙 업무일지에는 광고주 한국인삼공사와 관련해 ‘1월 초 방영되었던 아로니아건의 경우 홈쇼핑에서 목표치의 150% 판매 달성‘이라고 작성된 것으로 나온다.

2015031901_04

하지만 <천기누설> 제작진은 아로니아 편 방송에서 협찬에 관한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돈을 받고 만든 일종의 광고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방송인 듯, 광고인 듯 모호한 아로니아 편이 방송되고 2주 후인 1월 25일, <천기누설> 홍삼 편이 방송됐다. 홍삼액을 김치에 넣어 먹고 수족냉증을 치료했다는 특이한 사례자 B씨가 등장했는데, 취재 결과 B 씨도 홍삼 농장을 두고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홍삼 판매업자였다. 농장을 찾아가 만난 B씨 역시 판매자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출연하는 데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취재진에게 털어놓았다.

(고민이) 있었죠. 나는 나와서 매출을 올리면 괜찮지만. 만약 시청자들이 보고 ‘어, 저 사람 사업하는 사람이네'하고 알면 프로그램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이렇게 B씨가 출연한 <천기누설> 홍삼 편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도 유출된 MBN 미디어렙 업무일지(아래 사진) 를 보면 알 수 있다. 역시 광고주로부터 돈을 받고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으로 돼 있다.

2015031901_05

▲ MBN 미디어렙 업무일지
▲ MBN 미디어렙 업무일지

게다가 업무일지(위 사진)에는 프로그램 내용을 방송 전에 광고주에게 보여주고 확인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돈을 받고 홍보성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것도 모자라, 광고주의 허락까지 받고 방송을 했다는 뜻이다. 최근까지 MBN의 외주제작사와 작업을 했던 한 작가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제작 시 광고주의 요구를 적정아래 선까지는 맞춰준다’고 밝혔다.

2015031901_07

MBN 문건을 분석한 결과 방영 시기와 프로그램, 아이템까지 일지에 적힌 대로 방송이 진행된 경우는 모두 8건이었다. 대부분 수 천만 원에 광고주와 계약이 됐다고 적혀있다.

2015031901_09

MBN 외주 제작사의 한 피디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이러한 영업과 광고가 새로울 것 없는 관행이라고 밝혔다.

어느 방송국이나 다 마찬가지잖아요. 워낙에 방송 자체가 홍보성이 크잖아요. 저희 방송만 그러겠어요? 다른 프로그램 다 마찬가지겠죠. 이걸 (조사) 하려면 MBC도 해야되고 KBS, SBS 다 해야죠.

MBN 미디어렙 업무일지에 등장하는 한 광고주에게 왜 이런 협찬을 하게 됐는지 물어보자 그는 ‘한국의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돈을 받는 조건으로 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뉴스타파는 협찬을 받지 않느냐고 거꾸로 취재진에게 물어봤다.

2015031901_08

그건 알고 계십니까. 대한민국에 있는 대부분의 프로들이 다 그런 식으로 협찬 받아서 제작하는 것 아닙니까. 뉴스조차도 협찬 받아서 제작하던데. 담당하시는 프로는 뭐라고요? (저희는 뉴스타파라는 언론사인데요) 뉴스타파는 협찬 안 받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