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반경이었어요. 조사 시작과 동시에 H성형외과를 압수수색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제가 작년에 강남경찰서에 갔을 때와는 너무나 다르다고 느꼈어요. 작년에는 딱 30분 겉핥기로 물어보고 말았거든요.

김민지(가명) 전 H성형외과 간호조무사

발빠른 대응이었다. 경찰의 대응은 지난해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H성형외과의 전직 간호조무사 김민지(가명)씨. 뉴스타파에 이부진 사장의 프로포폴 상습 투약 의혹을 제보한 그가 23일 저녁,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이하 광수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기자는 광수대까지 김 씨와 동행했다.

오후 6시경 시작된 조사는 자정이 돼서야 끝났다. 조사를 마치고 나온 김 씨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 너무 상세히 물어봤어요. 수년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이 많아서 저도 답답했어요. 찔끔찔끔 생각이 나서, 생각나는대로 열심히 대답했습니다. 이부진 사장이 병원에 온 날이 조금씩 생각나더라고요. 다 진술하고나니 속이 시원하네요.

제보자 김민지(가명) 씨/H성형외과 전 간호조무사

지난해 7월, 김 씨는 H성형외과가 위치한 서울 강남경찰서에 이부진 사장의 프로포폴 상습투약 의혹을 제보한 적이 있었다. 나름 열심히 설명했지만,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수사결과는 고사하고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수사를 하기는 하는 건가? 괜한 일을 벌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6개월이 흐른 지난 1월, 김 씨는 뉴스타파에 제보를 결심했다. 인터뷰는 수차례 진행됐다. 뉴스타파가 이부진 사장 관련 첫 기사를 낸 20일 밤, 김 씨는 울먹이며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기자님 무서워요. 저 어떻게 되는 거 아니에요?  전 성형외과가 잘못한 걸 제보했고, 전 잘못한 것이 없는데...댓글을 보니 저를 욕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왜 제가 욕을 먹어야 하죠? 저 혼자의 힘으로는 이 문제를 밝힐 방법이 없었고, 그래서 뉴스타파와 인터뷰 한건데…

제보자 김민지(가명) 씨/H성형외과 전 간호조무사

뉴스타파 보도 직후 경찰 수사 시작… 해당 병원은 협조 거부

▲지난 23일, 제보자 김민지(가명) 씨가 참고인 진술을 받기 위해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에 출석했다.

뉴스타파가 이부진 사장의 프로포폴 상습투약 의혹을 보도한 다음 날, 경찰은 강남보건소와 함께 해당 병원을 방문했다. 이 사장의 프로포폴 상습 투약 의혹을 풀어줄 진료기록부와 마약류관리대장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병원측은 협조하지 않았다. “압수수색 영장이 없으면 기록을 내 줄 수 없다”는 논리로 버텼다. 경찰과 보건소 직원들이 병원에서 밤을 새며 대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틀 뒤인 23일,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받은 뒤에야 병원의 각종 기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뉴스타파 보도 직후, 경찰은 제보자 김 씨의 진술을 받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취재진에게도 ‘제보자 설득’을 요청했다. 취재진과 경찰의 설득에 제보자는 결국 수사협조를 약속했다.  제보자 김 씨가 광수대에서 조사를 받는 시간, 경찰은 H성형외과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25일 저녁, 뉴스타파는 예고한대로 이부진 사장의 프로포폴 상습투약 의혹에 대한 추가 증거를 공개했다. H성형외과 직원들의 카카오톡 대화방(이하 단톡방) 내용이었다. 단톡방에는 H성형외과에서 마약류 기록이 상습적으로 조작된 흔적, 병원 직원들 사이에서 ‘사장님'이라고 불린 이가 상습적으로 프로포폴 주사를 맞았음을 짐작케 하는 내용 등이 들어 있었다. 김민지 씨는 “단톡방에서 사장님으로 불린 사람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다”라고 주장했다.

후속보도가 나간 뒤, 뉴스타파는 김민지 씨의 동의를 얻어 취재-보도의 단서가 된 김 씨의 휴대전화 2개를 광수대에 제공했다. 광수대는 현재 이 휴대폰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중이다.

H성형외과 원장 유모 씨 잠적, 병원은 일주일째 영업 중단

▲이부진 프로포폴 투약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 정문에는 ‘마약청정 대한민국을 위한 열정과 헌신’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뉴스타파가 이부진 사장 관련 보도를 내보낸 이후, 문제의 H성형외과는 사실상 문을 닫았다. 첫 보도 이후 일주일째(27일 현재) 병원장 유모 씨는 잠적한 사태고, 직원들도 출근하지 않고 있다. H성형외과가 입주해 있는 건물은 관리인에 의해 출입이 통제됐다.

취재진은 지난 26일과 27일 이틀간, 행방이 묘연해진 H성형외과 유 모 원장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었다. 병원은 물론 서울 용산구에 소재한 유 원장 거주 아파트에도 일주일째 드나들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유 원장 자택 문 앞에는 기자들이 두고 간 명함 몇장만 널부러져 있었다. 아파트 경비원은 “유 모 원장과 매일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면서 인사를 했는데, 뉴스타파 보도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 모 원장은 현재 의료법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다.

뉴스타파는 이번 보도를 대략 2개월에 걸쳐 준비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여러차례 유 원장과 H성형외과 직원들을 접촉했다. 하지만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르쇠로 일관했다. 취재진이 찾아가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고, 실제 경찰을 불러 상황을 모면하기 일쑤였다. 취재진이 마음대로 질문할 수 없는 상황이 거의 매일 반복됐다.

‘이부진 의혹’ 제보자, 25일 오전 국민권익위에 공익신고자 신청

지난 25일 오전, 뉴스타파에 이부진 사장의 프로포폴 상습 투약 의혹을 제보한 김민지 씨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공익신고자 신청서를 제출했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며 신변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라 공익신고자는 책임 감면과 비밀 보장, 신분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취재진과 함께 권익위로 가면서, 김민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H성형외과 유OO) 원장과 직원들이 똘똘 뭉칠 줄은 몰랐어요. 직원들이 수사에 협조하고 솔직하게 다 말하는 게 지금 상황에서 본인들한테도 더 유리한 게 아닐까 싶은데... 가족들이 ‘보복 같은 걸 하지 않을까?’라고 걱정을 많이 해요. '요즘 세상에 그럴 일은 없을 거야'라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두렵기도 해요.

제보자 김민지(가명) 씨/H성형외과 전 간호조무사

취재: 강민수 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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