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는 ICIJ(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와 HSBC 스위스지점 프라이빗 뱅크 고객 자료에서 한국과 연관된 비밀계좌를 살펴보다 천만 달러, 한화로 백억 원 넘는 돈이 들어있던 계좌를 발견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한국 관련 계좌는 모두 20개인데, 예치된 금액은 모두 23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백억 원 이상이 한 개인 소유의 계좌에 들어있는 것이다.

계좌 개설일은 1999년 4월 28일, 소유주는 1957년 생 박 모 씨로 기재돼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박 씨는 베트남에 공장을 둔 연매출 100억 원 대의 신발제조업체 대표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 씨는 계좌를 개설하면서 소유주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 계좌 명의를 ‘Danielson 99’라는 영문명으로 해 놨다. 이 명의로 HSBC 스위스 지점에 2개의 계좌를 만들었는데, 2006년과 2007년 사이에 예치된 최대 금액이 약 천만 달러, 한화로 백억 원이 넘는다. 박 씨 회사의 이사로 등재돼 있는 아들과 딸을 포함해 가족들도 계좌의 이해관계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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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 씨와 그의 아들, 딸은 지난 2013년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들을 추적할 때도 발견된 적이 있었다. 이들은 지난 2008년 8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당카 홀딩스 리미티드(Danka Holdings Limited)’라는 페이퍼컴퍼니의 등기 이사이자 주주로 등재돼 있었다.

취재진은 스위스 비밀계좌 뿐만 아니라 조세피난처까지 이용해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돈의 출처와 운용 목적은 무엇인지 묻기 위해 서울 개포동에 있는 박 씨의 사무실을 여러 차례 방문한 끝에 어렵게 박 씨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박 씨는 답변을 거부했고, 뉴스타파의 조세피난처 보도 이후 국세청 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스위스 계좌도 국세청에 신고한 계좌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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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세 당국에 신고했다면서 왜 거액의 외환을 소유주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비밀리에 개설한 스위스 비밀 계좌에 넣어뒀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취재진은 국세청에 박 씨의 주장처럼 그가 문제의 스위스 계좌를 제대로 신고했는지, 그렇지 않다면 국세청이 자체적으로 그 계좌의 존재를 파악해 조사하고 있는 상황인지 물었지만 국세청은 “개별 납세자에 대한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HSBC 스위스 지점 비밀 계좌 고객 명단에는 연매출 1조 6,000억 원 규모의 세방그룹 창업주인 이의순 명예회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92년 7월 6일 설립된 이 계좌 역시 소유주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명의를 숫자와 알파벳 조합인 ‘19615 SS’로 해 놨다. 아들인 현 세방그룹 이상웅 회장도 이 비밀계좌를 같이 소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과 2007년 사이에 이 계좌에 예치된 최대 금액은 약 410만 달러, 한화로 40억 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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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방그룹 회장 부자가 소유했던 비밀계좌는 지난 2006년 검찰이 세방그룹을 군납비리 혐의로 압수수색할 때 금고에 있던 해외 비자금 조성 자료를 발견하면서 발각된 바 있다. 당시 이 회장은 아버지가 20여 년 전 해외에서 조성한 백만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지 못하는 사이 불어난 돈일 뿐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해명한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에 뉴스타파가 확보한 자료를 통해 이 회장 자신도 스위스 계좌를 직접 소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회장의 자산을 관리한다는 세방그룹 비서실은 이미 다 지난 일이고 계좌는 폐쇄했다고 밝혔다.

한편 태평로 옛 삼성 본관 26층 전략기획실을 주소지로 기재한 스위스 비밀계좌의 명의인인 삼성중공업 김형도 전무는 이 계좌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주장했으나, 뉴스타파 보도 이후에도 상속 사실을 명확하게 입증하는 증거를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