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국민 상대 ‘심리전’에 이어 ‘소송전’

2013년 11월 12일 08시 41분

간첩조작 의혹사건 변호인단과 뉴스타파 상대 무차별 소송

국정원이 국정원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인과 야당 의원 등을 상대로 무차별 소송을 제기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잠재우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지난 5월 국정원 수사관 3명은 이른바 ‘화교간첩사건’으로 불리는 간첩 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피고인 유 모씨의 변호인단을 형사고소하는 한편 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까지 냈다. 유씨의 변호인단이 유씨의 여동생 유가려씨와 개최한 기자회견 내용이 국정원과 국정원 수사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변호인단을 상대로 한 소송에 이어 또 다른 국정원 수사관 3명은 이 사건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송한 뉴스타파 제작진을 형사고소하고 모두 1억 5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이처럼 국정원 직원들이 개인 명의로 소송을 남발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지난 2009년 국정원이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직접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가 패하자 소송 주체를 국정원 기관 대신 직원 개인 명의로 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유우성씨 변호인단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한 국정원 수사관은 자신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한 달 넘게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정황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 개인 이름으로 소송을 내고 있지만 실제 그 배후에는 국정원 조직이 있다는 의구심을 낳게 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소송 비용은 국정원 직원들이 내는 것인지 아니면 국정원이 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이 대선 개입과 부적절한 수사 관행을 지적하는 국민을 상대로, 그것도 국민의 세금을 써가며 소송을 남발했다면, 이것이야말로 국정원 스스로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앵커 멘트>

국정원이 국정원 관련 의혹을 제기한 언론과 야당 인사 등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비판적 목소리를 억누르기 위한 시도라는 지적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국정원 직원 명의의 소송이 잇따르고 있는데 어떤 직원은 자신이 소를 제기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현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조현미 기자>
[유가려 / 유우성씨 동생]
“이제까지 진술한 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고 다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고…”

지난 4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 이른바 ‘화교남매 간첩 사건’으로 구속된 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오빠의 변호인들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섰습니다. 유씨는 국정원 직원들의 구타와 회유때문에 자신과 오빠가 간첩이었다는 허위자백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국정원 수사관 3명은 기자회견을 주선한 변호인단을 형사고소하는 한편 1인당 2억원씩, 총 6억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허위사실로 국정원과 수사관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였습니다.

[김용민 변호사 / 유우성씨 변호인]
“지금처럼 변론을 하는 도중에 기소되거나 고소되거나 손해배상 청구된 적은 처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국기기관에서 과연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가 국민으로서 자괴감도 좀 들었다.”

그런데 유씨 사건 재판 과정에서 민사소송을 낸 국정원 수사관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이 소를 제기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민사소송이 제기된 날은 지난 5월 10일. 하지만 이 수사관은 한 달쯤 뒤인 지난 6월 5일 공판 증인으로 나와 형사 고소 사실은 알고 있지만 민사소송 여부는 잘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박진석 변호사 / 유우성씨 변호인단 변호인]
“증인 심문 중에 변호인들이 국정원 수사관에게 변호인들을 상대로 형사고소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있냐고 묻자 이에 대해 국정원 수사관이 형사고소는 서울중앙지검에 한 것으로 알고 있고 민사소송은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이것은 증인 심문 조서에 그대로 적혀 있는 것이다.”

본인도 모르게 민사소송이 제기됐다면 이 소송은 국정원 직원 개인이 냈다기보다는 국정원 조직 차원에서 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국정원 대변인은 당시 법정에서 수사관의 답변은 “민사소송 부분은 소송 대리인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습니다.

국정원 수사관들은 유씨 사건 변호인단에 이어 최근 뉴스타파 최승호 앵커 등을 상대로도 형사고소와 함께 모두 1억 5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유씨 사건을 다룬 뉴스타파의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자백이야기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는 성명을 통해 “언론인들을 위축시키려는 속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윤지영 변호사]
“언론인 입장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가지고 정부의 잘못된 것을 파헤치고 비판하는 권리를 갖는 것인데 정부에서 언론인 상대로 언론의 자유 압박하며 소송 제기하는 것 자체가 자기검열하게 되는 절차가 되는 것이다.”

국정원 수사관들이 개인 명의로 소송을 남발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입니다. 국정원은 지난 2009년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당시 소송의 주체는 국정원이었지만 소장엔 원고를 대한민국으로 기재했습니다. 국정원은 대법원까지 갔으나 모두 패소했습니다.

[윤지영 변호사 / 박원순 서울 시장 사건 변호인]
“국가가 누릴 수 있는 명예의 범위는 적다. 왜냐면 국가는 국민이 구성한 공동체이고, 공동체 구성원이 공동체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인정되는 권리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의 명예를 엄격하게 판단한 것인데....”

이 소송 이후 국정원은 직접 소송 주체로 나서는 것을 꺼렸다는 분석입니다.

[박진석 변호사 / 유우성씨 변호인단 변호인]
“국정원 이름으로 다시 소송을 제기하면 패소할 가능성이 높고 부담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수사관 이름으로 한 것 같다.”

뉴스타파 집계 결과 2009년 박원순 사건 이후 국정원측이 언론인과 야당 인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민형사 사건은 모두 13건입니다.

이 가운데 현재 4건이 결론 났는데 검찰의 불기소 처분 3건, 국정원 패소 1건 등입니다. 4건 모두 무리한 소송이었음이 입증된 것입니다.

이처럼 국정원 직원 개인 자격의 소송이 잇따르면서 소송 비용의 출처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근 JTBC는 대선 여론 개입 혐의를 받았던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변호사 비용 3,300만원을 국정원이 지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연루돼 있는 다른 사건에서도 국정원이 소송 비용을 지원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국정원측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은 확인을 거부했습니다.

[국정원측 소송대리 법무법인]
“변호사님 전혀 답변 안 하세요. 소송 사건에 대해서는 의뢰인 외에는 다른 분들하고 전화 통화를 안 하세요.”

이에 대해 국정원 대변인도 “확인을 해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
“국가기관이 본인이 한 행위에 대해 감추려고 하고 우리는 밝혀내려고 하는데 밝히는 과정에서 꼬투리만 생기면 법적 대응 불사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한 것이죠….쇼크는 변호사 비용까지 국정원에서 대줘서 빠르게 대처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저의 입을 막으려고 한 것이죠. ”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부적절한 수사 관행을 지적하는 국민을 상대로 무차별 소송을 제기하는 것. 국정원 직원들이 낸 소송 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대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가 아닌지 뒤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뉴스타파 조현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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