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100% 공장의 꼼수
2017년 07월 10일 09시 34분
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한국GM의 한 하청업체 간부들이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자극해 충돌을 유발하고, 이를 빌미로 노조원들을 탄압하는 시나리오를 짠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확인됐다.
지난 5일 한국GM 창원공장 신규 하청업체 S사 관리직들이 비정규직 노조원들과 공장 안에서 충돌했다. 노조원들은 1월 31일 폐업한 하청업체 C사 소속이었으나 신규 업체가 고용승계를 하지 않아 일자리를 잃었다. 새 업체 사무직들은 이날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자극하며 충돌을 유발했다.
이날 충돌 때 비정규직노조가 입수한 몰래카메라엔 지난 3일 S사 대표와 부장, 과장 등 3명의 대책회의 대화내용이 녹음돼 있었다. S사 대표 등은 사무직 4명을 새로 뽑아 비정규직 노조원을 자극한 뒤 그들이 살짝만 밀쳐도 크게 넘어져 다친 것처럼 하자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주고 받았다. 이들은 넘어진 뒤 상해죄로 노조원을 형사고소하고 한국GM이 그들에게 공장 출입금지가처분 신청을 해 창원공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자는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2월 3일 S사 대표와 부장, 과장의 대화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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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S사 대표가 직접 점퍼 속에 몰카를 넣어 노사 충돌현장에 나타났다. 금속노조는 지난 12일 창원지검에 S사 대표와 부장, 과장, 신규채용된 4명의 사무직 등 7명을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와 경비업법상 무허가 경비업으로 고소했다. 금속노조는 고소장에서 “S사가 사실상 경비업무를 목적으로 사무보조직원을 위장취업시켜 경비업법을 위반했다”고 했다.
한국GM 창원비정규직노조 진환 사무국장은 “한국GM이 비정규직노조의 정당한 쟁의행위에 업체 폐업을 유도해 노조를 파괴하려 했다”며 “원청 한국GM 대표이사도 고소했다”고 밝혔다.
한국GM 창원공장은 지난달 말 하청업체 C사 대신 S사와 새로 계약했다. 13년 전 한국GM에서 처음 비정규직노조가 들어선 창원공장엔 업체가 바뀌어도 장기직 하청노동자는 고용이 승계됐다. 그런데 이번엔 모두 해고하고 3개월 단기직으로 채용했다. 공교롭게도 폐업한 업체엔 노조원이 많아 비정규직노조는 “노조 파괴를 위해 업체를 바꾼 것”이라고 주장한다. 잘린 하청노동자들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중이고, 한국GM은 법원에 비정규직노조 간부와 노조원의 출입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대화녹음에 등장하는 S사 조모 부장은 “4명을 신규채용해 노무관리를 시켰지만 노조를 파괴할 의도는 아니었고, 회의 때 언급한 원청에 보고한 것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조 부장은 “4명 중 1명은 당일 퇴사했고, 녹취록에 나오는 L사 출신은 급여 등이 안 맞아 입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GM은 2009년 94만대를 생산해 당시 부도위기에 처한 GM 본사를 구했다. 특히 군산공장은 100% 가동률에 육박했다. 군산공장은 주야, 주말없이 주력차 ‘크루즈’를 생산해 유럽과 북미, 남미에 수출했다.
그러나 GM은 2013년 신형 크루즈 생산에서 군산공장을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한국GM의 위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최대 연간 생산량이 26만대인 군산공장은 2013년 14만대로 줄어 가동률이 60% 아래로 떨어졌다. 군산공장 생산량은 2014년 8만대, 2015년 7만대, 2016년과 지난해 3만대로 추락했다.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비정규직 계약해지가 속출했다. 2012년 군산공장엔 1~3차 하청노동자 1천여 명이 일했는데 지금은 100여 명만 남았다.
2014년에도 물량감소로 인한 업체 폐업으로 비정규직 360여 명이 잘렸고, 2015년 1월과 7월에도 군산공장에서만 비정규직 천 명이 잘렸다. 10개였던 군산공장 하청업체는 2개로 줄었다.
