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검찰이 중국 허룽시 공안국으로부터 팩스로 받았다고 주장한 유유성 씨의 출입경기록 사실확인서가 결국 중국 당국이 아닌 국정원 현지 정보원을 통해 확보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실확인서는 지난해 11월 지역번호가 없는 8자리 번호(9680-2000)를 통해 중국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관으로 보내졌다. 이 번호는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고, 이전에 중국 내 사기 전화 범죄 등에 사용됐던 것으로 드러나 국정원의 공작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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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국정원은 대국민 사과문에서 이 문서를 포함해 “3건 모두 중국 내 정보원에게 확보했다”고 시인했다. 그동안 국정원은 물론 법무부와 외교부까지 한 목소리로 공식 외교 경로를 통해 확보했다고 수차례 강조했던 문서마저 국정원의 조작으로 드러나면서 중국 당국이 통보한 대로 3건의 문서 모두 사실상 위조로 판명난 것이다.

▲ 허룽시 공안국 팩스를 받았다고 주장했던 국정원 소속 이인철 영사
▲ 허룽시 공안국 팩스를 받았다고 주장했던 국정원 소속 이인철 영사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당시 선양영사관에서 문제의 팩스 문건을 받아 검찰에 전달한 국정원 대공수사국 소속 이인철 영사를 최근 불러 국정원 정보원을 통해 이 문서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실제 이 번호의 수발신 내역과 가입자 정보 등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사법공조를 요청하고 위조 문건을 보낸 국정원 정보원의 신원 확인에 나섰다.

중국 공문서 위조뿐만 아니라 증인까지 조작된 정황도 새롭게 드러났다.

▲ 검찰 측 증인인 임 모 씨의 중국어 자술서.

검찰이 유우성 씨 사건 항소심 공판의 핵심 증인이라고 강조했던 전직 중국 공무원 임 모 씨의 자술서와 증인 요청 과정에도 국정원의 공작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임 씨는 중국 소학교 시절 스승이었던 국정원 정보원 61살 김 모 씨가 검찰 직원 행세를 한 다른 3명과 함께 찾아왔으며, 미리 작성한 한글 자술서를 가져와 중국어로 옮겨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주장했다.

임 씨는 이들이 작성해 온 문서에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왜곡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 검찰 측 증인 임 모 씨는 자술서 핵심 내용이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김 씨와 함께 임 씨를 찾아간 이들이 국정원 직원은 맞지만 진술서 조작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증인 채택과 자술서 확보 과정에서 검찰은 임 씨를 단 한번도 접촉하거나 통화한 적 없이 국정원에만 의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항소심 공판에서 임 씨와 연락이 닿지 않아 증인으로 출석시키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임 씨와 검찰을 사칭한 국정원 직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이미 드러난 국정원 대공수사국 소속 이인철 영사 등 전,현직 영사 출신 국정원 직원들 외에도 국정원 본부 차원에서 증거 조작을 주도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이 영사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검찰 측 출입경기록에 대한 가짜 영사확인서를 쓸 때 “본부의 독촉이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을 시도한 61살 김 모 씨 역시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국정원 대공수사팀 지시로 움직였고, 활동비와 사례금도 국정원에서 받았다고 진술했다.

▲ 지난 11일 새벽까지 진행된 국정원 압수수색.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이같은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국정원이 전달한 문서 3건 모두 위조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본격 수사로 전환한 지 사흘 만인 지난 10일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대선 개입 사건에 이어 남재준 국정원장 취임 이후에만 두 번째다.

특별수사팀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관련 국정원 직원들을 소환조사하고, 사법 처리 대상을 특정할 예정이다.

국정원에 대한 수사가 일단락되면 간첩 조작 사건 담당 검사들에 대한 소환 조사도 이어질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달 16일 검찰의 긴급 기자회견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날 수 있다”고 말해 유 씨 사건에 대한 공소 유지가 더 이상 쉽지 않음을 시사했다.

오늘로(3월 11일) 취임 100일을 맞은 김진태 검찰총장이 지난해 전임 총장이 못다 한 국정원 수사를 어떻게 끌고 갈지 주목된다.

▲ 굳은 표정으로 답변 거부하는 김진태 검찰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