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언론과 에너지 공공기관의 '돈 룩 업'

2022년 08월 09일 17시 30분

▲ 2019년 4월 24일 자 머니투데이 보도 <과감한 탈석탄, 미세먼지 저감효과 보인다>
2019년 4월 24일 자 머니투데이 보도 <과감한 탈석탄, 미세먼지 저감효과 보인다>(온라인판 <'미세먼지 또다시 '나쁨' 해결 방법은 '이것'>)입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석탄발전 감축 정책이 미세물질 배출을 감소시키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는 내용입니다. 
1년 뒤 같은 매체, 같은 기자는 이런 보도를 냈습니다. 제목은 <과감한 탈석탄, 청구서는 전기료 인상>( 2020년 5월 8일), '과감한 탈석탄'이라는 같은 제목을 갖고 있지만 결론은 딴판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석탄 및 원자력 발전 감축 정책이 전기 요금을 인상시킬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두 보도는 동일하게 문재인정부의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2034년)' 수립 과정에 나온 사회적 논의를 다루고 있지만 한 사안을 두고 마치 다른 매체, 다른 사람이 쓴 기사처럼 관점이 엇갈립니다.
▲ 2018년 9월 29일 자 세계일보의 사설 <재생에너지 확대, 일방 과속하면 후유증 커질 것>
2018년 9월 29일 자 세계일보의 사설 <재생에너지 확대, 일방 과속하면 후유증 커질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 그리고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원전이 안전하고 깨끗한 전력 공급원이라는 사실을 굳이 외면'해 가면서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일방 과속'을 하게 되면 '후유증과 후폭풍을 키울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언론이 정부 정책을 견제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단, 진정에서 우러나온 일관된 논조라면 말이죠. 사설이 나가고 한 달 뒤인 2018년 10월 25일, 이 신문은 한 면을 털어 태양광 설비의 효과를 홍보하는 기사를 쏟아냅니다. 기사의 제목은 다소 낯뜨겁습니다. <기름값 부담 줄고 환경도 보호..."마을이 달라졌어요">, <논밭 위 태양광 설비...부지난 덜고 농가소득 '일석이조'>, <태양광이 효자...전기료 걱정 없이 온수 써요>. 한달 전만해도 우리나라 사정에 맞지 않다던 태양광 발전은 어느새 효자 전력원으로 변했습니다.
▲ 2018년 10월 25일 자, 세계일보 <태양광이 효자...전기료 걱정 없이 온수 써요>
▲ 2018년 10월 25일자 중앙일보 보도 <수상 태양광 7조 사업...패널로 저수지 덮어도 괜찮을까>
또 다른 사례입니다. 이번엔 조금 섬뜩합니다. 2018년 10월 25일자 중앙일보 보도 <수상 태양광 7조 사업...패널로 저수지 덮어도 괜찮을까>입니다. 해외 사례와 국내 연구기관 연구 결과를 인용해, 수상 태양광 사업이 녹조를 유발하고 카드뮴 등의 중금속을 수중에 배출해 수질 오염을 시킬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수상 태양광 사업이 '과속 행정', '일방통행식' 사업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습니다. 
한 달 뒤, 이 신문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고 있다며 기사를 싣습니다. 제목은 <태양광 패널에 발암물질? 카드뮴 함유 미국산 수입 금지, 국산엔 포함 안 돼>, 제목 하단에는 '재생에너지 오해와 진실'이라는 부제가 달렸습니다. 
기사는 태양광 패널에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잘못된 정보'가 퍼져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사업이 차질을 겪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태양광 패널에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소문은 잘못된 정보라며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카드뮴이 포함된 미국산 태양전지 모듈은 국내 수입이 금지돼 있고, 특히 수상 태양광용 모듈에는 미량의 납 같은 최소한의 중금속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수상 태양광 발전이 녹조 현상을 유발한다는 일각의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해외와 국내의 환경 차이나 시설의 차이를 간과한 주장이라는 겁니다. 
잠시만요, 이 낯익은 '잘못된 정보'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요? 설마 한 달 전 중앙일보 자신이 낸 기사를 잘못된 정보라고 부른 것은 아니겠지요? 

오락가락 논조, 독자만 모르는 에너지 보도 협찬 실태

기후 위기와 에너지 믹스(전력원 비중),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공론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정보도 많고, 내용도 쉽지 않습니다. 언론의 정확한 정보 전달, 그리고 상업적·정파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진지하게 이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앞서 보셨다시피, 우리 언론의 현실은 이런 무게감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루아침에 논조를 바꿔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거나, 때론 '유체이탈'을 떠올리게 만드는 기묘한 화법으로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합니다. 
수많은 에너지 관련 보도 가운데, 세 언론의 사례를 꼽은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친원전과 탈원전, 재생에너지 효용론과 무용론을 오가는 이들 언론의 오락가락 논조 이면에는 독자들만 모르고 있는 '뒷광고'가 있습니다. 흔히 기사형 광고라고 합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기사 가운데 머니투데이 사례의  첫번째 기사, 세계일보와 중앙일보 사례의 두 번째 기사는 에너지 공공기관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하 '에너지문화재단')의 협찬으로 작성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한동안 인터넷 인플루언서들의 뒷광고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광고사의 협찬 사실을 숨긴 채 자신의 주관을 담은 것처럼 콘텐츠를 제작을 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일입니다. 일의 경중을 따지자면, 무슨 상품을 살지 결정하는 일과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할 선택을 하는 일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에너지 정책을 논하는 공론장까지 광고형 기사를 끌어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뉴스타파는 2014년 이래 돈을 받아 가며 이른바 '에너지 마피아'의 주장을 여과 없이 실어주는 언론계의 문제를 다뤄오고 있습니다. 
▲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나온 '설립목적'. 
문제는 언론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앞선 보도 사례들에 협찬한 기관은 에너지문화재단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공공 기관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당초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었던 이름을 현재의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 기관의 수입 대부분은 전력산업기반기금, 즉 우리가 내는 전기 요금의 3.7%는 떼어 조성한 공적 기금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낸 전기 요금이 오히려 에너지 정책 공론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데 쓰이는 것 아닌지 의문입니다. 

