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풀리지 않는 의문들

2014년 12월 30일 15시 00분

충북 충주에 사는 박철(52) 씨는 20대 때부터 귀농을 꿈꿨다. 군인 시절 후임들이 만들어준 병영일기에도 그런 그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른 후반이나 마흔에는 어느 시골로 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
마흔 후반에 그는 꿈을 이뤘다. 경기도 안산에 살다 충북 충주로 이사와 고구마, 감자를 심으며 소박한 농촌 생활을 즐기던 어느 날. 그는 아내와 함께 ‘숲해설가 과정’을 이수했다. 숲해설가 수료증을 받은 2009년 6월 27일 그는 아내와 함께 회식 자리에 참석한다.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고3 수험생인 아들을 마중 나갔다. 술을 마신 박 씨 대신 술을 마시지 않은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아들을 만나기로 한 장소에 거의 다 왔을 때 쯤, 박 씨는 저 멀리 아들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아내가 순간 브레이크를 밟으며 “아이, 깜짝이야”라고 말했다. 경찰의 음주 단속이었다. 아내가 운전하던 차는 2차선을 주행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갑자기 다가와 차를 멈춰 세우자 아내가 놀란 것이다. 당시 그 도로는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았다. 밤 10시가 훌쩍 넘어 사방은 어두컴컴했다. 술에 다소 취해 있던 박 씨는 순간 화가 나 경찰에게 “야, 이 씹새끼야 뭐 하는 거야”라고 욕을 했다.
박 씨는 경찰에게 귀와 목덜미를 잡힌 채 바깥으로 끌려 나왔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본 아들은 차량 쪽으로 다가왔다. 박 씨와 경찰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박 씨는 경찰에게 왜 주행하는 차량 앞을 막고 갑자기 음주 단속을 하냐며 항의했고 경찰은 당연히 음주 단속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맞받아쳤다. 경찰을 막던 아들에게 ‘너도 체포할 수 있다’고 경찰은 말했다. 이 말에 더 흥분한 박 씨는 손을 치켜들며 경찰에게 항의했다.
이 때 한 경찰이 박 씨와 아내에게 수첩과 볼펜을 들고 다가온다. 경찰의 오른손이 박 씨의 오른손과 닿는가 싶더니 순간 경찰이 “아” 하는 비명과 함께 허리를 90도로 숙인다. 이 영상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있던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해”라고 말한다. 박 씨는 현장에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된다.
당시 경찰은 주행하는 차량을 갑자기 막아선 적도 없고 평상시와 같은 음주단속 중이었으며 박 씨를 끌어낸 것이 아니라 박 씨 스스로 차에서 내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첫 번째 기소 - 못 다한 이야기

박 씨는 이 사건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박 씨가 ‘경찰의 오른팔을 잡아 뒤로 비틀어 바닥에 넘어뜨렸다’고 밝혔다. 법원에서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에 처해졌다. 하지만 박 씨는 경찰에게 욕설을 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경찰의 팔을 잡아 뒤로 비튼 적은 없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한다.
지난 12월 19일 뉴스타파를 통해 방송된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에서 보도하지 못한 내용이 있다. 해당 경찰관은 이 사건이 정식 재판으로 넘어가자 법정 진술에서 검사가 “팔을 꺾이고 난 이후에 땅에 넘어졌나요?”라고 묻자 “넘어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답한다. (2010년 5월 26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증인신문조서)
그런데 이 진술은 경찰이 사건 당일 진술한 내용과는 다르다. 해당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당일인 2009년 6월 27일 지구대로 돌아와 “저의 오른팔을 잡아 뒤로 비틀어 땅에 넘어지는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오른팔에 약 10센티미터 정도 긁히는 상처를 입었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경찰이 넘어졌다는 점은 박 씨도 인정했다. 박 씨는 사건이 발생한 후 5일이 지난 2009년 7월 2일 경찰 조서에서 “갑자기 저의 팔을 잡고 있던 경찰관 중의 한 명이 ‘아야, 아야’라고 소리치며 바닥에 넘어졌습니다. 그러자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면서 목을 누르며 바닥에 주저앉히면서 미란다원칙을 고지하고 수갑을 뒤로 채워 경찰차에 타고 지구대로 갔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로 남아 있는 동영상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찰관이 넘어지는 장면이 없다. 허리가 90도 정도 숙여진 이후 박 씨를 체포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박 씨는 경찰이 넘어진 후 “이런 쇼까지 하느냐”고 말했다고 기억하지만 이런 음성 역시 동영상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 때문에 박 씨는 “경찰이 동영상을 조작(편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이 넘어졌다는 것은 넘어질 정도로 팔이 심하게 꺾였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텐데 경찰은 왜 진술은 번복한 것일까.

