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적폐추적② 경인여대, 이승만 석상 실종 사건
2017년 08월 21일 20시 50분
지난해 8월 뉴스타파의 <사학적폐추적② 경인여대, 이승만 석상 실종 사건> 보도와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1월 중순 경인여자대학교에 대한 조사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논란의 당사자인 김길자 총장(대한민국사랑회 회장)과 백창기 재단이사장(대한민국사랑회 회원) 부부는 권익위 조사를 전후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경인여대 측은 대한민국사랑회가 교직원들에게서 걷었던 회비를 돌려주고, 이승만 석상 제작에 들어간 학생들의 돈과 대한민국사랑회에 기부된 학교 바자회 수입 등 수천만 원을 각각 학생경비와 교비로 원상복구하는 등 문제가 된 사안들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인여대 내부 구성원들은 이같은 조치들이 ‘꼼수’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김길자 총장 후임으로 그의 수족이나 다름 없는 현 재단 이사이며 과거 총장을 역임했던 류화선 전 파주시장이 선임됐기 때문이다. 또 대한민국사랑회 회비 등을 돌려준 것 역시 정부 감사를 앞두고 문제의 소지를 없애려는 의도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
뉴스타파는 지난해 8월 21일, 경인여대가 총장이 회장으로 있는 민간단체인 ‘대한민국사랑회’에 수 년간 반강제적으로 교직원들의 모금을 독려하고, 학생들의 바자회 수익금도 학생회 동의 없이 대한민국사랑회에 기부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학생들이 총학생회에 낸 학생경비를 대한민국사랑회가 추진하는 이승만 석상 건립 비용에 사용하고, 타종교를 믿는 학생들에게까지 기독교 세례를 강요했다고도 지적했다. 대한민국사랑회는 건국절 제정과 이승만 석상 건립 운동을 벌이는 단체로, 김길자 전 총장이 회장을,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와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 보수인사들이 이사를 맡고 있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대한민국사랑회 회장인 김길자 총장은 지난해 12월 말 총장직에서 사퇴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취임 1년 10개월 만에,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둔 상태에서 물러난 것이다. 이어 지난 1월 말 김 전 총장의 남편이자 경인여대 설립자인 백창기 이사장도 사퇴했다. 김 총장 부부는 재단 이사직에서도 모두 물러났다. 현재 이사장 자리는 김 전 총장의 은사인 오인탁 이사(대한민국사랑회 회원)가 이어 받았다.
학교 측이 교직원들을 압박해 대한민국사랑회에 반강제적으로 내도록 했던 회비도 지난 12월 초 교직원들 계좌를 통해 일일이 환급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 측은 “대한민국사랑회가 이승만 석상을 세우기 위해 총학생회로부터 받았던 학생경비 1천만 원을 다시 학생경비 계좌로 반납하고, 대한민국사랑회에 기부됐던 교내 바자회 수익금, 대학 교회 헌금 등 3천만 원도 최근 교비계좌에 입금했다”며 “뉴스타파 보도에서 지적된 비용 대부분이 원상복귀 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해 8월 뉴스타파 취재 당시 학교 측은 대한민국사랑회 회비 모금에 전혀 강요가 없었으며, 이승만 석상 건립에 쓰인 학생경비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모든 것이 적법하고 자율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해 놓고는 총장과 이사장 부부가 사퇴하고, 보도에게 지적한 비용들을 일일이 반납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 구성원들은 이같은 조치들이 정부기관의 감사를 의식해 사태를 미리 봉합하기 위한 말 그대로 ‘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지난해 말 교육부와 국민권익위 등에는 뉴스타파 보도와 관련한 제보가 접수됐고 권익위는 지난 1월 중순 경 경인여대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권익위는 교비에서 부당하게 지출한 이사회 회비와 학교에서 부당하게 처리한 학생경비, 그리고 대한민국사랑회 회비와 기부금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것으로 전해졌다. 권익위 조사 결과는 현재 경찰청과 교육부로 이첩된 상태다.
경인여대 한 교직원은 “지난해 12월 초 정부기관이 감사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학교 측에서는 뉴스타파 보도에 언급된 ‘기독교 세례 강요’ 관련 자료들을 지우라고 지시했고, 그에 따라 실제로 모든 학생기록부 양식에 있었던 기독교 세례 여부 기입란 자체를 없애버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직원은 “지난해 12월 초 대한민국사랑회에서 갑자기 그동안 교직원들로부터 걷었던 회비를 모두 돌려주겠다며 계좌번호를 제출하라고 하더라. 역시 감사가 실시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온 직후였다”고 전했다.
