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외교 평가]② 대일외교, '큰 그림'이 부족했다

2022년 02월 17일 17시 23분

▲사진 : 2019년,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 도심에서 노노재팬 행진이 열리고 있다. (2019.8.14.)
‘노노 재팬’
2019년 무렵 누구라도 한 번쯤은 봤거나 입에 올렸을 말이다. 일본산 제품을 보이콧하겠다는 ‘노노 재팬’은 문재인 정부 시기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 한일 양국 정부는 역사 인식 문제를 두고 갈등을 거듭해 왔다. 독도 영유권, 역사교과서 문제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한일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기폭제였다. 판결 이후 일본이 한국 수출 규제,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 경제적 보복 조치를 취하자 한국은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통보 등으로 대응했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양국 관계는 현재까지 크게 나아질 조짐이 없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일본 정부 반발

한일 관계 경색의 1차 원인은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데서 찾을 수 있다. 대법원은 일제 시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옛 이름: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제철 측은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 원 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원고인 이춘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1940년대에 일본제철에서 노역에 종사했지만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거나 도리어 구타를 당하는 등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가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피해자들은 1심과 2심에서 각각 패소했지만, 2012년 대법원이 이를 파기 환송했고, 이후 항소심(서울고법)을 거쳐 2018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후 같은 해 11월, 대법원은 미쓰비시 중공업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에서도 역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사진 : 신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 씨가 대법원 판결 이후 법정을 나서고 있는 모습
식민 지배의 불법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논리는 뭘까. 1965년 박정희 정권 때 한일 양국이 체결한 청구권 협정 2조에는 "양 체약국(한국과 일본)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중략…)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적혀있다. 일본은 이 조항을 근거로 한국이 1965년 한일간 체결된 청구권 협정을 위반했고, 따라서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애초에 이 청구권 협정은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체결된 것이다. 일본은 해방 이후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그 부속 협정인 청구권 협정이 체결될 때부터 현재까지 한반도 식민 지배에 대한 불법성을 인정한 적이 없다.
한국 정부는 청구권 협정에 의한 보상은 ‘정치적 차원의 보상’이었지, ‘일본의 불법에 기반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포함된 보상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즉 피해자 ‘개인’이 일본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2007년 작성된 국무총리실 한일수교회담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 활동 백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국무총리실 한일수교회담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 활동 백서. 2007년.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을 이어갔고,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에 중재 등을 요청하다가 판결 이후 약 9개월이 지난 2019년 7월, 초유의 한국 수출 규제 방침을 발표했다. 반도체 핵심 소재 등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8월, 한국을 자국의 ‘화이트리스트’(수출 간소화 우대국)에서 제외했다.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통보로 대응했다. 한일 양국이 그동안  쌓아왔던 ‘정경분리’라는 토대가 깨지고, 역사 문제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며 경제 보복으로 이어진 순간이었다. 당시 보수 매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 등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부품 소재 산업 자립화율이 올라가는 측면도 있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아직 기다리고 있다

일본 정부의 반발 이후 한일 관계는 강대강 대치로 정리된다.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애초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와중에 역설적으로 일제 강점과 식민 지배의 피해자들은 오히려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는 ‘피해자중심주의’라는 원칙으로 이 문제에 대응했다. 그리고 사법부 판결에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접근했다. 이 원칙은 옳았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승소한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배상이 이행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피해자 중심’적으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지에 대해 피해자 단체 측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먼저 실질적 배상 이행의 문제다. 일본 외무성의 법원 압류결정문 송달 방해 등 우여곡절 끝에 현재는 일본제철과 미쓰비시 등에 대해 매각 명령이 내려진 상태지만 일본의 항고 절차가 남아있어 실질적인 이행까지는 시일이 더 소요될 예정이다. 일본제철 피해자 중에는 이춘식 씨만 생존해 있고,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1차 소송의 피해자들은 원고 5명 중 현재 3명이 생존해있다. 
그러는 동안 오히려 정부 여당에서는 한일 관계 정상화 방안이 등장했다. 일명 ‘문희상 안’이다. 2019년 12월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이 대표 발의한 이른바 ‘1+1+α’ 해법이다. 한국 기업과 일본의 기업, 그리고 국민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주자는 내용이었다. 이는 일본의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할 수 없는 해법이었고, 피해자 단체는 일본 정부에 면죄부를 주고 대법원이 인정한 배상 청구권을 소멸시키는 안이라며 반발했다. 

