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1일, 서울 성수역 앞에 수제화 노동자 5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제화경력 47년의 이현수 씨가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동료 노동자들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이제는 새벽 첫차 타고 출근하지 말고, 막차 타고 퇴근하는 이런 일은 하지 맙시다.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살을 깎아 먹고 살았던 겁니다. 제발 이제 우리 스스로의 살을 깍아먹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맙시다. 그런 행동을 하니까. 사장들이 ‘니네들은 그만큼만 줘도, 이렇게 장시간 일해도 버티는구나’라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 노동자들을 갖고 노는 겁니다. 이제는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말고 8시 반 출근, 7시 퇴근 이런 문화를 가져봅시다. 제화 노동자 동지 여러분.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현수 / 수제화 노동자 (47년 경력)

주위 사람들을 이들을 ‘족쟁이’라고 부른다. 적게는 30년, 많게는 50년, 평생 신발을 만들며 살아왔다. 가난한 시절, 기술을 배워야 살 수 있다는 말에 학교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한 채 제화일을 익혔다. 명동 시절을 지나 성수동으로 모여든 때가 1990년대 초반이다. 지금은 전국 수제화의 70% 이상을 성수동에서 제작한다.

이들을 수제화의 장인, 명인, 명장이라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하루 평균 16시간의 노동, 20년 넘게 동결된 임금,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임, 그리고 온갖 유해 약품으로 인한 열악한 노동환경.  2018년 대한민국 수제화의 메카, 성수동 수제화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 성수동 수제화 노동자들의 작업장

2018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성수동 수제화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거리에 나왔다. 시작은 한국 최고의 수제화 브랜드인 탠디(Tandy) 노동자들의 36일 간의 파업과 16일 간의 점거농성이었다. 탠디 노동자들의 외침은 20년 넘게 한 번도 노동자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외쳐본 적이 없는 수제화 노동자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 2018년 5월, 탠디 수제화 노동자들의 점거 농성

수제화 노동자들은 하루 주어지는 일감량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이른바 “개수 임금제”(도급제)로 살아간다. 사용자들은 이를 이용해 일감 갑질은 물론 비인간적인 대우를 한다. IMF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해  “소사장”들로 만들었다. 4대보험은 물론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가 된 것이다.

▲ 성수동 수제화 노동자들의 작업장

백화점에서 20, 30만원에 팔리는 구두 한 켤레의 제작 공임은 5천 원에서 7천 원 선이다. 반면 백화점이 챙기는 수수료는 30%를 훌쩍 넘는다. 백화점, 홈쇼핑, 아웃렛 등의 횡포는 수제화 원청회사와 하청회사가 제화 노동자를 다시 착취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다. 지금까지 자기를 부정하며 살아왔다. 긴 시간 침묵하며 길들여진 시간이었다. 인간에 대한 모멸이었고 노동에 대한 절망이었다. 전화 한 통으로 봉천동의 탠디 노동자들이 분노하며 거리에 모였듯이 성수동의 제화 노동자들 역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 2018년 6월, 임금인상과 소사장제도 폐지를 요구하며 길거리에 나선 수제화 노동자들

사용자들은 단체행동을 하는 노동자들을 온갖 방법으로 회유하고 탄압한다. 때로는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성수동의 수제화 노동자들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수십년 간 동결된 공임의 인상을 요구하고 “소사장제” 폐지를 촉구한다. 그리고 성수동의 수제화 노동자들은 이제 사측 과의 교섭을 시작했다.

이 영상은 지난 1년 동안의 성수동 수제화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 파업을 담은 것이다. 뉴스타파가 2018년부터 독립다큐감독과 독립PD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으로 문정현 독립다큐 감독이 취재, 제작했다.

문정현 감독은 2003년부터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집단 <푸른영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최우수다큐멘터리상)을 받은 <할매꽃>(2007), 야마가타국제다큐영화제에서 수상한 <용산>(2010),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최우수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붕괴>(2014, 이원우 공동연출) 등이다.

취재, 연출 : 문정현 독립다큐감독
촬영 : 정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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