회비를 돌려받은 한 교수도 “종전에 대한민국사랑회에 기부됐던 돈이 원래 교비계정에 있어야 할 돈이었음을 학교 측이 스스로 인정한 셈이므로, 이는 김길자 전 총장이 명백히 교비를 횡령했다는 의미가 된다”면서 “마땅히 징계와 처벌의 대상인 김 전 총장이 사과 한 마디 없이 훌쩍 사퇴하고 자신이 회장인 단체로 들어갔던 학교와 구성원들의 돈을 슬쩍 돌려준 것은 감사를 앞두고 증거를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교직원들에게 감사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던 것은 교육부 등 정부기관 감사가 아닌 통상적인 학교 자체 감사를 언급한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대비하자는 취지였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히고, “학생기록부 양식에서 기독교 세례 여부 기입란을 삭제한 것도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 차원의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학교 측은 또 “총장 부부가 물러난 것은 건강상 문제로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인 다른 이유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사랑회에 기부됐던 학교 교회 헌금과 바자회 기금 등이 왜 교비로 환급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해당 단체 측에 문의할 사항이며, 학교로서는 대한민국사랑회 측이 해당 기부금을 더이상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없어 돌려준 것으로만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사랑회는 여전히 이승만 석상 건립 기금을 모금을 계속하고 있다. 목적 사업을 중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걷었던 회비와 기부금을 굳이 돌려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취재진은 회비와 기부금 반납 이유와 총 비용 등을 묻기 위해 대한민국사랑회 회장인 김길자 전 총장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김 전 총장은 “대답할 이유가 없다. 뉴스타파가 뭔데 자꾸 이 문제를 파고드는 것이냐”고 불쾌감을 표시하며 전화를 끊어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교육청소년위원회 소속 손영실 변호사는 “대학 총장이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단체에 회비를 내라고 권유하거나, 교직원들이 인사상 불이익 등을 우려해 반강제적으로 돈을 냈다면 강요죄에 해당될 소지가 있다”며 “회비를 선제적으로 반납하면 향후 법적으로 문제가 됐을 때 참작 사유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 조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길자 전 총장의 사퇴가 ‘꼼수’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 1월 말 경인여대 재단이 후임 총장으로 김 전 총장과 함께 교내 이승만 석상 건립을 추진했던 류화선 현 재단 이사를 선임했기 때문이다. 류 총장은 이달 28일 취임식을 갖고 2020년 2월까지 총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오인탁 경인여대 재단 이사장은 “김 전 총장이 후임으로 류 이사를 추천했고, 이사회에서는 크게 반대할 만한 사유가 없어 승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류 총장 선임은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 지난 2013년 1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경인여대 총장을 역임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류 총장은 당시 재임기간 중 명예총장을 맡고 있던 김길자 전 총장의 지시에 따라 이승만 석상 건립을 추진했다. 대한민국사랑회 행사에 학생들을 강제 동원하고 교내 바자회 수익금을 대한민국사랑회에 기부하는 등의 문제들도 모두 류 총장 재임시절 있었던 일이다. 결국 경인여대 문제에 책임이 있는 핵심 당사자가 다시 총장으로 돌아온 셈이다.
실제로 경인여대 한 교수는 “류 총장은 과거 김길자 명예총장의 ‘바지총장’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김길자 전 총장이 자기 뜻대로 학교를 움직여갈 수 있는 인물을 후임류 총장의 복귀와 함께 과거 총장 재임 시절의 성희롱 발언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2013년 류 총장이 학교 로고 디자인 제작과정에서 여러 교직원들 앞에서 “학교 로고의 동그라미 부분이 왜 이렇게 크냐, 꼭 미친0 00 같이 보이게 말야”라는 표현을 수 차례 반복했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당시 현장에 있던 복수의 학교 관계자들에게 문제의 발언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한 관계자는 “여성이 수치스러울 수 있는 표현들이어서 상당히 당황스럽고 민망했지만 그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취재진은 류 총장에게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고자 수 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지만 그는 회신하지 않았다.
류 총장은 학교 밖에서도 막말 논란에 휩싸였던 경력이 있다. 지난 2015년 12월 경인여대 총장을 중도에 사임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그는, 새누리당 예비후보 시절인 2016년 2월 한 여성 당원에게 안심번호로 전화를 걸어 지지를 호소한 뒤 통화가 끊기지 않은 상태에서 독백 형태로 욕설을 쏟아냈다가 물의를 빚었다. 이로 인해 새누리당에서 ‘탈당 권유’의 중징계를 받고 공천에서 탈락했으며,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아래는 당시 문제가 됐던 류 총장의 발언 내용이다.
개 같은 X, 아이 씨, 별 거지 같은 X한테 걸렸네. 에이, 거지 같은 X... 에이 이 더러운 걸 내가 왜 하려고 그러는지. 아휴, 내가 어떻게 생각하면 떨어지는 게 나을 것 같다. 아휴 지겹다 지겨워.
경인여대 한 교수는 “막말 파문으로 새누리당에서 공천조차 받지 못한 사람을 지식인을 대표하는 대학 총장 자리에 앉힌다는 것은 누가봐도 웃음거리”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교수는 “김길자 전 총장이 추천한 인물이 별다른 검증 없이 후임으로 임명된 것은 재단과 학교가 여전히 김 전 총장 손아귀에 있다는 뜻”이라며 “김 전 총장 측근으로 구성된 재단 이사 전원이 경인여대 사태에 책임지고 물러나야 학교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경인여대 재단 이사회는 8명의 이사진 중 김길자 전 총장 부부와 고영주 전 이사의 사퇴에 따라 5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 모두가 김 전 총장 부부의 은사와 친구 등 지인들로 구성돼 있다.
류 총장의 취임을 반기지 않는 것은 학생과 동문들도 마찬가지다. 한 졸업생은 “총장 하다가 국회의원 출마한다고 학교를 떠났던 사람을 다시 데려오는 것도 우습고, 김길자 전 총장 뜻대로 움직이던 사람을 총장 자리에 앉힌 것도 의도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재학생은 “이승만 추종하던 총장이 마지못해 물러나니 막말 총장이 돌아온 셈”이라며 “학교가 전혀 반성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류 총장이 평소 말투가 거칠긴 하지만 학교 행정에 관한 한 대단히 투명하고 추진력을 가진 분”이라며 “재단에서도 류 총장이 학교 사정에 밝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학교를 안정화시킬 적임자로 판단해 선임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오인탁 경인여대 재단 이사장도 “시일이 촉박해 류 총장의 과거 성희롱 발언과 막말 등의 행적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지는 못했으나, 파주시장까지 지낸 이력 등을 봤을 때 행정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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