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노동자의 취업 제한을 목적으로 만든 일명 '쿠팡 블랙리스트'에 뉴스타파 기자 2명도 올랐다. 기자 2명은 계속 쿠팡 물류센터에 취업을 시도했지만, 모두 취업이 거부됐다. 뉴스타파가 접촉한 다수의 쿠팡 블랙리스트 등재자들도 번번이 취업 시도가 막혔다고 털어놨다.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의미다.
쿠팡 측은 "절도·폭행·성희롱 등을 저지른 사람들로부터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쿠팡에서 일한 적도 없는 기자 수십 명과 노동조합 간부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이유 등에 대해선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뉴스타파는 MBC가 보도한 쿠팡 블랙리스트, 일명 'PNG 리스트' 엑셀 파일을 입수했다. PNG는 '기피 인물'을 뜻하는 'Persona Non Grata'의 준말로 추정된다. 이 리스트에는 1만 6450명의 이름과 직전 근무 물류센터, 취업제한 사유를 포함해 생년월일과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한 전직 쿠팡 직원은 "PNG 리스트는 쿠팡풀필먼트(쿠팡 물류센터 운영 계열사) 본사 차원에서 관리한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에는 일반 노동자만 있는 게 아니다. MBC 보도에 따르면, 100명 가량의 언론인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뉴스타파 기자 2명의 이름도 올라 있다. 홍주환, 홍여진 기자다. 모두 지난해 <쿠팡은 바뀌지 않는다> 기획 보도를 준비하며 쿠팡 물류센터에 잠입취재 했던 기자들이다. 리스트에는 뉴스타파 기자들의 생년월일,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가 기재돼 있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쿠팡 블랙리스트(PNG 리스트)' 엑셀 파일. 1만 6450명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등 민감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쿠팡은 이 엑셀파일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뉴스타파 기자가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시점은 각각 지난해 8월 8일(홍여진 기자)과 8월 18일(홍주환 기자)이다. 뉴스타파의 쿠팡 잠입취재 첫 보도(8월 17일)를 전후한 시점이다. 기자 1명은 쿠팡 첫 보도가 나가기도 전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쿠팡이 뉴스타파 취재에 대한 질의서를 받고(지난해 8월 3일)추가 취재 차단을 위해 기자를 리스트에 등재한 것으로 의심된다.
뉴스타파 기자의 블랙리스트 등재 사유는 모두 '회사 명예훼손'이다. 하지만 쿠팡은 뉴스타파 보도에 대해 법원이나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보도 결정을 받은 적이 없다. 민형사 소송을 걸어 승소한 적도 없다. 뉴스타파의 취재와 보도가 명예훼손이라는 것은 쿠팡의 자의적 판단에 불과하다.
블랙리스트 파일이 조작이라고?...쿠팡 내부 서버에서도 똑같은 명단 발견
쿠팡은 MBC·뉴스타파가 입수한 PNG 리스트 엑셀 파일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같은 내용은 쿠팡 내부 서버에서도 확인된다. 취재진이 확보한 쿠팡 내부서버 캡쳐 화면에는 엑셀 파일과 똑같은 'PNG 리스트' 목록이 등장한다. 이 내부서버에서 뉴스타파 기자의 이름을 검색하면, 엑셀 파일과 동일한 자료가 나온다. 등록일자, 센터, 요청자, 이름, 생년월일, 로그인 아이디, 휴대전화 번호 순서로 열이 이어지고, 내용도 일치한다. 특히 사유2에 기재된 "회사 명예훼손, Matt님 요청"은 엑셀 파일과 판박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쿠팡 내부서버 화면 모습. 쿠팡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엑셀 파일과 똑같이 'PNG 리스트'가 나온다. 뉴스타파 기자의 이름을 검색하면 엑셀 파일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전국 물류센터에 근무 시도했지만... 모두 '취업 거부'
뉴스타파는 이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효력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일 넘게 쿠팡 전국 물류센터에 근무를 신청했다. 그 결과, 블랙리스트에 오른 뉴스타파 기자 2명 모두 취업이 거부됐다.
'쿠팡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뉴스타파 홍주환 기자의 쿠팡 물류센터 근무신청 기록. 9개 물류센터에 근무를 신청했지만, 모두 거부됐다.
'쿠팡 블랙리스트'에 오른 뉴스타파 홍여진 기자의 쿠팡 물류센터 근무신청 기록. 5개 센터에 근무를 신청했지만, 모두 거부됐다.
각 물류센터 채용 담당자에게 연락해 취업을 거부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하나같이 "자리가 부족해 뽑히지 않은 것"이라고 답했다.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이 있던데 그것 때문에 취업이 안 된 것은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리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뉴스타파와 통화한 블랙리스트 등재자인 A 씨는 "물류센터 출근 전에 개인 사정으로 몇 번 근무를 취소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아무리 근무를 신청해도 다 거부됐다. 한 번도 블랙리스트에 대해 설명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다른 노동자 B 씨도 "계속 쿠팡에 취업이 안 되니 지금은 다른 데서 일한다"고 말했다. 이 노동자의 블래리스트 등록 사유는 '경미한 안전수칙 위반'이었다. B 씨는 "컨베이어벨트 레일 위에 앉았다가 관리자에게 한 번 지적을 받은 게 다였다. 내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있는 줄도 몰랐고, 그럴 수 있다는 걸 쿠팡으로부터 안내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취재 문의했다고 바로 블랙리스트에"... 쿠팡 본사 직원이 '진두지휘' 정황
쿠팡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뉴스타파 기자와 다른 노동자들 뿐만이 아니다. 언론사 기자 약 70명도 있다. 이 중에는 쿠팡을 취재한 적이 없는 기자도 많다. 한 기자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쿠팡에 연락해 혹시 물류센터 내부를 취재해 볼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지난해 8월 초 쿠팡 호법 물류센터에 '취재가 가능한지' 문의했다고 한다. 쿠팡 내부자료에 따르면, 같은 달 7일 쿠팡 호법 물류센터는 '특이사항 파일'에 이 기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었다. 이름은 '미상'으로 썼다. 그러면서 '특이사항 상세 내용'으로 "OO일보 기자 추정, 취재 목적으로 위장 근무 신청 가능"이라고 했다.
