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적폐추적③ 수원대, 5억 원어치 생일케이크의 비밀
2017년 10월 31일 20시 06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시리즈를 2018년 8월부터 2019년 하반기까지 계속해서 보도합니다. 올해는 1919년 3.1 혁명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100년을 보내고 새로운 100년을 맞는 중요한 시점에서 이 특별기획을 통해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을 지배해 온 세력들을 각 분야 별로 분석하고, 특권과 반칙 및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통찰을 99% 시민 여러분과 함께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뉴스타파는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프로젝트를 통해 일제와 미 군정, 독재, 그리고 자본권력의 시대를 이어오면서 각 분야를 지배해온 세력들이 법과 제도를 비웃으며 돈과 권력을 사실상 독점하고 그들만의 특권을 재생산한 현재의 지배계급 시스템을 가감없이 들춰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미래 세대가 과거 지배 체제가 극복된, 그래서 보다 정의롭고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며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함께 모색해 나가려 합니다. -편집자 주 |
‘사학비리’. 그 뿌리는 상상 이상으로 우리사회에 깊고 넓게 퍼져있다. ‘재벌’처럼 이미 보통명사로 통용될 정도다. 일제에 충성했던 사학은 해방 이후 독재권력에 아부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사학은 공공연한 세습과 사유화를 통해 스스로 권력이 됐다. 사학은 법의 통제를 비웃으며 명예와 돈, 그리고 권력까지 움켜쥐고 있다. 그 사이 국가 백년대계가 돼야 할 교육의 공적 기능은 망가져 갔다.
<민국100년 특별기획 :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프로젝트의 ‘족벌사학과 세습’ 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대한민국 대학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뿌리는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3,4대를 이어가는 세습과 사유화를 거쳐 사기업을 능가하는 족벌 경영 체제를 유지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족벌사학이 권력 집단화하며 기득권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기제는 무엇인가. 뉴스타파는 이번 기획을 통해 대한민국 사학 권력의 탄생과 성장과 변천 과정, 특히 족벌 사학이 권력 집단화되고 대를 이어 이 나라를 지배하는 행태와 비결, 이로 인한 폐해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문제 해결 방안을 담아 오늘부터 연속 보도한다.
그 첫 시작으로 뉴스타파는 족벌경영 끝에 4년제 대학을 폐교하고 수백 명의 학생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설립자 일가족이 여전히 또 다른 대학을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실태를 취재했다. 비리사학의 책임자가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은 채 버젓이 다른 학교를 운영하며 사학 권력으로 군림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사학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등장하는 경북과학대는 대한민국 사학 권력의 민낯을 보여주는 하나의 작은 사례일 뿐이다.
경북외국어대학교는 2005년 대구에 설립된 4년제 사립대학이다. 재학생 470명 가량의 소규모 학교였다. 학교가 문을 연 지 10년이 안 된 2013년 8월 자진 폐교됐다. 겉으로는 신입생 감소와 재정난에 따른 결정이었다. 그러나 ‘자진 폐교’ 과정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 대학의 설립자와 일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폐교의 배후엔 곪아 터진 족벌경영과 설립자 일가의 범죄가 숨겨져 있었다.
경북외국어대 설립자는 정하상 씨. 그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철강 도매업을 하며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씨는 1980년 대구 대원고(옛 동국고)를 설립해 본격 학교 사업에 뛰어든다. 1993년 2년제 사립대학인 경북과학대학을 설립한 데 이어, 1996년에는 학교법인 ‘경북외국어대학교’에 대한 설립 인가를 받았다. 4년제 대학이다.
1996년은 김영삼 정부가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한 해였다. 이때부터 일정 조건만 충족하면, 다시 말해 사실상 돈만 있으면 대학을 쉽게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설립자 정 씨의 부인 이영상 씨는 뉴스타파 취재진과 만나 “고등학교와 2년제에 이어 4년제 학교를 ‘가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희망 대로 정 씨 부부는 고등학교에서 전문대, 4년제 대학까지 3개 학교를 거느리는 버젓한 사학 운영자가 됐다.