한 글자에 4만 원...비판 여론에 쥐여 주는 '당근'?

취재진은 최근 5년간 에너지문화재단이 언론에 협찬한 기사 목록, 협찬 금액 일체를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총 16개 언론사에서 52건의 협찬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협찬 금액은 총 7억 2천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기사 한 건당 무려 1,400만 원가량이 지급된 셈입니다. 언론사 별로는 중앙일보(1억 3,500만 원), 경향신문(9,000만 원), 조선일보(7,500만 원), 매일경제(5,880만 원), 동아일보(5,500만 원) 순으로 협찬 금액이 많았습니다.   
▲ 뉴스타파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최근 5년간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언론 협찬 금액'
건당 1,400만 원짜리 기사의 면면은 어떨까요. 언론사 기자가 직접 주도하고 발로 뛰며 작성한 기획성 기사는 9건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43건은 에너지문화재단이 주선한 토론회나 인터뷰를 정리·요약하거나 에너지 관련 정부 시책을 알리는 단순 홍보성 기사였습니다. 몇몇 기사는 놀라운 가성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토론회 현장을 스케치한 조선일보의 한 스트레이트 기사는 협찬 금액 3,0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 돈을 기사의 글자 수로 나눠봤더니 한 글자 당 4만 원어치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앞서 이 같은 협찬 기사를 에둘러 '뒷광고'라고 말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52건 협찬 기사들 가운데 기사에서 협찬으로 작성된 사실이 고지된 기사는 10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이  협찬 고지들도 신경 써서 찾지 않는다면 알기 힘든 곳에 위치하거나, 일부는 신문 지면에만 포함하고 인터넷판에 누락하는 등 전체적으로 부실한 상태였습니다. 독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오락가락 논조의 광고기사를 접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이 같은 언론 협찬이 기관의 설립 목적대로 '에너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 증진을 도모'하는데 기여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에너지 믹스 정책을 놓고 벌어졌던 보수 언론과 문재인 정부의 갈등을 생각하면, 효과보다는 공론장의 혼란만 부추긴 측면이 클 것 같습니다.
뉴스 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분석해 보니, 지난 5년간 이른바 '조중동' 3개 보수신문은 사설을 통해 '태양광', '재생에너지', '탈원전' 등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믹스 정책을 134차례 비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단순히 사설 제목으로만 추려봤을 때 그렇고, 실제는 더 많습니다. 살펴보았듯, 공교롭게도 에너지문화재단의의 협찬 금액은 오히려 보수신문 쪽에 편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사 자체의 홍보 효과보다는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당근'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요.

기후 위기, 에너지 문제에 짖지 않는 감시견

앞선 뉴스타파의 보도들을 따라오셨다면 의아한 생각이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에너지 공공기관들이 친원전 홍보에 앞장섰습니다. 이들 공공기관의 무분별한 홍보 활동으로 인해 미디어에서 '안전하고 깨끗한 원자력'이라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던 시기입니다. 이번 보도를 통해 드러난 지난 5년 에너지 공공기관 홍보 활동은 정반대의 양상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기관명이 바뀌고, 정부 기조에 맞춰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여론을 만드는데 주력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다시 친원전 기조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금, 에너지 공공기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에너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 보급·확산'하겠다는 기관의 설립 목적은 정치 환경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걸까요?   '당근'이라면 마다않고 받아 쥐는 언론도 문제입니다. 돈에 따라 쉽게 바뀌는 논조라면, 누군가 더 큰 돈을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논조는 또다시 변하는 걸까요? 
이와 관련해 에너지문화재단 측은 "정부광고법에 따라 정부광고 통합지원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으며 언론 매체 선정 시에는 에너지 정보에 대한 관심도와 예산을 고려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언론 보도 방향과 기사 내용에 대해서는 기관이 관여하지 않으며, 협찬 금액은 언론사와의 협의에 따라 정해진다"라고 전했습니다. 
▲ 영화 '돈 룩 업' 중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공적 기관이 공론을 올바른 방향을 선도하지 않고 결국 공익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자기 이해에 치중하는 모습"이라며 "협찬이라는 마약 속에서 언론이 이런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공공성을 잃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에너지 문제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 정책 결정인 만큼,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희망이 우선 공론장에 담보될 수 있도록 언론이 역할해야 한다"라고 조언했습니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믹스라는 과제 앞에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미지의 답을 찾아야 합니다. 찬성도, 반대도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공론장이 이런저런 이해관계 속에 오염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 속에 우리 사회의 감시견, 언론은 눈앞의 이익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입니다. 다가오는 행성을 뻔히 머리 위에 두고도 허례허식과 돈벌이에 매달리느라 종말을 피하지 못한다는, 어느 영화 속 장면이 겹쳐 보입니다. 
제작진
디자인정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