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전재국씨가 과연 어떤 목적으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뉴스타파가 추적한 결과 전재국씨는 그 페이퍼컴퍼니 계좌의 명의까지 한 외국은행에 만들어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에 있는 아랍은행이었습니다.

박종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박종석 기자>
서울에서 비행기로 7시간 거리에 있는 싱가포르. 이곳 법률회사를 통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 블루아도니스를 만든 전재국씨. 그는 이 회사를 통해 뭘 하려 했을까. 먼저 전씨는 페이퍼컴퍼니 이름으로 은행 계좌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유령회사 설립 한 달 뒤인 2004년 8월 말. 전재국씨는 싱가포르 현직 변호사를 통해 회사설립 대행사인 PTN 버진아일랜드 지사에 블루아도니스 공증서류를 발급받게 합니다. 서류는 법인설립 인가증, 이사 인증서 등 다섯 건. 모두 페이퍼컴퍼니 명의의 은행계좌를 만드는데 필요한 서류입니다.

당시 전씨의 싱가포르 변호사가 PTN에 보낸 이메일을 보면 3주 안에 관련서류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서류를 은행에 제출해야만 페이퍼컴퍼니 명의의 계좌를 개설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씨가 비밀계좌를 개설하려 한 은행은 어디였을까. 뉴스타파는 PTN 내부 자료를 정밀 검사해 중요한 단서를 포착했습니다.

전재국씨가 세운 페이퍼컴퍼니 블루아도니스의 2004년 8월 13일자 이사회 의결서입니다. 이 날 전씨는 단독 등기이사로 등재됐고 자필서명까지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 의결서를 자세히 보면 페이퍼컴퍼니의 계좌정보. 자금 거래내역, 회의록 등을 앞으로 한 은행에 보관하기로 결정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은행은 특이하게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이었습니다. 어떤 법인이 계좌정보 등의 기록을 특정은행에 보관하기로 했다는 것은 그 은행의 법인명의의 은행에 개설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아랍은행 측도 이 점을 인정했습니다.

[정OO 아랍은행 직원]
((페이퍼컴퍼니 관련 서류를 은행에) 보관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그러면 본인은 은행에 예금할 때 아이디 카드(신분증) 안 보여줘요? 은행에 갈 때 아이디 카드 가져가죠? 실명거래 하기위해서... 본인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페이퍼컴퍼니의 계좌가 그 은행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네요? 그 계좌가.)
“그렇죠.”

전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해 준 PTN 직원들과 싱가포르 현지 변호사 등이 주고 받은 이메일에서도 전씨의 해외계좌 단서가 나옵니다. 이메일을 분석한 결과 당초 전씨는 2004년 9월 22일,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페이퍼컴퍼니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좌개설에 필요한 공증서류가 버진아일랜드에서 싱가포르로 배송되는 과정에 분실됩니다. 이 때문에 전씨의 법인계좌 설립은 차질을 빚게 됩니다.

그 당시 PTN 싱가포르 본사와 버진아일랜드 지사 사이에 긴박하게 오간 이메일입니다. 다급해진 전재국씨의 담당 변호사가 하루에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왔다. 서둘러 법인 계좌를 만들어야 하니 필요한 서류의 복사본이라도 급히 보내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페이퍼컴퍼니 이름의 계좌를 만들지 못한 탓에 고객인 전재국씨의 은행계좌에 들어 있는 돈이 모두 잠겨있다. 이 때문에 전씨가 몹시 화가나 있다, 라는 언급도 나옵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전씨의 아랍은행 계좌가 개설된 것입니다.

이 같은 이메일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당시 전씨는 어떤 계자에 예치해 놓은 돈을 버진 아일랜드에 세운 유령회사 명의의 아랍은행 계좌로 급하게 이체하려했다는 추정이 가능해집니다.

싱가포르에 있는 대표적인 금융지역입니다. 전재국씨는 이곳 빌딩 32층에 있는 아랍은행을 통해 자신이 만든 페이퍼컴퍼니의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어 놓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렇다면 전씨는 여기에 어느 정도의 돈을 예치해 놓은 것일까. 취재팀은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을 찾았습니다. 현지 은행 직원은 자신들을 리테일뱅킹, 즉 일반인 대상의 소매 금융은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랍은행 담당자]
“우리는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소매금융을 하지 않고 주로 법인을 상대합니다.”

취재진은 놀랍게도 이 은행에 한국인 직원 두 명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한국인 큰손 고객이 적지 않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실제 이들은 뉴스타파의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2차 명단 공개 때 포함됐던 SK임원 출신 조민호씨의 비밀계좌도 관리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취재팀은 이들을 만나 전재국씨의 법인계좌정보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은행 측은 한국인 고객이 없다며 만남을 거부했습니다.

[아랍은행 담당자]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이 싱가포르 정부 방침대로 우리는 고객에 관해서 어떠한 얘기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취재팀은 한참을 기다린 끝에 은행 앞에서 한국인 직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관련 계좌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OO 아랍은행 직원]
“저는 은행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은행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저는 해줄 수가 없어요.”

그러면서 일부 법인계좌일 경우 수천 만 달러를 예치해 놓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OO 아랍은행 직원]
(근데 보통 여기는 얼마 정도 합니까?)
“뭐가요?”
(예금이요. 계좌요.)
“계좌요? 뭐.. 수천 만불 도 있죠.”
(수천 만불..)

하지만 구체적인 계좌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며 정보를 원한다면 해킹을 해서 가져가라고 말했습니다.

[정OO 아랍은행 직원]
“결국엔 은행도 해킹을 해서 (계좌 정보를) 가져가는 수밖에 없어요.”

취재팀은 또 다른 한국인 직원과 통화를 했지만 그 역시 모른다고만 답했습니다.

[김OO 아랍은행 직원]
(2004년에 그 계좌를 만든 이유가 뭔지 여쭤보고 싶어서 그래요.)
“잘 모르겠습니다.”
(계좌를 만들어준 사람이 누군지..)
“본인(전재국)이 만들었겠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마지막으로 뉴스타파 취재팀은 전재국씨가 대표로 있는 시공사를 찾았습니다. 전씨를 직접 만나 조세피난처의 블루아도니스라는 유령회사를 만든 목적과 머나 먼 싱가포르 아랍은행에 법인계좌를 개설한 이유를 묻기 위해서입니다. 또 해외계좌에 얼마를 예치했는지, 그 돈은 전씨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혹시 아버지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자산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정OO 시공사 이사]
“지금 아마 지방에 계신 것 같습니다. 월요일 정도에 제가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려 보고요.”

이렇게 취재팀은 사흘 연속 시공사를 찾았지만 전씨는 계속 만남을 회피했습니다.

[시공사 직원]
(혹시 전재국 사장님 계세요?)
“네. 3층에 계시는데”
(3층에요?)
“지금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뉴스타파는 전재국씨가 지난 2004년 동생 재용씨에 대한 검찰의 조세포탈 수사로 전두환 비자금 은닉 문제가 다시 불거진 시기에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 전씨가 최소한 6년 이상 이 회사를 보유했고. 이와 연결된 해외은행 계좌로 자금을 움직였다는 정황도 찾아냈습니다. 이제 관건은 이 계좌를 통해 어떤 자금이 얼마나 운용됐고 이 돈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입니다. 검찰과 국세청 등 사법권을 가진 정부당국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뉴스타파 박중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