한국GM은 2016년에도 하청노동자 369명의 일자리를 줄이려고 했다. 지난해 연말엔 부평과 창원공장에서 사내하청업체가 담당하던 차제 인스톨과 엔진조립(T3,T4)을 인소싱하면서 하청노동자 13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한국GM에선 2014년부터 지금까지 2천여 명 이상의 하청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정부와 2대 주주인 산업은행, 정치권은 이미 4년 전부터 시작된 비정규직 해고에 침묵하다가 한국GM 경영위기에 개입할 시기를 놓쳤다. 전북도와 군산시 등 지자체도 2013년 군산공장 신차 보류 소식에 ‘차 팔아주기’ 이벤트 행사를 벌였을 뿐 해고된 비정규직 문제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GM은 2002년 4월 대우차를 인수했다. 불과 3년 전 5조원이던 회사를 4300억 원에 사들였다. 한국GM은 2005년 3년만에 흑자로 바뀌었고, 2006년 5월 정규직 정리해고자 1725명이 모두 복직했다. 그러나 정규직보다 앞서 잘린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자리는 없었다.
하청노동자들은 2005년 4월 한국GM 창원공장에서 노조를 만들고 불법파견 집단진정부터 넣었다. 자신들을 정규직 고용유지를 위한 방패막이로 사용해온 한국GM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였다. 2007년 초 한국GM이 부평공장 하청업체를 외주화하려 하자 비정규직들이 파업에 들어가 라인이 중단됐다. 회사는 무더기 계약해지로 나왔고 이때 쫓겨난 비정규직은 1천일 넘게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했다.
창원지법이 2010년 한국GM 대표이사와 하청업체 사장들에게 파견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하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판결했다. 그러나 한국GM은 법원 판결을 무시했다. 할 수 없이 비정규직노조는 2015년 2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들어갔다. 이때 쫓겨난 비정규직도 최근까지 1천 일 가까이 농성 중이다.
2016년 14조 원의 이익을 올린 GM은 여전히 한국GM 물량을 줄여갔다. 본사의 물량 축소로 한국GM은 2조 원 적자공장이 됐다. 그 사이 3조 5천억 원이 본사로 흘러갔다.
이 와중에 한국GM은 지난 13일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인천지법이 만 3년만에 한국GM 하청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확인소송 판결을 내린 날이다.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조원은 3년만에 법원에서 이겼지만 돌아갈 공장이 사라졌다. 공장 폐쇄발표 다음날 정규직노조는 군산공장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지만, 비정규직노조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한국GM은 “판결은 2005년까지 상황에 대한 것이고, 이후엔 도급절차를 시정해 현재 사내하청 근로자들에겐 위 판결이 원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05년엔 불법파견이었지만 지금은 합법도급이란 뜻이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법원이 불법파견의 핵심근거로 삼은 작업내용이 바뀐 건 없고, 기껏해야 한 생산라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 작업하던 걸 왼쪽라인은 정규직, 오른쪽 라인은 비정규직이 작업하는 식으로 바꿨을 뿐”이라고 했다.
한국GM 창원비정규직노조 진환 사무국장은 “군산공장 정규직들은 벌써부터 부평과 창원으로 상당수가 전환배치 신청을 했는데 정규직 노사가 전환배치에 합의하면 그 자리에서 일하던 비정규직은 또다시 대량해고될 수밖에 없다”며 “원청에 총고용보장을 요구하는 원하청노조의 공동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오민규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은 “비정규직 잘릴 때 정부와 정치권이 한국GM에 개입했더라면 오늘처럼 공장폐쇄라는 극단적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자본잠식 상태인 한국GM은 지난달에도 빚을 갚는다며 4천억 원을 본사에 송금했다. 한국GM은 2월말까지 6200억 원을 갚아야 하고, 4월엔 다시 1조 원을 갚아야 한다. 본사도 높은 이자로 빌려준 3조 원의 회수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은 GM이 한국공장을 망치는 걸 방조했다. 산업은행은 한국GM의 2대 주주였지만 불투명 경영을 방치했다. 이명박 정부는 2012년 산업은행의 상업은행 전환을 추진하면서 매각 대상기업 감시를 후순위로 미뤄서다. GM이 한국GM에 부품과 기술제공 가격을 높게 불러 이익을 챙기면서도 한국GM이 만든 차 값을 싸게 책정해 한국GM의 경영난을 가중시켰지만 정부는 방관했다.