경찰은 넘어졌나, 안 넘어 졌나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건 당일의 진술이 사실에 가까울까, 아니면 1년 뒤의 진술이 진실에 가까울까.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당시 공소장에도 박 씨가 오른팔을 비틀어 경찰이 바닥에 넘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박 씨를 기소한 검사 역시 당시 사건을 다루면서 주요 증거인 동영상을 봤을 것이다. 취재진은 청주지검 충주지청에서 수원지검으로 인사 이동한 담당 검사를 직접 찾아가 봤다.
검사는 “한 해 다루는 사건도 많고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도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대답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며 취재진의 확인을 거부했다. 다시 청주지검 충주지청에 가서 확인을 요청했지만 해당 검사가 다른 지검으로 간 상태에서 확인해주기는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경찰이 사건 당일 넘어졌는지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박 씨가 주장하는 동영상 조작(편집) 여부를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박 씨는 “경찰이 팔이 꺾인 척 헐리우드 액션을 취하다 덤블링하듯 굴러 넘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취재진은 방송이 나가기 전 동영상 조작 여부도 밝혀내고 싶었다. 만약 경찰이 자신의 ‘오버 액션’을 감추기 위해 편집된 동영상을 법원에 제출했다면 이 사건은 경찰의 ‘증거 조작’ 사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IT전문가인 김인성 한양대 전 교수에 따르면 현재 상황에서는 원본이 있어야만 사본 동영상의 조작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원본으로 남아있어야 할 주요 증거자료인 동영상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검찰은 “경찰에게 넘겼다”고 주장하고, 경찰은 “받은 기억이 없다”며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증거가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두 번째 기소

박 씨는 대법원에서도 패소해 벌금 200만 원을 물었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 씨의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아내가 위증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아내 최옥자 씨는 ‘남편이 경찰의 팔을 꺾는 것을 보았냐’는 검사의 질문에 보지 못했다고 답했고, ‘그럼 경찰의 팔을 꺾지 않았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검찰은 이런 최 씨에게 위증을 했다며 징역 2년을 구형했다. 법원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1심 선고는 대법원까지 이어져 24년 동안 유치원 교사를 지냈던 최 씨는 교육공무원직에서 파면됐다.

세 번째 기소

2012년 12월 아내 최옥자 씨가 파면된 후 박 씨의 가족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아들은 머리 전체가 탈모되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도 끝나지 않았다.
박 씨는 아내의 항소심에서 증인을 자처해 진술했다. 그런데 진술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법원에서 나오는데 30분도 안 돼 검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위증 혐의로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전화였다.
검찰 직원은 박 씨에게 “검사님이 피의자 소환 통보를 하라고 법정에서 문자를 보냈다”고 전했다. 박 씨는 또다시 위증 혐의로 기소됐고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됐다. 검찰은 300만 원을 구형했는데 재판부는 박 씨가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다”며 200만 원을 더해 500만 원을 선고했다. 지금까지 진행된 사건은 여기까지다. 현재 청주지방법원에서 박 씨의 위증 여부를 묻는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음주운전 단속 그리고 그 사이에 경찰과 벌어지는 실랑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박 씨가 억울함을 참고 벌금을 내고 끝났다면 이 사건도 여느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금방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항명’의 대가는 처절했다. 법은 냉정했다. 검사들은 법정에서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박 씨와 아내를 위증 혐의로 기소 했다. 법정을 나선 지 30분도 안 돼 박 씨를 피의자로 소환 통보했다. 아내는 직장에서 파면됐다. 한 번 처벌을 받은 박 씨와 아내는 5년 동안 끊임 없이 소환되고 기소되고 선고 받았다. 경찰, 검찰, 법원의 ‘냉정한 법집행’ 끝에 한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박 씨는 경찰의 팔을 꺾었나

박 씨는 사건 초기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경찰의 팔을 꺾어 비튼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 남아있는 동영상은 경찰이 제출한 사본이어서 100%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국내의 모션 캡처 전문 기관인 ‘크레비쥬’라는 곳에 박 씨와 경찰의 행동에 대한 동작 감정을 의뢰했다. 크레비쥬 관계자는 박철 씨가 오른손을 이용해 경찰의 오른팔을 비튼다고 했을 때는 동영상과 같은 장면이 나오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봤다. 그래서 박철 씨가 왼손을 이용해 경찰의 오른팔을 비틀었다고 가정해 실험을 해봤다.
이 관계자는 박 씨가 경찰의 팔을 잡아 비틀었다면 힘의 이동에 따라 경찰의 손, 팔꿈치, 어깨 순서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동영상 속의 경찰은 어깨부터 돌아갔다고 분석했다. 동영상대로라면 경찰이 스스로 팔을 꺾은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