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인과 세 살, 네 살, 여섯 살짜리 아이를 부양하는 한 집의 가장입니다.

매 달 수입은 17만~20만 엔(한화 약 158만~186만 원)으로

가스비, 전기료, 가구 임대료 등을 내고 나면 5만 엔(약 46만 원)이 남습니다.

4월에 소학교에 입학하는 큰아이에게 8천 엔(약 7만 원)짜리

소학교 지정 가방도 사주지 못하는 저는 한심한 아버지입니다.”

위 내용은 언뜻 보면 최근 우리나라 상황 같지만 사실은 과거 일본의 사례다. 1990년대 일본에 찾아 온 고용위기로 인해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현재 우리나라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던 것. 특히 학생들의 용돈 벌이수단이었던 아르바이트에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뛰어들면서 아르바이트가 유일한 생계수단인 사람들이 급증하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은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300엔짜리 도시락 하나를 두 끼에 나눠 먹으며 절약하지만

돈을 모을 무렵이 되면 건강이 나빠진다.”

당시 노동자들이 받던 최저임금은 시간당 714엔(약 6,650원/2005년 도쿄 기준)이었고, 그중에서 연 수입이 200만 엔(약 1860만 원) 미만인 경우가 55.6%에 달할 만큼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수준은 매우 심각했다. 하지만 국가 경제에서 기업을 우선시하는 풍토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논할 때조차 기업의 임금 지불 능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였고, 이로 인해 최저 임금은 지속적으로 억제 된다.

“기업이 살아야

국민이 잘 산다“는 인식

그렇다면 정말 기업이 살아났을 때 국민도 잘 살게 되었을까? 2002년 경기가 회복되자 그러한 인식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지는데, 대기업 임원의 보수가 평균 84%나 증가했음에도 고용자의 보수는 오히려 5조 엔이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기업만 살고 국민은 더욱 살기 어려워진 것이다. 경제분석가 모리나가 다쿠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명목 GDP는 증가했지만 (노동자들이 여전히 가난한 이유는)

인건비를 억제해 주주와 대기업 임원만이 실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 모리나가 다쿠로, 경제 분석가 -

그제 서야 일본 사람들은 기업이 살아야 국민이 잘 산다는 인식에 의문을 품게 된다. 나아가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단순히 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아니라, 노동자가 기본적인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생계비라는 인식이 확산된다.

“기업이 잘 살아도

반드시 국민이 잘 사는 건 아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로 시작된 게 다름 아닌 ‘시급 1천 엔’ 운동‘이다. 야당과 시민사회의 주도로 ’전개 된 시급 1천 엔 운동‘은 점차 일본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되고, 결국 2007년 최저임금이 기존에 비해 크게 오르는 결실을 맺게 된다. 물론 6~20엔 수준으로, 절대적 수치만 놓고 보면 매우 작은 것이지만 이전의 상승폭에 비하면 큰 변화였다.

이 과정에서 특히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진 개념이 ‘다메’라는 것으로, 저수지를 뜻하는 ‘다메이케’에서 유례한 말이다. 큰 저수지가 있으면 가뭄에도 버틸 수 있듯이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도 ‘저축’과 같은 ‘다메’가 있어야 어려운 상황을 견딜 수 있음을 은유하는 표현이다.

지금처럼 ‘다메’가 없으면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열악한 조건의 비정규직 노동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는 소위 ‘프리터족’으로 늙어가게 되지만, 만약 ‘다메’가 있으면 안정된 일을 얻을 때까지 모아둔 돈으로 생계를 꾸리며 버틸 수 있게 된다. 애초에 가진 것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는 최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최저임금은 삶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다메’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최저임금 인상은 가계 지출을 증대시킴으로써 내수 경제가 활성화 되는 소위 ‘소득주도성장’의 기반이 되기도 하다.

한편 현재 우리나라의 최저 시급은 5.580원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OECD 27개국 중 16위(2013년 기준)이며 당연히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를 월 단위로 환산해 보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여덟 시간씩 꼬박 일을 해도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116만 6,220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이 돈으로 현재 우리나라 물가 수준에서 정상적인 일상이 가능하리라고 믿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건, 116만 6,220원이 그나마 최저 임금을 온전히 다 받았을 경우에 해당하는 금액이라는 사실이다. 대개의 비정규적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받고 일을 하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들이나 장노년층처럼 이제 노동시장에 갓 진입하거나 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취약계층’이 가장 불공정한 부분을 감내하고 있는 현실이다. 최저임금이 가진 것 없고 힘없고 그래서 저항할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생계를 볼모로 한 폭력으로까지 작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시급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4천 원,

하루 5시간씩 일해 봤자 이번 달엔 40만원 남짓 손에 쥘 듯해요.

월세를 내고 나면 생활이 막막합니다.

식사는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고...

스무 살이라고 속이고 취업했던 식당일은 시급 6천원을 받았지만,

근로계약서를 써달라고 하자마자 해고됐어요.”

- 고등학교 아르바이트생 A씨 -

물론 최저임금 인상은 이미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는 대기업과 달리 자영업자들이나 영세 중소기업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동영상에 해당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으나)이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정부의 세제 지원과 같은 혜택 등을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에게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사회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최저 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다들 공감하면서 그 부담을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에게만 떠넘기는 건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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