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의 심각성을 말할 때 '주문'처럼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보험사기로 인한 민영보험 누수 추정액이 3조 4천억 원(2010년 기준)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은 이로 인해 1가구당 20만 원, 국민 1인당 7만 원의 보험료를 추가 부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논리는 결국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제정까지 이어졌습니다. 보험사기로 인해 선량한 보험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늘고 있으니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보험사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영보험의 보험사기 규모는 2010년 기준 약 3.4조원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해 국민 1인당 7만원, 1가구당 20만원의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하여 선량한 계약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음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안(2013.8.27 박대동의원 대표발의) 제안이유 중

보험사기에 대한 처벌과 수사를 강화하면 결국 보험소비자들의 보험료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기대효과 : 형벌의 일반적 예방 효과와 누수 보험금 절감에 따른 보험료 인하 여력을 확보하고 부당한 보험금 지급지연·거절 등 방지
<금융감독원 홈페이지 업무자료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제정'

보험업계, 금융당국, 수사기관이 보험사기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면서 적발액도 매년 늘고 있습니다. 2012년 4,500억 원 수준이었던 보험사기 적발액은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시행된 2016년 7,000억 원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7,301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보험사기가 많다고 말합니다. 보험사기 추정규모 대비 실제 적발액이 10~20%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단속의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보험사기 단속 과정에서 선량한 보험소비자의 피해가 다소 생겨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당한 보험금 청구가 조금 위축되더라도, 다소 억울한 보험사기범이 나오더라도, 다수의 보험가입자의 피해를 막는 일이 우선이라는 취집니다.

※ 관련 기사 : 보험의 배신⑤ "아가, 할미는 참말로 보험사기꾼이 아니데이" , 보험의 배신⑥ 보험사기를 창조하는 '부당거래'

때론 이런 주장이 타당해 보입니다. 단,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습니다.

‘피해본 것 없어도 보험사기’ … '뇌피셜' 적발액

'뇌피셜'. 신체기관 뇌와 공식적인 발표를 뜻하는 '오피셜'(Official)을 합한 누리꾼들의 신조어입니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의 주관이 반영된 추정을 일컫는 말입니다. 수천 억 원, 수조 원에 이른다는 천문학적 보험사기 규모는 실상 보험업계의 뇌피셜에 가깝습니다.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액이 7,301억 원’이라는 문장을 보겠습니다. 유심히 봐야할 부분은 ‘피해액’이 아닌 ‘적발액’이라는 것입니다. 보험업계의 말대로 보험사기 피해가 소비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럼에도 업계가 적발액 통계를 고집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적발액은 ‘현장적발액’과 ‘수사적발액’으로 나뉩니다. 현장적발액은 보험사가 자체 심사 과정에서 보험사기라고 판단해서 지급하지 않은 보험금이고, 수사적발액은 수사기관이 적발한 보험사기 금액입니다.

적발액 7,301억 원의 약 70%, 5,164억 원은 현장적발액입니다. 즉 보험소비자에 지급된 적이 없는 보험금입니다. 수사적발액은 채 30%(2137억 원)가 되지 않습니다. 실제 소비자의 보험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보험사기 피해 금액은 이 정도라는 얘기입니다.

피해를 본 보험사도, 이득을 본 소비자도 없는 현장적발을 보험사기로 볼 수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를 보험사기로 보고 현장적발액에 포함할 지도 보험사 마음입니다.

적발인원의 비중으로보면 차이는 더 큽니다. 지난해 발표된 보험사기 적발인원 83,535명 가운데 수사기관에 의해 적발된 수사적발 인원은 17,152명, 발표된 인원의 20%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험사들이 매년 늘어나는 보험사기 적발액 규모를 보험료 인상의 근거로 삼아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고의적인 통계 부풀리기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소비자의 ‘단순한 보험금 과장 청구’까지 보험사기라고 부르는 보험업계, 그렇다면 보험업계가 자신의 피해를 과장하고 있고 이 과장이 다시 보험료 인상의 원인이 된다면 이것도 일종의 사기가 아닐까요.

보험사기 추정규모 3~5조 원이라는 '유령'

보험사기 추정규모 '3조 4천억 원'도 보험업계의 뇌피셜에 가깝습니다. 처음 이 추정치가 나온 것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발주한 연구용역 '보험재정 및 보험금 누수방지를 위한 공·민영보험 협조체계 구축 및 제도개선 방안 연구'(2012년)였습니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과 보험연구원이 함께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취재진은 이 연구의 책임자였던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3조 4천억 원'이라는 액수는 어디까지나 ‘보험업계의 추정액’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내막은 이렇습니다. 애초에 연구는 두 갈래로 진행됐다고 합니다. 연구의 주된 목적은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한 통합전산시스템 구축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김 교수와 서울대 산학협력단 연구진이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구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보험연구원은 김 교수 측 연구진이 참고할 민영보험사의 보험금 누수 규모를 산출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3조 4천억 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도 이 단계에서 산출됐습니다. 어떤 자료를 활용할 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보험사기로 규정할 지 결정하는 것도 모두 보험연구원 소관이었습니다.