정부 차원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 단체에서는 한국 정부가 어떤 방안을 해결책으로 고민하고 있는지 와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본은 중국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는 배상을 한 사례가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가해 기업과 피해자간 화해가 성립됐다는 점이었다. 2007년, 가해 기업이었던 니시마쓰건설은 강제 징용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이후 니시마쓰건설은 피해자 183명에 대해 1억 2800만 엔을 중국 민간 단체에 지급했다. 정부의 개입과는 무관하게 당사자들간의 화해가 이뤄졌던 것이다. 
다른 방안도 논의됐다. 한국 정부가 식민 지배 불법성 자체를 아예 부인하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접점 없는 해결방안을 찾기보다는 자체적으로 우리 정부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1919년부터 이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존재했고, 따라서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임시정부 법통을 이어받은 한국 정부가 그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기조에서 한국 정부가 가해자인 일본 기업과 강제징용 피해지 사이의 화해를 주도하거나 대법원의 판결 이행을 추진한다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 등을 통해 국제 사회에 한국의 해결 노력과 진정성을 알리고 일본 정부에 공을 넘겨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해결 방안은 보이지 않고 있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시민모임 김정은 사무국장은 뉴스타파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법원 판결 이후 3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정부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이야기했지만,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 있게 접근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들이 소송을 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때 정부에서는 어떤 태도도 취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승소 이후에도 우리 정부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할 건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지 않다”고 토로했다. 
소멸 시효 문제도 새롭게 제기되고 있지만 이 역시 아직 이렇다 할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있다. 민사상 배상 청구권은 손해나 가해자를 인지한 날로부터 3년 안에 행사해야 한다는 소멸 시효에 대해, 법원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할지 2012년의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할지 판단이 엇갈리고 있고, 이에 따라 최근 들어 피해자들이 패소하고 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9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광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멸시효를 이유로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피해자 단체 측에서는 시효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와 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은 세웠으나 피해자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다면 명확한 답변을 할 수가 없다”며 “일본과의 협의를 위해 노력했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령의 원고들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한국이 남북관계에 외교 역량을 쏟느라 한일관계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 남기정 교수는 2018년 한국 정부가 추진했던 북미 협상과 한반도 프로세스를 언급하며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에서 북미정상회담을 브리핑 했던 2018년 3월 8일 이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수십 차례 접촉했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중요한 국면마다 아베 전 총리가 바로 전이나, 바로 직후에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하거나 직접 만나거나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대미 외교전과 집요한 로비가 남북관계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싫든 좋든 일본을 아예 배제하기보다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견인해 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한미, 미일 정상외교 현황. 출처 : 정보공개청구(한미),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미일). 문재인 정부 동안 한미정상회담과 미일정상회담은 각각 10차례 열렸다. 정상 전화 통화는 미일이 한미보다 4차례 많은 30회, 한미는 26회 이뤄졌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한반도 문제에 제일 민감한 나라가 일본”이라며 “일본과의 관계도 남북관계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일본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평화 국면을 견제하는 외교전을 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선 후보들의 입장은?

뉴스타파는 대선 주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 4인에게 질의서를 보내 대일 외교 관련 공약과 철학 등을 물었다. 
한일관계 경색의 책임에 대해서는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세 후보는 모두 일본에 1차적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이재명 후보는 “역사 갈등은 가해자인 일본의 반성 없는 태도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 역시 “큰 책임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독도 문제 도발에 있다”고 말했다. 단 안 후보는 “문재인 정부와 일본 정부 모두 한일관계와 과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심 후보는 “아베 등 일본 자민당 정부의 반인권 강압 외교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일관계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이재명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입장이 비슷했다. 단 이재명 후보는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강조했고, 안철수 후보는 투트랙 실리외교를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는 “한일관계 개선은 매우 필요하다”고 밝히면서도,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전제돼야 한다”, “한일관계 복구가 목적이 되는 방식의 접근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는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는 우리 주권의 문제로 타협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과거사는 직시하면서도 경제 과학 국방 등 분야에서는 서로의 국익에 부합하는 투트랙 실리외교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후보는 1965년의 한일협정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1965년 한일협정을 수정하는 신 한일협정을 체결하거나, 적어도 1910년 한일병탄조약이 불법이며 원천무효라는 것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거나 양국 정상이 공동 선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외교안보 공약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시대를 열겠다”, "영토, 주권, 과거사에 관한 사항은 당당한 입장을 견지하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으로서 공영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담겠다”는 원론적 방침을 발표했다.
제작진
그래픽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