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언론은 “6년 전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항적을 거짓 발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출처는 국가조사기구인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였다.
사참위는 지난해 12월 17일 ‘참사 당일 세월호 항적 발표 및 증거보전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해양수산부가 참사 당일 오후 4시 이전까지 해수부 상황실 모니터에 표출된 세월호 AIS(선박자동식별장치) 항적과 전혀 다른 항적을 세월호 항적으로 발표했다”고 밝혔다. 이어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사고 시각과 장소에 대한 혼란이 발생한 것은 해수부 상황실 AIS 항적 ‘조작’ 의혹과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결과 사참위의 조사 결과는 사실이 아니었다.
▲ 참사 당일 세월호 항적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박병우 사참위 세월호 진상규명국장
사참위 “오후 4시 이전까지 엉뚱한 세월호 항적 존재”...알고 보니 두라에이스호 항적
사참위가 항적 조작 의혹을 제기한 근거는 참사 당일 해수부 상황실을 촬영한 방송 영상이다.
해수부 상황실에는 VMS, 즉 선박모니터링시스템이 대형 모니터에 띄워져 있었는데, 사참위는 이날 오전 10시 5분 무렵과 오후 2시 25분 무렵 촬영된 세월호의 항적이 같은 날 오후 4시 이후 촬영된 세월호의 항적과 달랐다고 밝혔다. 즉, 참사 당일 해수부 상황실에 서로 다른 세월호 항적 2개가 존재했었다는 주장이다.
박병우 사참위 세월호 진상규명국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4시 이전의 (세월호) 항적과 4시 이후의 항적이 서로 다르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 참사 당일 해수부 상황실에서 오전 10시 25분(왼쪽)과 오후 4시 이후(오른쪽) 각각 촬영된 선박모니터링시스템 화면
하지만 뉴스타파 취재 결과, 오후 4시 이전 상황실 모니터에 표출된 항적은 남동쪽과 북쪽으로 각각 이동한 선박 2척의 항적이 한 화면에 표시된 것이었다. 이중 남동쪽으로 이동한 항적은 참사 당시 세월호에 처음 접근했던 두라에이스호의 9시 19분 이전 항적과 정확히 일치했다. 북쪽으로 진행한 항적은 9시 30분 이후의 세월호 항적이었다. 게다가 남동쪽 방향 항적과 북쪽 방향 항적은 서로 이어져 있지 않았다. 동일한 선박의 항적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 해수부가 문제 삼은 16시 이전 항적의 전반부(붉은색)는 두라에이스호의 9시 19분까지의 항적과 일치했다
해수부도 최근 이같은 내용을 담은 해명자료를 사참위에 제출했다. 청와대에도 같은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참사 당일 오후 4시 이전 해수부 상황실 모니터에 두라에이스호와 세월호의 항적이 한 화면에 함께 표출된 경위는 아직까지 불분명한 상태다. 해수부는 당시 상황실 근무자들을 전수 조사했지만 누구도 이에 관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사 당일 세월호와 두라에이스호의 항적을 한 화면에 표출시킨 해수부가 항적 조작 의혹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사참위에 있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잘못된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함으로써, 참사 이후 일각에서 제기해 왔던 음모론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사참위에 질의서를 보내 이상의 취재 내용을 전달하고 입장을 물었다. 이에 대해 사참위는 “해당 내용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구체적 답변과 근거를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판단 오류가 부른 또 다른 부실조사…’참사 당일 항적 저장 장애’도 사실로 확인돼
세월호 항적 조작 의혹에 대한 사참위의 판단 오류는 또 다른 부실 조사로 이어졌다.
사참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사 이후 세월호의 항적이 4차례에 걸쳐 보완 발표된 것과 관련해 해수부가 2014년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에서 내놓았던 설명이 거짓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사참위는 해수부 관계자들에 대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로 특검 수사를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근거로 사참위는 당시 정부 통합전산센터가 해수부에 회신한 공문을 제시했다. 이 문서에는 “정부통합전산센터내 선박위치정보시스템과 관련한 서버와 DB 및 네트워크 장애는 없었고, 모든 선박의 위치정보 저장이 지연된 바도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앞서 해수부는 참사 당일 오전 3시 37분부터 9시 30분까지의 AIS 항적 저장 오류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부통합전산센터 서버에 문제가 있었는지 질의한 바 있다.
