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슬리 관계자 "더블루케이는 한국 정부에서 만든 회사라고 들어"

2017년 01월 18일 10시 37분

스위스 건설업체 누슬리(Nussli)가 최순실 씨의 차명 회사를 '한국 정부의 회사'로 알고 업무협약(MOU)을 맺었다는 누슬리 내부 관계자의 증언이 나왔다. 뉴스타파는 이 업무 협약 전후 사정을 아는 누슬리 내부 임원급 관계자 A씨를 단독 인터뷰했다.

누슬리는 지난해 3월 8일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최 씨의 차명회사 '더블루케이'와 업무 협약을 맺었다. 비공개 회의(closed meeting)로 진행된 당시 자리에는 누슬리 측 임원 3명, 더블루케이측 관계자 2명(조성민 대표, 최철 변호사), 그리고 K스포츠재단 관계자 2명(정현식 사무총장, 박헌영 과장)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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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 전 문체부 2차관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전 정책조정수석도 시차를 두고 이 회의장을 찾았다. A씨는 누슬리가 애당초 더블루케이를 '한국 정부의 회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 쪽 관계자(Government Officer)의 방문이 이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쪽 사람들이 나중에 회의장에 왔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더블루케이'가 한국 정부가 만든 회사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누슬리도 그렇게 알고 업무협약을 맺은 것입니다.누슬리 관계자 A씨

당시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는지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A씨는 이에 대해 '누슬리로선 잃을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누슬리'라는 이름만 빌려줄 뿐, 나머지 사항은 더블루케이가 일체 알아서 한다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평창올림픽 관련 사업 수주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누슬리가 이 같은 더블루케이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누슬리는 이 업무협약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한 푼도 낼 필요가 없었던 데다 양쪽 어디나 원하면 업무 협약을 취소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누슬리의 이름을 쓰기 전에 누슬리 본사의 허락을 받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누슬리 입장에서는 리스크(risk)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누슬리 관계자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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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더블루케이가 정부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누슬리의 관심을 끌었다. A씨는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대형 국제스포츠 행사에서 주최국 정부가 만든 가짜 회사가 사업 이권만 얻고 사라지는 일이 관행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더블루케이 역시 이와 같은 경우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는 관행적으로 월드컵, 올림픽 때면 이런 회사들이 나타나서 이름만 빌려 사업을 맡고 사라지곤 합니다. 누슬리는 국제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각 나라의 사업 여건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슬리 관계자 A씨

박헌영 "내가 누슬리 소개자... '막무가내' 최순실 때문에 제대로 된 사업 없어"

이 거래의 다리를 놓은 사람은 K스포츠재단의 박헌영 과장과 누슬리 한국인 직원 이 모 씨였다. 박 과장은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최 씨에게 누슬리를 소개시킨 당사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씨가 누슬리 측에 상식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하면서 실제 제대로 진행된 사업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MOU를 통해) 수익의 5% 정도를 세일즈 피(fee)로 받기로 했어요. 저는 그것이 대단한 수확이라고 생각했는데, 최 씨는 만족하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최 씨가 김종 차관에게 들었는지 한국에 '누슬리 코리아' 합작법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요. (2016년) 4월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누슬리 CEO를 만났는데 최 씨가 막무가내로 '수익을 5:5로 나누지 않으면 같이 일하지 않겠다'고 우겼어요. 나중에 누슬리 CEO가 허탈해서 막 웃더라고요. 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

검찰은 최 씨가 누슬리와 계약을 맺고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사업의 이권을 노렸다고 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이 문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안 전 수석의 수첩 사본에는 누슬리와 관련한 대통령의 지시가 수차례 기록돼 있다(관련기사 :  박근혜-최순실 기획, 안종범 실행…대통령 권한남용의 전모)

안종범 수첩(2016.3.6.일자)
안종범 수첩(2016.3.6.일자)

최 씨가 추진한 주요 이권 사업인 '5대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에도 누슬리의 이름은 곳곳에 등장한다. 최 씨는 부영과 롯데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체육시설을 건설하고, 이 시설의 운영을 자신이 실소유한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가 맡아 사업 이권을 취하도록 계획했다(관련기사 :  박근혜-최순실 기획, 안종범 실행…대통령 권한남용의 전모). 검찰이 법정에서 공개한 다수의 관련 문건들에 따르면, 경기도 하남 등에 조성되는 스포츠센터의 건설사업은 추후 누슬리가 맡도록 되어 있었다.

최순실 회사의 5억 원, 누슬리 자회사로 흘러가

최 씨가 최소한 지난해 6월까지 누슬리와의 관계를 지속했다는 정황도 뉴스타파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최 씨가 실소유한 또다른 차명회사 '플레이그라운드'는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에 맞춰 열린 K-day 한류문화 행사를 수주했다. 당시 플레이그라운드가 이 사업 예산으로 해외문화홍보원으로부터 지원받은 예산은 7억여 원. 이 가운데 약 5억여 원(41만4000유로)은 독일의 한 이벤트 시설 관련 회사로 지출됐다. 계약서에는 사업과 관련해 발생하는 추가비용 역시 플레이그라운드 측이 부담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 독일회사의 이름은 '암브로시우스(Ambrosius)', 누슬리 본사가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다.

암브로시우스 계약서
암브로시우스 계약서

한 국제 전시행사 전문가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웰컴라운지' 건축 비용으로 들어간 5억 여 원이 지나치게 큰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정확한 도면이 없어 구체적인 비용을 산출할 순 없지만, 행사의 규모 등을 놓고 따져봤을 때 상식에 벗어난 계약금이라는 것이다.

취재진이 접촉한 플레이그라운드의 한 내부 직원은 파리 행사 당시 플레이그라운드가 해외 행사 경험이 많은 다른 직원들의 인맥을 이용해 관련 부대 지출을 최대한 줄였다고 말했다. 다른 사업비는 최대한 줄였지만, 유독 암브로시우스에 대한 지출에는 아낌이 없었던 셈이다.

이 같은 지출은 우연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13일, 최 씨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공판에서 제시된 검찰의 증거물에서도 최 씨 일당이 프랑스 행사와 누슬리를 관련지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검찰은 더블루케이 직원 류 모 씨가 검찰에 임의제출한 문건 가운데 '프랑스 행사', '누슬리'가 함께 기재된 문건이 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취재 : 오대양, 조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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