보험연구원은 14명 이사진 대부분이 보험업계의 임직원인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생명·손해보험협회 회장이 당연직 이사를 맡고, 보험사에서 선발된 10명 이사들로 이사진이 구성되는 구조입니다. 보험업계 스스로 보험사기 규모 추정액을 산출한 '셀프' 연구였던 셈입니다.

김 교수는 당시 발표된 보험사기 추청 규모 역시 다소 부풀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단순히 보험금 지급 빈도나 액수 등의 기준으로 광범위하게 추출된 표본을 토대로 전체 보험사기 규모를 추산하는 연구 모델을 썼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빈도로 보험 사기가 발생한다는 가정 하에 산출된 이 수치는 실제와는 차이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2012년 당시 1년 동안 지급된 보험금 규모는 27조 4천억 원입니다. 실제 보험사기 규모가 3조 4천억 원이라면 전체 지급보험금의 12.4%가 보험사기라는 말이 됩니다.

이런 속사정과 상관없이 이 보험사기 추정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입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김정훈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금융감독원의 제출자료를 근거로 보험사기 누수추정액이 무려 5조 4,568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습니다.

4년만에 보험사기 규모가 2조 원 늘어난 배경에는 기묘한 계산법이 있습니다. 보험사기 적발액이 늘어난만큼 적발되지 않은 보험사기 규모도 늘었다는 전제에서 나온 계산입니다.

금년 보험사기 누수 추정액 = 8년전 추정액 x (1+8년전 대비 적발액 증가율)

2010년(3,747억 원) 대비 2014년 보험사기 적발액(5,997억 원)은 60%가 늘었습니다. 이 증가율을 본래의 추정액 3조 4천억 원에 곱해 보험사기 누수 추정액이 2조 원가량 더 늘었을 것이라 추산했습니다. 추정에 추정을 더하는 '뇌피셜'인 셈입니다.

"1부터 100까지 다 이익만 보겠다는 심보"

앞에서 보신대로 보험사기 적발액은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험소비자들의 보험료 부담은 그만큼 줄었을까요?

2016년 보험사기방지 특별법까지 통과시켜가며 보험사기 적발에 열을 올렸지만 지난해 보험료는 오히려 평균 13.6% 올랐습니다. (손해보험협회 공시, 손보-생보 20개사 평균치)

반면 보험사들은 톡톡히 효과를 봤습니다. 소비자로부터 받은 보험료(위험보험료) 가운데 얼마나 보험금으로 지급됐는지(발생손해액)를 나타내는 '손해율' 지표는 같은 시기 크게 개선됐습니다. 2016년에 비해 평균적으로 16.3%p 줄었습니다(손해보험협회 공시, 손보 10개사 평균치). 그만큼 보험사들이 받은 보험료에 비해 소비자들에게 지급한 보험금이 줄었다는 얘깁니다.

업계는 여전히 손해율이 100% 이상, 즉 소비자가 낸 보험료에 비해 지급되는 보험료가 많아서 보험료 인하 여력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것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애초에 손해율을 산정할 때 이용되는 보험료, 즉 ‘위험보험료’는 이미 보험사가 챙겨야할 각종 운영경비, 수수료, 보험설계사 수당을 뺀 나머지 보험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보험금으로 지급하려고 전체 보험료에서 이것 저것 다 빼고 계산해 놓은 금액에 비해서 지급된 보험금이 조금 더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별도의 막대한 금융이자를 챙기는 보험사가 꼭 손해율에서도 이윤을 남겨야 하는 것일까요? 지난해 전체 보험업계가 남긴 순이익은 7조 8천억 원이었습니다.


손해율 개선은 결국 보험료 인하로 이어진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설명이지만, 일부 보험전문가들은 교과서적인 설명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보험사가 가진 '통계의 기술'을 거치면 이익 대부분은 결국 보험사에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보험사기의 피해를 과장하는 이면에는 소비자를 상대로 '1에서부터 100까지 모두 이익을 봐야 한다'는 보험사들의 과욕이 있다고 보험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이미 큰 이윤을 남기는 보험사들이 보험사기를 빌미로 이익의 폭을 더 키우겠다는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창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업계가 보험사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결국 손해율이 높은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보험사들이 이 두 종류의 보험상품까지 모두 이익을 봐야한다고 욕심을 부리고 있고, 그 욕심을 ‘보험사기범 때문에 전체 보험소비자 이익을 해친다’는 논리로 포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업이 1부터 100까지 다 잘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업을 하다가 보면 그 중의 한두개는 적자를 내는 것이 당연한데, 그 적자 내는 자동차보험, 실손보험 두 가지를 가지고 '우리는 이 부분도 흑자 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잖아요. 그게 소위 말하는 '일부 보험 사기범들 때문에 전체 계약자의 이득이 침해가 된다'란 논리로 포장되는 거죠. 대부분이 흑자인데 두 개만 적자라고 해서 이것을 보험사기라고 해두지 않으면 나머지 전체가 다 망한다고 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여태까지 그 선량한 보험 계약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도 잘 안해왔으면서 그 논리를 갖다 대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좀 약한 논리다고 생각합니다.

김창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취재 : 오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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