GM은 한국GM 인수 15년 동안 9200억 원을 투자하고, 3조 5천억원을 가져갔다. GM은 대우차 인수에 4300억 원, 2009년 유동성 위기 때 4900억 원을 투입한 게 전부다. 반면 최근 5년 동안 해마다 7000억 원이 넘는 돈을 본사로 가져갔다. 적어도 3조 5000억 원 넘게 이득을 챙겼다. 대출 이자와 연구개발비 등 명목도 다양했다.
그러나 GM은 중국 상하이를 아시아 생산기지로 삼고, 한국은 반제품 조립 공장으로 운영했다. 99년 자산가치 5조 원이 넘던 회사를 단돈 4300억 원에 사서 현금 창고처럼 이용하다가 버리려 하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한국GM이 미국 본사에 낸 연구개발비를 집중 조사하고, 산업은행은 한국GM의 재무실사를 예고했지만 GM 본사의 재무 기록을 보지 않는 한 한계가 명확하다.
GM과 대우그룹 창업자 월리엄 듀런트와 김우중 회장은 닮았다. 듀런트와 김 회장은 문어발 확장만 꾀하다가 불황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파산했다.
김 회장은 1970년 3월 미국 정부가 한국에 섬유수입쿼터제(수입량 할당제)를 추진한다는 정보를 듣고 즉각 무더기 외상수출로 한국에 배정된 쿼터의 30%를 장악하면서 대우그룹을 일으켰다. 90년대 대우자동차의 동유럽 과잉투자도 이 경험의 연장선이다. 한국전쟁 때 대구 서문시장 신문팔이 소년 김우중은 경쟁자가 걸을 때 뛰어가서 신문을 팔았다. 다음엔 빨리 팔려고 잔돈을 준비했다. 그 다음엔 뛰어가 신문을 나눠주고 천천히 걸어오면서 수금했다.
기술력 취약한 대우차는 결국 출혈판매만 믿다가 비운을 맞았다. 김 회장은 서문시장에서 배운 빠른 전개만이 살 길이라고 믿었다. 김 회장이 구사한 편법과 변칙은 그가 자라온 경영환경, 제대로 된 감독자 없는 난장판에서 자연스레 몸에 뱄다.
GM 창립자 월리엄 듀런트는 1900년에 자기 공장 하나없이 브랜드와 판매망만 가진 마차제조업으로 미국을 석권한 뒤 1904년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어 40여개 회사를 인수하는 문어발 확장을 즐겼다. 듀런트는 1920년 공항이 겹치자 모든 걸 잃었다. 듀런트는 말년에 뉴욕에서 볼링장을 운영하다 생을 마감했다.
오늘날 GM도 마찬가지다. GM은 2013년 유럽시장 쉐보레 철수를 시작으로, 호주, 태국 인도네시아 등 주요 신흥시장에서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도 유럽에서 오펠을 매각하고, 인도 철수를 결정했다. GM은 기름 넣는 차를 주로 생산하면서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개발 경쟁에선 뒤쳐졌다. GM은 이제 확장 전략 대신 사업을 재편해 비용을 줄이고 미래 먹거리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2000년대초 대우차도 확장일로의 방만경영이 문제가 돼 해외매각 수순을 밟았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전세계 5~6개 완성차만 살아남는다는 ‘세계시장 과점론’에 입각해 해외매각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도와 중국, 브라질, 말레이시아까지 자동차 제조에 뛰어들어 완성차 생산국가만 15개 국에 달한다. 과점 속에서도 틈새시장이 확보된 셈이다.
자동차산업을 전공한 정승일 박사는 GM본사가 한국GM을 포기할 경우 산업은행과 지방정부, 노동자가 공동소유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지금 한국을 자동차 강국으로 키운 노련한 경영자와 엔지니어들이 수천 명이나 있어 정치권, 시민사회, 노동계의 집합적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제안했다.
포니 개발에 참여했던 자동차컨설턴트 강명환 씨는 ‘포니를 만든 별난 한국인들’(1986)에서 “미국 완성차는 체구가 큰 흑인 작업자가 많아 소형차 생산작업을 아시아인만큼 능률적으로 하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 한국의 1인당 완성차 생산대수나 완성차 조립시간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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