▲ 해수부 질의 공문에 대한 정부 통합전산센터의 회신 공문 (출처: 사참위 배포 자료)
사참위는 “해수부 설명대로 참사 당일 오전 통합전산센터 서버에 세월호 항적이 저장되지 않은 상태였다면 오후 4시 이전까지 해수부 상황실의 VMS 모니터 상에 세월호 항적은 나타날 수 없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오후 4시 이전 해수부 상황실에는 분명히 세월호 항적이 표출돼 있었기 때문에 해수부의 설명은 거짓이라는 논리다.
당시 해수부는 참사 당일 오전 3시 37분부터 9시 30분까지 정부 통합전산센터 서버에 유지보수 업체의 작업 실수로 세월호를 비롯한 대다수 선박들의 항적이 일부만 저장된 현상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목포VTS에 저장된 세월호 항적을 가져와 긴급 복구한 끝에 오후 4시쯤 세월호의 1차 항적을 복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해수부가 발표했던 세월호 1, 2, 3차 항적과 출처
앞선 뉴스타파 취재 내용처럼 사참위가 주장한 오후 4시 이전 항적은 두라에이스호와 세월호 항적이 한데 섞여 있던 것이었다. 그 가운데 세월호 항적은 9시 30분 이후의 것이었던 점으로 볼 때, 통합전산센터의 항적 저장에 문제가 있었다는 해수부 설명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참위는 오후 4시 이전 항적 전체가 세월호의 것이라고 잘못 판단한 결과, 해수부의 설명을 거짓이라고 규정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뉴스타파가 취재를 통해 확인한 사실관계는 이렇다.
선박 AIS 데이터는 전국 연안의 수십 개 기지국에서 수신한 뒤 1차 저장된 뒤 거점별 VTS로 전송돼 2차 저장된다. 이후 각 VTS에 수집된 데이터들은 정부통합전산센터로 전송된다.
그런데 통합전산센터 서버는 여러 부처와 기관의 데이터를 수신해 저장하는 영역들로 할당되어 있다. 이 가운데 해수부 할당 영역으로 항적 데이터들이 전송돼 저장되는데, 이 과정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이 GICOMS, 즉 해양안전종합정보시스템이다.
GICOMS는 통합전산센터가 관리하는 게 아니라 해수부가 위탁한 유지보수 업체가 외부에서 원격으로 관리한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2주 전 이 업체가 GICOMS 네트워크 관리 작업 도중 게이트웨이 IP 2개 가운데 1개의 값을 잘못 입력했다.
이에 따라 참사 당일 오전 3시 37분부터 9시 30까지 항적들이 네트워크 상에서 대거 유실되고 불과 5%만이 정상적으로 전송돼 저장됐다. 그래서 당시 통합전산센터 서버는 이상 없이 가동되고 있었지만, 해수부 할당 영역에는 세월호를 포함한 대다수 항적들이 저장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항적이 제대로 저장되지 않았다는 해수부의 설명도, 같은 시간대에 서버 장애는 없었다는 통합전산센터의 설명도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다.
▲ 참사 당일 통합전산센터 서버가 정상 가동됐음에도 선박 항적이 극소수만 수신돼 저장됐던 이유
결국 참사 당일 해수부 상황실에 세월호 항적이 2개 존재했었다는 사참위의 발표는 완전한 판단 오류의 결과물이었다.
세월호 항적 조작 의혹은 검찰 특별수사단도 혐의점이 없다고 결론 내린 사안이다. 유가족의 의혹 제기 세월호 항적 조작 의혹을 수사한 검찰 특수단은 지난 19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해수부가 발표한 세월호 항적이 7개 VTS의 23개 AIS 기지국에서 확인된 AIS 항적 및 원문과 일치하고, 민간에서 수집한 AIS 항적 및 원문과도 일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항적 조작을 위해 민간을 포함한 다양한 출처의 AIS 데이터를 조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항적 조작설을 일축했다. 이는 2017년 뉴스타파 보도(누구의 인텐션인가?...세월호 항적 조작과 앵커설 검증)와 동일한 검증 방식을 통한 동일한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사참위는 특수단 발표 당일부터 "참사 당일 해수부 상황실에 오후 4시 이전과 이후 서로 다른 세월호 항적이 존재했다"는 잘못된 조사 결과를 카드뉴스로 만들어 인터넷에 배포하기 시작했다.
엄밀한 조사를 통해 각종 의혹을 해소해야 할 국가조사기구가 기본적 사실관계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부실조사로 오히려 세월호 항적 조작 음모론을 강화하는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