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나이가 만 얼마인 청년입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이 만난 청년들은 모두 자기소개를 하면서 자신의 나이를 ‘만 나이’로 소개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해마다 늘어가는 나이가 부담스럽다.

“올해 36살이고요. 만으로는 34살입니다.”

올해 만 34살이 된 구직자 정재영 씨는 나이 많은 신입사원도 채용한다고 하는 IT 프로그래밍 분야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력서에 적는 나이도 ‘만 나이’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던 그는 군대를 다녀온 후 중퇴했다. 집안의 경제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남들 다 준비하는 ‘스펙’을 쌓을 수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편의점, 배달, 체인점 주방 조리, 서빙, 공장, 식품 제조, 매장 판매직 등 30대 초반까지 정 씨가 해본 ‘알바’ 목록이다. 알바로 받은 돈은 전부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14시간을 일하고 퇴근을 했어요.
몸도 고됐는데 지금까지 쌓였던 게 복받쳐 올랐나 봐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 털썩 앉았는데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내가 여기(공장)에서 십수 년을 일하면서 돈을 모아?’
라고 생각했을 때는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요

정재영 36세 / 구직자 인터뷰 中
▲올해 만 34살이 된 구직자 정재영 씨

정재영 씨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직업훈련을 통해 출판 디자인 교육을 받은 후, 2016년 여름, 첫 정규직이 되었다. 월급은 130만 원, 아르바이트로 받은  최저임금과 같은 수준이었다.

2018년 1월 계약 기간이 종료된 이후, 출판 분야 재취업 대신 새로운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현재는 서울의 한 시민단체에서 반상근으로 일하며 월급 100만 원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IT 프로그래밍 분야를 공부 중이지만 비전공자인 그로써는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학원비가 월 100만 원이나 되기 때문에 독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재영 씨는 다시 직업훈련을 받기 위해 저소득층 유형으로 취업성공패키지 사업 참가를 신청했다. 3년 전 출판 디자인 직업훈련을 받은 이력이 있는 정재영 씨는 세 차례 선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취업성공패키지는 만 18세 이상부터 34세 이하 청년들을 대상으로 취업상담 및 직업훈련, 취업알선을 제공하는 정부 지원 사업이다. 1월 30일 자로 세 번째 탈락 통보를 받은 정재영 씨는 직업훈련 신청을 계속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고심중이다.

“올해 27살입니다. 만 25살이에요.”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본인의 꿈을 ‘탈조선’이라고 했다. 올해 만 25살이 된 안내직 파견노동자 이서현 씨는 대학에서 문화재 보존을 전공했다. 문화재수리기능사 자격도 취득했지만 일찌감치 문화재 보존 분야의 취업을 포기했다. 일자리의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의 계약직이었기 때문이다.

이서현 씨는 이후 서울의 한 다중이용시설에서 안내데스크 일을 시작했다. 중국 유학을 위한 학자금을 마련을 위해서다. 대학 시절 중국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중국어에 ‘올인’ 하기로 결심했다. 중국 대학에 편입학을 해, 중국어를 공부해서 통 번역 일을 하는 것이 현재 이서현 씨의 꿈이다.

중국어 공부를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말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수준의 스펙을 쌓을 테니 중국 유학을 갔다 와도 비정규직을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중국 유학비를 모으기 위해 시간과 돈을 쪼개어 사용하는 것은 이서현 씨 삶의 습관으로 자리 잡혔다.

▲출근길, 버스안에서 타이머를 맞춰놓고 중국어 공부 중인 이서현 씨

안내데스크 직원은 주말과 공휴일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이서현 씨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시간을 쪼개 버스 안에서 중국어 공부를 한다. 이른 출근으로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커피값이 천 원대인 테이크아웃점을 향했다.

마지막 몸부림? 필사의 몸부림..
탈조선을 하겠다는 의미도 있고
중국어 공부를 하면,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중에 실질적으로 내 삶의 질을
조금 더 높여주지 않을까라는 의미에서
탈출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도 큰 것 같아요.

이서현 27세 / 안내직 파견노동자 인터뷰 中

“제 나이는 만 31살입니다.”

올해 만 31살이 된 9년 차 웹디자이너 이정은(가명) 씨가 쓴 이력서는 천 건이 넘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직장에 들어가기까지 본 면접도 200번이 넘는다. 갈수록 눈높이는 낮아졌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정은(가명) 씨는 웹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한 후 9년간 옮겨 다닌 직장은 정규직, 계약직 할 것 없이 10곳 가까이 된다. 잦은 이직을 경험한 이 씨의 취업 인생에서는 청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정은(가명) 씨는 2010년 인턴을 거쳐 월급 120만 원의 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다니던 회사가 망하고 다른 디자인기획사 정규직으로 옮겼지만 장시간 노동에 수당도 없는 포괄임금제로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았다. 주로 하는 일은 디자이너 경력에 도움 되지 않는 허드렛일이었다. 일반 중소기업의 정규직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번 임금체불도 당했다.

이후 대기업 1년 계약직으로 이직했지만 보수는 정규직 연봉의 3분의 2 수준이었다. 중소업체 정규직과 파견직을 전전하던 이정은(가명) 씨는 지난해 말, 스타트업 정규직 팀장으로 경력을 인정받아 3천만 원 대 연봉을 받게 됐다. 그러나 불안은 여전하다. IT 분야의 ‘신생기업’은 통계상 5년 후 생존율이 30% 수준이다.

(이전 직장에서) 그냥 딱 1년 채우고 나왔죠.
그 사업 자체가 중단돼서 계약직들을 우선적으로 내보냈어요.
앞으로 엄청난 기대는 없어요.
그냥 (지금 회사가) 1년 안에만 안 망했으면 좋겠어요. 소박하게.

이정은(가명) 33세 / 웹디자이너 인터뷰 中

고용한파에 부딪친 ‘잃어버린 세대’의 우리나라 청년들

최근 LG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우리나라 잃어버린 세대 등장의 의미>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0년대 말부터 한국 사회에 취업난과 함께 ‘잃어버린 세대’가 등장했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경제적 환경 변화로 인해 이전 세대에 비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고용 불이익을 당하는 기간이 누적될 때, ‘잃어버린 세대’가 형성된다.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중반에 학교를 졸업한 일본의 청년들에게 닥쳤던 장기 취업난이 우리나라 청년들에게도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2019년 1월 청년유니온 집담회에 참여한 청년들이 퇴사를 유발하는 요인을 적어놓은 쪽지

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는 게 힘들다. 웬만큼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내 집 마련이나 가정을 꾸리는 미래는 청년들에게 먼 세상 이야기다. 꿈? 안 꾼 지 오래다. 미래가 불투명한 지금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 청년들의 꿈이다. <목격자들> 제작진은 지난 한 달 동안 만난 청년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청년들은 애써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늘  ‘조금만 더 힘내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고.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최미혜
연출 남태제

뉴스타파는 권력과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진실만을 보도하기 위해,
광고나 협찬 없이 오직 후원 회원들의 회비로만 제작됩니다.
월 1만원 후원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