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2월 주한 미국대사관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일 관계를 전망하는 상급 비밀 전문을 본국에 보냈습니다. 2035년에 비밀 해지 하도록 시정된 이 전문은 3.1절과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일 등 민감한 기념일들을 최대한 잘 넘기기 위해 한국 외교통상부가 일본 대사관과 협조하고 있다는 내용을 닮고 있습니다.
전문은 먼저 주한 일본대사관에 마치오히로타카 정부청사관이 미대사관 관계자와 만나 한일 양국의 긴밀한 협력으로 지금까지는 한국 내에 반일 포퓰리즘을 다스리는데 성공하고 있지만 올 한해 동안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문에 따르면 마치오 참사관은 이 때문에 일본대사관이 한국의 각종 기념일과 국치 100년 행사 등을 매우 자세히 정리한 한 해 일정표를 만들어 민감한 시기에 대비하고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 전문은 또 장원삼 동북아 국장이 외교통상부는 반일감정의 폭발점이 될 수 있는 3.1절과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일 등 민감한 기념일을 최대한 조용하게 넘기기 위해 마치오 참사관 등 주한일본 대사관 관계자들과 협조하고 있다고 미국 측에 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국내에선 강제 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에 진정한 반성과 사과, 그리고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으나 정작 이명박 정부는 국치 100년이랑 민감한 시기를 어떻게든 조용히 보내기 위해 일보측과 협력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무엇보다 한일 관계에서 이명박 정부는 기본적인 역사관이 없고 식민지 지배를 당했다 독립된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져야 될 역사적 책임과 한국인의 주권의식과 책임의식이란 것이 전혀 없이 역사마저 사실 양보를 했고. 이 결과 오히려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어가서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이 끌려 다녔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실제 그해 3.1절 기념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 라는 입장을 강조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우리 대한민국은 이들 젊은이들처럼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를 품으며 인류 공영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또 대승적 화합이 3.1 운동 정신이란 주장도 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되, 작은 차이를 넘어 커다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3.1운동의 대승적 화합 정신을 계승, 승화하는 길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거의 예외 없이 기념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국치 100년 해에 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의 배후엔 민감한 시기를 조용히 넘기자는 한일 간의 밀담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조율이 무색하게 그해 9월 일본정부는 2010년판 방위백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명기했습니다.
국치 100년 관련 전문을 타전한 바로 그날. 주한미 대사관은 또 다른 전문 한 건을 국무부에 보냈습니다.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이던 김성한 외교통상부 장관이 서울을 방문한 미군무부 차관보 커트캠벨에게 어떤 부탁을 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1회 핵 안보 정상회의 참석차 워싱턴을 방문해 한국전쟁기념관을 찾을 예정인데 오바마 대통령이 함께 가 줄 수 있느냐, 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러나 캠벨 차관보는 핵 정상 회의 기간에 일정을 잡기는 극도로 힘들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측의 부탁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루 뒤 유명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도 캠벨 차관보와 만나 이 대통령이 한국전쟁 기념관을 방문할 때 오바마 대통령이 10분만이라도 동행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캠벨 차관보는 그것이 훌륭한 제스처는 되겠지만 추가 행사를 마련하긴 힘들다고 거절했습니다.
청와대 수석과 외교부장관이 미국 차관보 급에게 이틀 연속 터무니없는 부탁을 하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숨겨진 국격의 수준입니다.
위키리크스가 미국 비밀 외교문서를 전면 공개한 뒤 7개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이처럼 미국 전문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주로 언론매체는 여전히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언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나서서 미국 전문을 분석해 기사를 쓰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동권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저희가 아이템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탐사보도를 하는 그런 기존 언론들이 조금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해서 우리가 충격 혹은 청량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거를 보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왜 당신들은 하지 않는가. 오히려 이런 좀 건방진 생각이었을 수도 있고. 그런 좀 대학생들만의 패기를 가지고 한 번 해보자, 라고 생각을 하여서.”
[김휘연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언론에서 보도하기 힘들었던 것 같은 이유가 한미관계가 겉으로 드러난 게 아니라 그 장막 뒤를 살펴보는 거잖아요. 근데 정부에서 예전에 공식입장 발표한 것과 또 그것을 그대로 인용한 언론보도와는 약간 상충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거 약간 권력관계가 개입된 입장에서는 언론에서 쉽사리 보도하기가 쉽지 않았나, 힘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들은 주한미 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 1900여 건 가운데 북한관련 전문들만 추려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미 백악관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공식 발표 전에 미리 알았다는 것과 참여정부의 청와대 비선조직이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여러 차례 방북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습니다.
[이동권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서 비선으로 대통령 특사 그런 역할로 20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라는 그런 사실을 알 수가 있어서 기존 언론보도로는 나오지 않았던 내용이라서 저희 나름대로는 위키리크스를 바탕으로 저희들이 알아냈던 그런 새로운 사실이라는 그런 점에 좀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들이 쓴 기사는 시사주관지 시사IN이 주관한 제3회 대학생 기자상 수상작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기성 언론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미국 쇠고기 개방, 한미 FTA 등과 관련한 진실들이 적지 않게 폭로됐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내용도 많이 숨어있습니다. 4.11 총선 이후 국회 차원의 전면적인 국정조사와 진상 규명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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