이후 정하상 씨는 일가족을 대학경영에 참여시켰다. 경북외대가 폐교되기 직전인 2013년, 정 씨의 부인 이영상 씨는 경북외대 총장을, 장남인 정은재 씨는 대학원장을, 차남인 정모세 씨는 부총장을 맡고 있었다. 이사장에서 총장, 부총장, 대학원장까지 대물림하는 족벌 경영 행태는 사학비리로 귀결됐다. 2013년 부총장이던 차남 정모세 씨가 19억 원대의 교비 횡령, 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돼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의 유죄 선고를 받은 비리 사건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 씨의 재판기록과 판결문을 보면, 이들 설립자 일가의 범죄 기록이 자세히 나온다. 1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정 씨가 기획조정실장과 부총장을 거치는 동안 도합 19억 원 상당의 사기·업무상 횡령·배임 등을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경북외대의 폐교 배경을 설명하며 “정 씨와 정 씨의 모(母) 이영상 총장, 피고인의 형인 정은재 씨는 교직원들의 급여 평균이 170만 원 정도인데 월 500만 원에서 900만 원 상당의 급여를 지급받았다”, “정 씨를 비롯한 총장 일가의 생활용품 구입을 위해 법인카드로 2,200만 원 상당을 교비로 지급하는 등 방만한 운영을 계속해 오다 폐교됐다”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정 씨의 범죄를 두고 “그 피해가 등록금과 세금을 충실히 낸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귀착될 수밖에 없는 사학비리의 전형”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설립자 일가는 폐교의 책임을 지고 학교 운영에서 손을 뗐을까? 뉴스타파 취재결과,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연어가 회귀하듯 설립자 일가족은 다시 학교 경영 일선에 섰다. 더욱이 온갖 비리 등으로 문을 닫은 경북외대의 족벌경영 행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설립자인 정하상, 이영상 부부는 경북외대 설립 이전에 이미 대구 대원 고등학교(학교법인 무열교육재단·1980년 인가)와 경북과학대학교(전문대·학교법인 경북과학대학교·1993년 인가)를 잇따라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고, 경북외대는 폐교시켰지만 이 두 학교는 지금도 그대로 지배하고 있다. 특히 경북외국어대가 폐교된 이후, 이 학교 자산은 국가가 아닌 설립자 정 씨 일가가 운영하는 대원고등학교 법인으로 넘어갔다.
경북외대가 문을 닫고 1년 가량 지난 2014년 9월 1일, 부인 이영상 씨와 장남 정은재 씨는 경북과학대 이사가 됐다. 이후 이영상 씨는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2019년 5월에는 설립자 정 씨 부부의 첫째 며느리인 김현정 교수가 미래전략실장 및 부총장 등 요직을 거쳐 총장 자리에 올랐다. 학교 회계 횡령과 배임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차남 정 씨가 학교 운영에서 빠진 게 유일한 변화라면 변화였다.
2019년 6월 현재, 설립자의 배우자인 이영상 씨는 경북과학대의 이사장을, 첫째 며느리인 김현정 씨는 총장을, 정은재 씨는 학교법인의 상임 이사를 맡고 있다. 경북과학대 법인 업무를 총괄하는 사무국장 정 모 씨도 설립자 정하상 씨의 친인척이다. 이사장 이영상 씨는 정하상 씨가 설립한 또 다른 학교인 대구 대원고에서도 이사를 맡고 있다. 대원고 교사이기도 한 둘째 며느리인 정인영 씨도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대원고 법인 이사장을 지냈다. 정하상, 이영상 일가는 경북외대를 폐교시켰지만 설립자 일가는 학교자산을 그대로 넘겨받았고 또 다른 학교를 지배하며 족벌 운영체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큰 며느리인 김현정 부총장이 경북과학대 총장이 되는 과정을 보면 이사회는 마치 ‘가족 모임’, ‘가족 회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지난 4월 2일 대구의 한 한정식 집에서 경북과학대 이사회가 열렸다. 안건 중 총장 선임건도 포함돼 있었다.
이사장인 시어머니가 총장 선임 안건을 상정해 심의를 요청한다. 총장 후보자는 큰 며느리다. 곧이어 이사장의 장남이자 총장 후보의 남편인 정은재 상임이사 등이 동의를 한다. 그리고 거수 결정을 통해 며느리가 총장 자리에 앉게 된다.
이처럼 시어머니 이사장에 며느리 총장 등 족벌사학의 체제가 만들어 질 수 있는 배경은 뭘까? 비결은 현행 사립학교법 54조 3항에 숨겨져 있다. 해당 조항은 이렇다.
사립학교법 54의 3 ‘학교의 장에 관한 임명의 제한’ 규정은 학교법인 이사장의 배우자 혹은 직계존속·직계비속과 그 배우자는 “학교의 장에 임명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뒤 단서조항이 있다. “이사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관할청의 승인을 받은 자는 그렇지 않다”는 조항이다. 이 단서 조항을 통해 대학 설립자 일가 중 누구든 합법적으로 대학 총장이 될 수 있다. 이 단서조항이 족벌사학 체제를 열어주는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현정 부총장이 총장에 임명되자, 경북과학대 노조는 “어떻게 설립자의 며느리가 총장을 맡을 수가 있냐”며 교육부 등에 문제 제기를 했다. 하지만 결격 사유가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최순필 대학노조 대경지부 사무처장은 취재진과 만나 “시어머니가 이사장이고, 그 아들이 상임이사로 있고, 다 그들의 측근으로 만들어진 이사진인데 (총장 선임 안건에) 다 허락을 내려주지 않았겠냐”며 “법인 이사진과 학사 운영진이 친인척 관계면 비리가 일어날 확률이 높지 않냐. 이를 막고 싶었는데 그 단서조항 때문에 막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김현정 총장이 교육부의 허가가 나기도 전에 총장직에 오른 것도 문제가 됐다. 위의 사학법 54조 3항에 따르면, 김현정 씨의 경우 관할 정부부처인 교육부의 승인이 난 뒤에 총장으로 최종 임명돼야 한다. 김 총장에 대한 교육부의 승인이 난 것은 2019년 5월 10일이다. 하지만 경북과학대는 승인이 나기 9일 전인 5월 1일에 김 총장 취임식을 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교육부 승인이 나지 않았는데 김 부총장이 총장 취임식을 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학교 측에) 안내했다”면서, 하지만 경북과학대 측으로부터 “사람들을 다 모아놨다고 하는데 그걸 막을 수 있냐. 대신 학교에서 김 씨를 ‘총장 취임 예정자’라고 소개하겠다고 해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북과학대 학보는 이날 행사를 알리면서 ‘김현정 신임 총장 취임식’이라고 소개했다.