그러자 바로 당일, 이 기자의 이름이 쿠팡 블랙리스트에 등록됐다. 이름은 '기자'로 기재됐고, 휴대전화 번호도 적시됐다. 사유는 '회사 명예훼손'이었다. 취재 문의를 했을 뿐인 기자를 회사 명예훼손 명목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뉴스타파가 접촉한 다른 기자는 "나는 쿠팡 기사를 써본 적도 없다. 나를 포함해 경찰청 출입기자 명단이 통째로 쿠팡에 넘어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 같다. 쿠팡에 경위를 물어봤는데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기자의 블랙리스트 등록 사유는 '허위사실 유포'였다.
위 기자 2명을 포함해 기자 약 70명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도록 요청한 사람은 'MATT'이라고 이름이 기재된 쿠팡 직원이었다. 확인 결과, 이 직원은 쿠팡 풀필먼트 잠실 본사에서 근무하는 채용 관리자였다. 한 전직 쿠팡 직원은 “누군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려 하거나 빼려고 할 때 모두 MATT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쿠팡풀필먼트의 '사원 평정 표준운영절차'에 따르면, 특정 인물의 재입사 제한을 해제하기 위해선 “MATT님 보고 및 승인"이 필요하다고 나온다. 사실상 쿠팡 블랙리스트의 총괄 책임자라는 의미다.
취재진은 MATT에게 연락해 '왜 쿠팡에서 일한 적도 없는 기자들이 블랙리스트에 있는지', 'PNG리스트의 구체적인 작성 프로세스는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MATT은 답변을 회피했고 "PR 부서에 연락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쿠팡 블랙리스트(PNG 리스트).' 약 70 명의 기자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도록 한 '요청자'는 바로 쿠팡풀필먼트(쿠팡 물류센터 운영 계열사) 본사 직원인 'MATT'이었다. 쿠팡 자료에 따르면, MATT은 블랙리스트의 총괄 책임자였다. 뉴스타파는 MATT에게 연락했지만 아무 답도 들을 수 없었다.
자기 사업장에만 블랙리스트 쓰면 합법?... "따져봐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40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해서는 안 된다. 쿠팡의 블랙리스트 작성 및 행사가 불법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일각에서는 '다른 사업장 취업을 방해할 때'에만 근로기준법 제40조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기 사업장에만 한정해 취업 제한을 목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건 합법이라는 얘기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던 마켓컬리가 지난 2021년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블랙리스트 작성이 '합리적 절차'를 통해 이뤄졌을 때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쿠팡 블랙리스트에는 기자 70여 명과 자발적 퇴사자의 개인정보도 포함돼 있고, 자의적으로 보이는 취업제한 사유도 여럿 있다. '허위사실 유포', '회사 명예훼손', '경미한 안전수칙 위반', '고의적 업무방해' 등이 대표적이다. 한 전직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는 "관리자에게 문제 제기를 하기만 해도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사실상 관리자 마음이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전국 약 40개 쿠팡 물류센터에서 모두 일할 수 없다는 점도 앞으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동탄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노동자를 창원 물류센터에서도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자기 사업장에만 한정한 취업 제한'이냐는 얘기다. 오민애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제40조를 만들 때) 지금처럼 플랫폼 노동이 활성화된 상태를 예정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다퉈봐야 될 부분이다. 또 쿠팡이 자회사끼리 정보를 공유했을 가능성도 큰 상태라서 그 부분까지도 자사의 범위로 볼 수 있는지는 다퉈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시민단체들은 지난 19일 쿠팡을 개인정보보호법,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고,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했다.
노동시민단체들은 지난 19일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쿠팡을 개인정보보호법,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고,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했다.
쿠팡, 뉴스타파 질문 모두 '회피'... 뉴스룸 입장문만 '복붙'
뉴스타파는 쿠팡 홍보팀에 연락해 ▲블랙리스트에 기자 명단을 올린 이유 ▲뉴스타파 기자가 쿠팡을 명예훼손했다고 판단한 이유 ▲노동자에게 '개인정보를 블랙리스트 작성에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 공지한 적이 있는지 여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노동자의 취업을 거부하며 해당 사실 고지했는지 여부 ▲블랙리스트 작성 및 행사가 개인정보보호법,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한 입장 등을 물었다.
쿠팡은 뉴스타파 질의에는 답변하지 않고, '쿠팡 뉴스룸'에 올라 있는 입장문을 그대로 베껴 전달했다. "직원에 대한 인사평가는 회사의 고유권한이자 안전한 사업장 운영을 위한 당연한 책무", "(블랙리스트에 대한 비판은) 민주노총과 MBC의 악의적 방송"이라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