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의혹이 제기된 전·현직 국회의원 23명이 최근 검찰로부터 또 다시 면죄부를 받았다. 3년 전 국민권익위원회에 이어 두 번째 '불처벌'이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3월, 국회의원 23명이 연루된 ‘피감기관 해외출장 부당 특혜 사건’의 고발에 대해 각하 처분을 내렸다. 수사를 개시하는데 필요한 법률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국회의원 피감기관 해외출장 특혜 사건…검찰 각하 처분
2018년 뉴스타파가 시민단체 3곳과 함께 국회감시 프로젝트, ‘세금도둑 추적’을 진행하던 중 국회의원들의 비리 의혹이 나왔다.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으로부터 부당하게 경비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뉴스타파와 국회 감시를 같이 하던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2019년 해당 국회의원들을 김영란법 위반으로 처벌해 달라고 서울남부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고발 대상은 김영란법을 시행한 2016년 9월 28일부터 2018년 4월까지, 피감기관의 예산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국회의원 23명이었다.
김영란법은 직무관련성에 상관없이 공직자가 1회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앞서 김영란법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는 공직자들의 해외출장 실태를 전수 조사해, 일부 국회의원이 피감기관인 공공기관으로부터 부당한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온 사실을 적발한 바 있다.
하승수 변호사가 고발장을 낸 지 2년이 지난 2021년 3월, 서울남부지검은 사건을 각하 처분했다. “신청인(하 변호사)이 제출한 고발장만으로 법을 위반한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수사를 할 수 없다”는 게 각하 이유였다. 실제로 하 변호사는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피의자인 23명의 국회의원을 ‘성명불상’으로 기재했다. "성명불상을 이유로 명백한 범죄 혐의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수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하 변호사의 주장이다.
당시 하 변호사는 왜 ‘성명불상’의 고발장을 제출했던 것일까. 비리 의원 이름을 모두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 변호사뿐 아니라 거의 모든 국민이 알지 못했다. 정부가 의원 명단을 철저히 비공개했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31일, 권익위는 ‘피감기관이 국회의원의 해외출장을 지원한 사례 23건'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중 10건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문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해당 10건에 연루된 국회의원 숫자가 정확히 23명이었다. 나머지 13건(의원 15명)은 “법을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권익위, 23명 의원 비리 확인에도 미고발… 명단도 비공개
당시 권익위는 보도자료에서 “기관 차원의 제도 미비에 따라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권익위는 국회의원 23명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대신 이들에게 해외출장을 지원한 13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게 제도개선을 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재외동포재단, 한국국제협력단 등 13개 기관의 명단을 공개했다. 하지만 정작 의원 23명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형사고발 등의 별도 조치도 없었다. 몇몇 언론이 취재를 통해 일부 실명보도를 했지만 권익위 차원의 사실 확인은 없었다.
하승수 변호사가 어쩔 수 없이 ‘성명불상의 고발장’을 작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권익위가 애초 파악한 38명 중 최종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걸러낸 의원 23명은 법 위반이 명백”하니 수사를 해달라고 한 것이다. 하 변호사는 “권익위가 정식 고발을 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이번 검찰의 각하 처리 과정을 취재하면서 권익위 등 정부가 저지른 몇가지 문제를 확인했다.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둘러싼 사건 처리의 허술함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은 2019년 하 변호사의 고발장을 접수받고 권익위에 성명불상으로 고발당한 국회의원 명단을 요청했다. 앞서 권익위는 2018년 7월부터 같은해 12월까지 해외출장을 지원받은 국회의원 사례 23건을 조사했다. 이중 문제가 확인된 사례가 10건, 의원은 23명이었다.
권익위, 법 위반 의혹 ‘국회의원 명단’ 무단 파기 가능성 제기
그런데 권익위는 검찰에 엉뚱한 답변을 보냈다. “2018년 해외출장 전수조사 당시, 파악한 국회의원 관련 자료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 국회의원 23명의 비리 의혹을 조사한 중대한 정부기록물을 무단 폐기했거나 분실했다는 이야기다. “해당 자료를 파기한 것이냐”는 뉴스타파 기자의 질문에 권익위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23명의 명단은 어디에 있을까. 2018년 당시 권익위가 의원 명단과 서면 조사 자료를 국회의장에게 보낸 사실에 주목했다. 혹시 국회에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을까. 그런데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국회에도 자료 부존재, ‘밀봉한 친전(親展)’ 형태로 전달
국회에 의원 명단 등 자료는 없었다. 당시 권익위는 공식적인 문서수발 절차에 따라 국회의장에게 의원 명단 등 자료를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검찰의 각하 결정문에 적힌 표현에 따르면 ‘밀봉한 친전(親展)’ 형태로 전달했다. 즉 ‘국회의장만 친히 펴서 보라’며 사적인 편지 형식으로 조사 자료를 국회로 보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정부 문서수발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현재 국회에 남아있는 기록은 아무 것도 없다. 피감기관으로부터 수백만 원어치의 경비를 타내 해외출장을 다녀온 국회의원 23명의 명단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렇게 국가 기관이 아무런 공문서를 남기지 않고 주요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당시 권익위는 같은 비리를 저지른 정부 공직자 16명에 대해서만 수사 의뢰, 과태료 부과, 징계 등을 권고했다. 조사 대상에 포함된 국회의원 중 반성이나 사죄를 공식 표명한 이는 단 1명도 없다.
3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회의원들의 피감기관 해외출장 특혜 사건은 아무일 없이 조용히 잊혀지고 있다. 지난 4월 6일, 하승수 변호사는 검찰의 각하 결정에 불복해 항고장을 제출했다. 그는 항고장을 쓰면서 “피고발인들(국회의원 23명)의 범죄 혐의는 명백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