경북과학대의 재정 상태는 폐교된 경북외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북 칠곡에 있는 전문대인 경북과학대는 2005년부터 꾸준히 교육부 등 관할 감독 기관의 감사에서 여러 지적을 받아왔다. 이사장이 학교 기숙사 운영비 등의 집행 잔액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실험·실습 기자재를 구입한다는 명목으로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아 이를 사적으로 쓰고, 교육부의 인가를 받기 전에 수익사업체를 운영했다는 등 각종 비리가 적발되기도 했다.
학교 재정이 열악하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비리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북과학대 교수들이 가짜 신입생들을 무더기로 만들어낸 사실이 2011년 감사원 감사 결과 적발된 것이다. A 교수의 경우 당시 71살인 자신의 장인은 물론, 부인, 형, 동생, 조카를 모두 신입생으로 둔갑시킨 데 이어 본인까지 신입생으로 조작했다. 신입생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조직적으로 저지른 비리였다. A 교수는 최근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당시 공공연하게 공식 교수 회의 등에서 지시가 내려왔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경북과학대의 재정상태는 어떨까? 공개돼 있는 재정지표를 통해 확인한 결과, 곳곳에서 부실의 단초가 드러났다. 경북과학대의 경우 사립대학이 학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마련하고 있어야 할 재산인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은 최근 3년간 6~7%대에 그친다. 2017년 기준 전문사립대학 평균인 61.7%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최하위권이다.
지난 4월에는 학교법인이 임대보증금 9천만 원 중 4천만 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부 감사결과도 있었다. 교육부가 낸 사립대학 기본재산 관리 안내서를 보면, 고정부채인 임대보증금의 경우 임의 처분이 제한되고, 해당 금액을 반드시 금융기관에 예치하도록 명시돼 있다. 운영 자금 안정성을 위해서인데 이 안내 지침을 어긴 것이다. 또 법인이 학교 운영을 위해 내도록 한 건강보험, 산재, 연금, 고용보험 등 4대 보험료인 ‘법정부담 전입금’은 2008년 이후 누적 적자만 30억 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진은 사학을 족벌경영 방식으로 운영해도 괜찮은지 설립자 일가를 찾아 물었다. 설립자 정하상 씨는 더 이상 학교의 경영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학교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대학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 씨의 부인 이영상 씨는 취재진에게 자신의 학교 일은 “취재 가치가 없다”고 했다. 또 “우리보다 대학 경영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 넘겨 주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취재 대상도 안 되고 취재 가치도 없습니다.
(기자 : 선생님의 가족분들이 학교 경영을 하시는 게 적절한가요?)
우리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넘겨드릴게.
뉴스타파는 경북과학대 총장이자 설립자의 며느리인 김현정 총장도 만났다. 김 총장은 자신이 총장에 임명된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자신이 설립자의 며느리인 게 무슨 상관이냐”, “불쾌하기 짝이 없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거(가족관계) 하고 무슨 상관이죠? 법 좀 알아보고 오세요. 공부도 안 하시고 오시면 어떻게 해요? 할 수 없는 것을 교육부가 허가를 내줬을까요?
경북과학대 등 정 씨 일가가 운영하는 사학들은 대한민국 사학권력의 민낯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뿐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폐교된 대학은 모두 16개다. 뉴스타파가 이 폐교된 대학의 족벌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 서남대(폐교일자 2018.2)와 한중대(폐교일자 2018.2), 대구미래대(폐교일자 2018.2), 벽성대(폐교일자 2014.8), 성화대(폐교일자 2012.2), 명신대(폐교일자 2012.2)에서 족벌 세습의 실태가 확인됐다.
이들 학교에는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공적 자금이 들어갔지만 해산 법인의 청산 절차가 끝나지 않았거나 잔여 재산의 귀속자를 정해놨었다는 사유로 현재까지 국고로 귀속된 잔여 학교 재산은 하나도 없다. 족벌세습의 결과로 폐교에 이르렀지만 책임지는 설립자도 없다. 춘천교대 김정인 교수는 “이런 설립자들은 학교가 공공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학교를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으로, 재산 보존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데이터: 최윤원 임송이
회계분석: 조연우
자료조사: 최유리 민영빈
웹디자인: 이도현
촬영: 정형민 최형석 신영철
편집: 박서영 김은
취재: 박중석 최윤원 김새봄 홍우람 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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