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 47일 만에 법원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비상계엄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고유의 통치 행위라는 주장보다, 윤 대통령이 국헌을 문란하게 하기 위한 ‘내란’의 죄를 범했다는 수사 결과에 더 무게를 두었다. 윤 대통령과 그의 극렬 지지자들은 비상계엄이 정당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헌정 체제는 굳건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수사 기관에 체포되고 구속된 헌정사 첫 현직 대통령이 됐다. 집권 2년 8개월 만에 구속 피의자 신분이 된 윤 대통령은 이제 양복 대신 수의를 입고 구속 수사를 받게 된다.
법원, ‘증거인멸 우려’로 尹 구속 결정
서울서부지법은 19일 오전 2시 50분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장 심리를 맡은 차은경 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윤 대통령은 직접 출석하지 않을 거란 예상을 깨고 전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변호사들과 함께 직접 출석했다. 체포되어 서울구치소에 머물고 있던 윤 대통령은 오후 1시 26분쯤,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출발해 오후 1시 54분쯤 도착했다.
서울서부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호송 차량.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서부지법 앞 도로를 점거하고 ‘구속 반대’를 외쳤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탄 법무부 호송 차량과 경호 차량이 지나가자 차량으로 뛰어들거나, 차도를 이용해 서부지법 방향으로 우루루 몰려가기도 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진행되는 동안 담장을 넘어 서부지법으로 진입하려던 지지자들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기까지 했다. 이들은 현장에 있던 뉴스타파 취재진의 이동을 방해하고, 촬영 장비를 탈취하려는 등의 위협도 가했다.
윤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은 오후 2시부터 6시 50분까지 약 4시간 50분간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구속 심사에서 직접 약 40분 동안 발언하고 마지막 5분 동안 마무리 발언도 했다.
법원은 피의자 심문이 끝난 후 8시간 동안 더 심사를 이어간 뒤 새벽 2시 50분께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윤 대통령 구속영장 심사에 걸린 시간은 약 13시간이었다.
공수처 수사 불응하다 구속된 尹
앞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지난 15일 경찰과 함께 한남동 관저에 머물던 윤 대통령을 전격 체포했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이후 수사에 착수한 공수처로부터 세 차례 출석 요구를 받았지만 모두 불응했다. 이에 공수처는 서부지법을 통해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고, 두 차례 시도 끝에 영장 집행에 성공했다.
윤 대통령은 체포돼 공수처로 압송되는 도중 발표한 영상 메시지를 통해 ‘공수처의 수사를 인정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첫 조사에선 ‘내가 나와서 (경찰과 경호처 간) 유혈사태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라거나, ‘계엄은 헌법적 권한’이라는 등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을 조사하기 위해 200쪽 분량의 질문지를 준비했으나,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체포 당일 저녁 서울구치소로 들어간 뒤, 조사 이틀째와 3일째에는 소환 조사를 거부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했는데, 결과적으로 본인이 부정한 공수처 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됐다. ‘공수처가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 것이 불법이고 무효’라며, 중앙지법에 체포의 적부(적합 혹은 부적합)를 가려달라고 했지만 법원은 윤 대통령이 낸 적부심을 기각했다. 서부지법의 영장 발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사에 탄력이 더해진 공수처는 지난 17일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서부지법에 청구했고, 서부지법은 18일 구속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뒤 19일 새벽, 영장을 발부했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수사기관에 체포된 데 이어 구속 수감까지 된 불명예를 입게 됐다. 민주화를 이룩한 국가에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고 구속되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다.
우리 헌법은 현직 대통령에게는 불소추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그 예외가 되는 범죄가 내란과 외환의 범죄인데, 윤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가 바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다.
법원의 영장 발부로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도 법적 정당성을 한 차례 더 확보하게 됐다.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한 소명도 일정 부분 이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법부의 연이은 ‘체포영장 발부’, ‘영장 이의신청 기각’, 체포적부심 기각’, ‘구속영장 발부’로, “공수처에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거나,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판,검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등의 윤 대통령 측 주장 또한 설 자리를 잃게 됐다.
법원 유리창 깨고 외벽 부순 尹 지지자들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흥분한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영장 판사를 찾아야 한다며 유리창을 깨고 서부지법에 난입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지지자들은 이날 낮부터 서부지법 인근 도로를 점거하고 법원 담장을 넘는 등 극단적 모습을 보이다가, 끝내 윤 대통령이 구속되자 법원 일대를 무법 천지로 만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자가 서부지법 청사에 난입해 발로 기물을 파손하고 있다.
이들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공수처 수사관들이 탄 차량을 에워싸고 차량을 파손했다. 영장이 발부된 후에는 폭도로 변해 법원 유리창을 깨부수고, 단체로 법원에 진입해 청사 내부 각종 기물을 파손했다. 경찰을 향해 소화기를 난사하거나 청사 외벽을 파손하기까지 했다. 헌법 기관인 법원을 습격하고 난동을 부리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심각한 범죄 행위다. 결국 45명이 건조물 침입 등 혐의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지가 소화기를 던져 서부지법 건물 유리창을 깨고 있다.
윤 대통령 본인 또한, 구속영장 발부 후에도 계속 사법 체계를 부정하며 반격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각종 법기술을 활용해 12.3 비상계엄 사태의 정당성을 주장해 온 윤 대통령 측은 구속적부심을 청구하는 등 혐의를 부인하고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메시지를 계속 낼 전망이다.
구속 기간 20일…친정 검찰 수사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계속 작동하는 한, 윤 대통령에 대한 법적 단죄는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영장 발부로 ‘구속 피의자’ 신분이 된 윤 대통령은 기존에는 양복 차림으로 서울구치소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미결수 신분으로 신체검사를 받은 뒤, 미결수용 수의를 입게 된다.
이제 윤 대통령은 구속 상태로 공수처의 수사를 받게 된다. 윤 대통령의 최장 구속 기간은 20일이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의 수사를 받은 뒤 친정인 검찰의 수사도 받게 될 전망이다. 앞서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면서 공수처와 검찰은 피의자의 구속 기간을 최대 20일로 정하고 절반씩 나누어 쓰기로 협의한 바 있다.
이에 공수처가 먼저 윤 대통령을 일정 기간 수사하다가 검찰에 사건을 이첩할 예정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권은 검찰만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넘겨 받으면 보강 수사를 통해 윤 대통령을 기소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