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토론이 끝난 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주요 검색어로 두 단어가 올라왔습니다. 다카키 마사오와 6억 원. 다카키 마사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창씨개명한 이름입니다. 6억 원은 박근혜 후보가 지난 79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받았다는 돈의 액수입니다. 온라인 상에서는 큰 화제였지만 두 단어 모두 공중파 방송이나 거대 우익신문에선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다카키 마사오와 6억 원에 얽힌 사실들을 뉴스타파가 간추렸습니다.

@ 12월 4일

[이정희] “충성 현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아실겁니다.”

지난 4일 대선후보 첫 TV 토론이 끝난 직후 다카키 마사오가 한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다카키 마사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한자어로 읽으면 고목정웅인 다카키 마사오. 고목은 고령 박 씨의 높을 고와 박자의 나무목 변을 따왔고, 정웅은 본명 정희의 앞자와 일본식 남자 이름에 갖다 붙이는 웅을 이어 붙여 만들었습니다.

다카키 마사오는 혈서로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 한 황군 최후의 장교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에 게제 됐습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혈서로써 (일본군) 장교를 지원했다, 조선의 젊은 교사로부터 혈서가 왔다. (편지의) 핵심은 뭐냐, ‘본인은 나이가 초과가 되어서 (일본군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아주 비참한 마음이다,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모쪼록 저를 다시 한 번 잘 봐주실 수 없겠느냐, 한 명의 일본인으로서 만주국 군인으로서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견마(犬馬), 개와 말처럼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일본판 위키피디아는 대한민국 제 5대에서 9대 대통령을 지냈던 박 전 대통령이 혈서를 쓰고 만주국군에 복무했다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뒤에도 보여준 친일 행적도 꼼꼼히 다뤘습니다. 일제 식민지배가 나쁘지 않았다고 두둔했고, 술을 먹으면 일본 노래를 즐겨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아예 박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꼽고 있습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박정희란 사람은 대일본제국이 사범학교를 통해서 만든 이상적인 교사, 천황폐하를 위한 전도사로서의 교사 역할, 두 번째는 군인이 돼서 대일본제국이 요구했던 황군 장교이죠 천황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교, 이 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대로 자기 내면속에 남아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있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주 공관학교 학교장이었던 나구모 씨에게 큰절을 하고 술잔을 올렸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 다큐 ‘백년전쟁’ (2012년)

“박정희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선생께서 저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박근혜 후보는 1989년 일본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과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수상의 친분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 <박근혜 인터뷰집> 육영재단, 1990년 출판

“만일 공자가 일본에 해를 가할 때는 공자하고도 싸우겠다는 일본의 태도는 훌륭한 태도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일본의 정치가 후쿠다 전 수상, 문학과 후쿠다 스네아리와 씨와도 친분이 있으셨습니다.” - 산케이 신문 인터뷰 중

박 전 대통령과 친했다는 후쿠다 전 수상은 재임시절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망언의 당사자입니다.

[김점구 독도수호대 대표] (후쿠다 前 총리가) 일본의 영해를 12해리로 설정할 때,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전제 하에서 설치하겠다 그런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재임 중에 일본 외상은 각료 회의의 정식 의제로 (독도 문제를) 제기하는 등 여러 가지 독도 관련 정책을 펼쳤습니다.“

@ 12월 4일

[이정희] “전두환 정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쓰던 돈이라면서 박근혜 후보에게 6억 원 줬다고 스스로 받았다고 하셨잖아요? 당시 은마 아파트 30채 살 수 있는 돈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이 돈 어디서 나왔습니까, 박정희 유신정권이 재벌한테서 받은 돈 그거 아닙니까?”

[김봉옥 시민] 저는 (6억 원에 대해) 금시초문, 처음 들어봐서 부자이신 분이 6억 원을 받아서 어떻게 쓰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거에 대해서는 뭐 조금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받은 6억 원은 청와대 비밀금고에서 보관했던 이른바 통치자금입니다. 10.26 사건 직후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 본부장은 청와대 비서실을 압수수색 해 두 개의 금고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집무실 금고에 있던 9억 6천만 원 가운데 6억 천만원을 박근혜 후보에게 전달했습니다.“

“6억입니다.” (전 장군님..) “이젠 OO께서 가장이십니다. 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받아 두십시오. 국민들도 이 정도 성의는 이해할 겁니다.”

이 같은 사실은 1996년 군사반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판 과정에서 처음 밝혀졌습니다. 당시 서울 강남의 은마 아파트 분양 광고를 보면 평당 68만원, 31평형 아파트 29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경황없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아버지도 그렇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동생들과 그 살 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이런 거 아무 걱정이 문제가 없으니까 좀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해주겠다 할 때 뭐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또 그거는 받았습니다..”

어린 동생과 살 길이 막막히 생활비조로 받았다는 6억 원. 박 후보가 그 검은 돈을 받아야 할 만큼 생계가 어려웠을까.. 당시 박 후보는 27살, 근령 씨는 25살, 막내 지만 씨는 21살로 육군 사관학교에 재학중이었습니다. 게다가 박 후보는 새마음 봉사단 총재,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등 굵직굵직한 재단과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신고 한 재산 21억 원의 대부분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삼성동 집입니다. 대지 484제곱미터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입니다. 삼성동 집은 1982년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에게서 무상으로 받은 성북동 집을 팔아 마련한 것입니다. 도대체 6억 원은 어디로 간 것일까.

@ 2007년 7월 19일

[강훈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 공동대표] &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공급으로 조성된 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안 되었던 것 아니냐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자세하게 제가 그 내용은 모르지만 이것은 (아버지가) 쓰다 남은 것이고, 유자녀가 생계비로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받으라고 해서..)

그 동안 6억에 대해 어물쩍 넘어간 박 후보는 이번 TV 토론에서 처음으로 환원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박근혜] “저는 자식도 없고 또 아무 그런 그 어떤 가족도 없는 상황에서 나중에 그것은 다 사회에 환원을 할 것입니다.”

@ CBS 김현정의 뉴스쇼 12월 6일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 (어제 박근혜 후보가 전두환 정군으로부터 받았다는 6억 원을 환원하겠다 이런 말씀을 직접 하셨는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사회 환원을 하실 건가..) “당연히 사회 환원 하실 거고요, 그리고 또 그 분이 정말 아버지 어머니를 비명에 잃으시고 동생들을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은 거예요. 그때 그 소년소녀 가장이었습니다. 사실 그걸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남에게 돌을 던질 만큼 깨끗하냐 저는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