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계속된 보험사-재보험사의 '헬기 보험료 나눠먹기' 행태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항공보험 재보험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다른 사업자들의 진입을 막아 온 코리안리재보험(이하 '코리안리')에 대해 시정명령과 수십억 원대 과징금 부과(잠정 76억 원)를 결정했다.

20년 동안 지출된 헬기 보험료는 3,5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정부기관이 공공기관에서 지출한 관용헬기 보험료만 지난 12년 동안 1,000억 원에 이른다. 국내 11개 손해보험사들은 헬기 보험료 입찰에서 매번 같은 금액으로 응찰하는 방법으로 보험료를 나눠 먹었다. 뉴스타파는 이같은 손해보험사와 재보험사의 독과점 및 담합 행위 때문에 국내 관용헬기 보험료가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관련보도 : 보험의배신⑧ : 관용헬기 보험료 천억 원...세금 나눠먹는 보험사들)

재보험이란 보험사가 계약의 보상책임 일부 또는 전부를 다른 보험사에 전가하는 보험을 말한다. 코리안리는 국내 항공보험 재보험 시장의 약 90%, 전체 재보험 시장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상의 독점 사업자다. 1993년 국내 보험사와 우선적으로 재보험 계약을 맺어야 하는 ‘국내우선출재제도’ 등이 폐지되면서 코리안리의 제도적인 독점 권한이 폐지됐다. 하지만 코리안리는 국내외 사업자들과 특약을 체결해 독점적 거래 구조를 계속 유지해 온 것으로 이번 공정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특약 어기면 불이익’...코리안리는 어떻게 시장을 독점했나

공정위에 따르면, 코리안리는 1999년부터 국내 손해보험사들과 재보험 물량 전체를 자신에게만 출재하도록 하는 내용의 항공보험 재보험 특약을 체결했다. 국내 진출 가능성이 높은 해외 재보험사와는 별도의 재재보험(재보험의 재보험) 특약을 체결해 자신을 경유해서만 국내 보험사와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담보 능력을 초과해 특약 적용대상 한도를 늘려온 사실도 확인됐다.

이같은 특약에 따르지 않는 손해보험사, 해외재보험사, 보험중개사에게는 불이익을 줬다. 2013년 코리안리는 해외 재보험사의 요율로 관용헬기 보험 입찰에 참여한 모 손해보험사에 특약 해지를 경고하고 이후의 입찰에서 요율을 제공하지 않았다. 2014년에도 민간헬기보험 입찰에서  해외 요율로 투찰한 한 손해보험사는 이후의 입찰에서 5~10% 이상의 지분을 배정받지 못하도록 제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국내 손해보험사와 거래를 시도한 해외 재보험사에는 기존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해외 재보험사와의 거래를 중개하려한 보험중개사 측에는 담당 직원을 징계해달라는 요청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상 국내 항공재보험 시장 전체를 코리안리가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같은 독점적 거래 구조는 세비 낭비로 이어졌다. 경찰청, 소방청, 지자체 등 기관은 코리안리가 제시한 요율에 따라 책정된 관용헬기 보험료를 지급할 수 밖에 없었다. 관용헬기 보험 입찰에 응한 11개 보험사 모두가 코리안리의 요율을 사용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016년 공정위가 헬기보험 시장의 독점 및 담합 행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자 일부 손해보험사는 해외 재보험사의 요율로 보험료를 책정했다. 그러자 매년 90% 이상이었던 관용헬기 보험 입찰의 낙찰율은 50% 아래로 떨어졌다. 요율 경쟁이 시작되자 코리안리도 자신의 요율을 전년 대비 65%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그간 독점적 시장 구조로 인해 정부, 지자체 등이 적정가보다 2배 수준의 보험료를 더 내고 있었던 셈이다. 지난 20년 간 코리안리가 독점해온 헬기보험 시장의 전체 매출액은 3,500억 원 가량인 것으로 추산된다.

공정위는 이번 제재 결정으로 보험계약자가 다양한 보험요율 및 보장조건을 비교해 선택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코리안리 측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내년 1월 중순 공정위의 정식 의결서가 접수되면 검토 후 행정 소송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보험사들은 무혐의?...공정위 "추가조사 하겠다"

20년째 계속된 보험업계의 불공정 관행에는 제동을 걸었지만 이번 공정위의 결정은 반쪽짜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코리안리 중심의 시장 구조에 편승해 '나눠먹기' 관행을 이어온 11개 손해보험사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2001년과 올해 10월에 이어 3번째 면죄부다.

국내 11개 손해보험사는 관용헬기 입찰 등에서 1원 단위까지 같은 보험료를 책정해 투찰해 왔다. 이로 인해 가격 경쟁을 유도해 세비를 절감하겠다는 공개입찰제도의 취지가 무력화됐고 관용헬기 보험 입찰의 낙찰률은 매년 90%를 웃돌았다. 가격 경쟁이 없다보니 보험사들은 아예 컨소시엄을 구성해 낙찰 보험료의 지분을 나누는 이른바 '짬짜미' 방식으로 수익을 배분했다.

국내 재보험사가 코리안리 하나이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주장이지만, 결국 보험사 역시 독점 체제를 이용해 손쉽게 수익을 얻은 ‘적극적인 수혜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례없는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공정위 관계자에 따르면, 손해보험사 간에 요율 단일화와 보험계약의 지분 배분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는 일선 직원들의 주장과 달리, 구체적 증거가 없어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이 위원회의 판단이다. 일부 위원은 오히려 보험사를 코리안리의 독점적 지배력에 의해 이용당한 피해자로 봐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보험사들을 상대로 추가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에 제재 결정이 난 코리안리의 재보험과 관련된 손해보험사 거래 현황을 일괄적으로 받아 다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취재 : 오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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