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죄를 지었으면 제대로 처벌하고 더 이상 같은 죄를 저지를 수 없도록 합당한 조치를 하는 것, 이게 우리 사회를 법치주의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 조건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사립대학 총장이었던 그는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조성된 교비를 사적으로 전용하고, 자신이 소유한 리조트와 학교가 거래를 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돈을 빼먹었고, 학교가 받은 기부금을 재단 회계에 편입하는 등 교육부가 확인한 횡령금액만 100억 원이 넘어 '사학비리의 끝판왕'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교육부의 실태조사와 검찰의 수사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검찰은 교육부가 적발해 고발한 100억 원의 횡령 배임 액수 가운데 단 7억 원만을 기소했고, 법원은 그마저도 깎아서 3억 원만을 유죄로 판결했습니다. 집행유예로 구속을 피한 그는, 명목상 학교의 총장에서는 물러났지만 다시 자신의 측근들로 학교 이사회를 채운 뒤 여전히 수원대에서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대충 짐작하셨겠죠. 그 인물은 바로 수원대 이인수 전 총장입니다. 조선일보 방상훈 일가의 사돈이자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의 30년 지기로 알려진 인물. 김무성 전 대표의 둘째 딸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등 그는 정치인 자녀들의 교수 채용 등을 통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인맥을 쌓았고, 지역의 토착 권력기관 관리에도 소흘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우리 사회 기득권 인맥의 '총체'라고도 불릴만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의 인맥 가운데 핵심은 '조선일보의 사돈'이라는 점일 겁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 사건에서 법원 행정처가 이인수 씨의 사건을 따로 관리한 증거 문건이 발견됐다는 점은 그의 위세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검찰과 교육부의 면죄부.. '등록금 빼먹기'는 계속된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7년 이 전 총장의 교비 횡령 의혹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교육부 실태조사가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위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습니다. 검찰의 수사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니 황당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 전 총장의 비위 의혹이 집중된 시기는 수사에서 아예 제외하는가 하면, 이미 횡령한 돈을 돌려놨다는 이유로 불기소를 하거나 수사 중에 공소시효가 지난 혐의에 대해 수수방관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돌아온 이인수 전 총장. 비록 이제 명목상 총장은 아니지만 학교 이사회를 자신의 측근들로 채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에는 교육부의 이해할 수 없는 조치가 결정적이었습니다. 2018년 수원대 학교법인은 교육부가 이인수 전 총장의 측근 이사들을 해임 처분한 것이 부당하다며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말 교육부 승소로 마무리됐습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이 전 총장 측근 이사들을 원래대로 해임시키는 대신 학교법인이 요청한 또 다른 이인수 측근들을 최근 신규 이사로 승인해줬습니다. 교육부는 대체 왜 그랬을까요. 한가지 힌트는 있습니다. 교육부가 승소한 건 지난해 말인데 이사 선임 결정은 올해 5월까지 미뤄왔다는 겁니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 임기 후반이라 눈치를 보며 결정을 유보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수원대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수원대 안팎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뉴스타파에도 다시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취재를 해보니, 수원대는 놀랍게도 이인수 총장 가족이 소유한 리조트와 학교 간의 '부당거래'를 아직까지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100억 대 횡령 배임이 적발됐지만 전 총장 일가의 '등록금 빼먹기'를 계속 방치하고 있었다는 거죠. 중요한 회의를 학교 사무실이 아니라 이인수의 개인 사무실에서 열 정도로 여전히 이인수의 막강한 영향력 밑에 놓여있다는 사실도 재차 확인됐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검찰과 교육부가 내준 면죄부의 결과입니다.
윤석열표 교육 개혁... 부패 사학 배만 불릴 수도
인사 검증 실패와 막말, 영부인 측근 인사 등으로 이미 동력을 잃어가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윤석열 대통령이 내세우고 있는 3대 개혁 중 하나는 바로 교육개혁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 개혁은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요? 지금까지 발표한 정책만 보면 대학을 운영하는 사학 재단들에 대한 규제는 풀고 지원은 늘리겠다는 방향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인 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동결됐던 대학 등록금의 인상을 허용하고, 현재는 유초중등 교육 즉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에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대학에도 나눠주겠다는 정책입니다. 물론 선의로 해석하자면,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나 중요시하는 반도체 산업 등 미래 먹거리 첨단 산업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 교육을 내실화하겠다는 의도겠죠.
그러나 이번 주 <주간 뉴스타파>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것처럼 두터운 인맥으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과 얽혀있는 일부 사학들의 부패와 비리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고, 이를 바로 잡아야 할 행정부와 검찰, 사법부의 권한도 그 영향력 앞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부패의 네트워크를 방치한 채 사학에 들어가는 돈만 크게 늘려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부패 사학재단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