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이 현직 국회의장을 체포하기 위해 이른바 ‘체포조’를 가동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계엄군의 국회의장 공관 투입을 적어도 3주 전에 인지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포착됐다. 뉴스타파는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된 4일 새벽 용산 한남동 소재 국회의장 공관 인근을 촬영했다. 촬영된 영상에는 계엄군이 한남동 공관 주변에 배치된 사실을 경찰이 이미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세 가지 정황이 담겨 있다. 만약 경찰이 계엄군의 활동을 묵인하거나 방조한 것이라면, 국회 주요 요인들에 대한 ‘체포 작전’에 가담한 의혹을 받게 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4일 새벽, 국회의장 공관 앞에 잠복 중이던 계엄군을 뉴스타파가 포착했다. 이들 군인은 이른바 '국회의장 체포조'로 투입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회의장 체포조 의혹, 경찰 사전 인지 정황 드러나
앞서 국회사무처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용산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 앞을 찍은 CCTV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은 4일 오전 1시 42분부터 오전 4시 45분까지의 영상기록 중 일부다. 이중,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가 의결된 이후인 1시 50분경 찍힌 영상을 보면, 군인 10여명이 국회의장 공관 앞에 집결한 모습이 나온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의결을 무시하고 시간을 끌며 계엄 해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뉴스타파는 그로부터 약 1시간 반 뒤인 4일 새벽 3시 20분경 국회의장 공관 앞에 잠복해 있던 군인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당시 취재진은 공관 정문과 불과 수십미터 떨어진 차량들 사이에 매복해 있던 군인들을 발견하고 영상에 담았다. 이들은 따로 소총을 휴대하지 않았지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서로 거리를 두고 경계하듯 서 있었다. 군장으로 보이는 군용 배낭을 멘 군인과도 대면했다. 이들은 소속 부대가 어디인지 왜 한남동 공관에 출동했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의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이날 취재진은 국회의장 공관 앞에서 약 20여분 동안 취재를 진행했다. 그런데 오전 3시 37분경, 외부 차량 1대(레이)가 공관 정문으로 향했고, 이때 공관 내부에 있던 경찰이 정문 밖으로 나와 다른 길로 가도록 안내했다. 당시 체포조 의혹을 받던 군인들 외에 공관 내부를 경비하던 경찰의 모습이 영상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경찰이 계엄 당일 공관 주변에 배치된 계엄군을 사전에 인지할 수밖에 없던 첫 번째 정황이다.
지난 4일 새벽, 국회의장 공관 내부에 근무 중이던 경찰들. 어깨 부근에 경찰 소속임을 확인할 수 있는 상징이 보인다.
더구나 공관 앞에는 경찰이 운행하는 순찰차량 1대가 주차돼 있었다. 군인 여러명이 경찰 순찰차량 주변에 뭉쳐 있는 모습도 확인된다. 경찰이 계엄군 배치 사실을 몰랐을리 없다는 또다른 증거다.
결정적 증거는 또 있다. 이날 오전 3시 20분경 공관과 연결되는 도로 옆길엔, 정부 로고가 찍힌 중형승합차가 대기 중이었다. 공관으로 올라오려면 해당 승합차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이 차량은 행전안전부 소유의 관용차로 계엄 당일 경찰의 요청에 의해 출동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더불어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받은 행정안전부와 서울지방경찰청의 ‘현안 답변 자료’를 보면 계엄 당일, 경찰이 출동을 요청한 ‘문제의 승합차’는 ‘재난안전통신망 이동기지국’ 차량이었다. 대형 집회나 인파 밀집시 경찰이 추가 투입될 경우, 경찰 간부들의 무전 통신 지원 목적으로 운영되는 차량이다. 출동 기준을 보면, “기지국 파손 등으로 서비스가 일시 중단되거나 대규모 트래픽으로 특정 지역내 통신이 불안정한 경우”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그날 밤 해당 차량의 전원 및 통신회선은 연결되지 않은 상태였고, 결과적으로 이동기지국 차량은 아무런 작동 없이 국회의장 공관 인근(한강진역)에 대기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기지국의 과부하를 미리 대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정작 공관 주변엔 대규모 인파 대신 체포조 의혹을 받는 소수의 군인들만 잠복하고 있었다.
지난 4일 새벽, 경찰이 행정안전부에 요청해 출동시킨 이동기지국 차량. 대규모 인파 소요가 없었음에도 경찰은 해당 차량을 국회의장 공관 인근에 대기시켰다.
이렇듯 일반적인 통신이 두절되는 비상 상황에 대비한 차량을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이후, 국회의장 공관 근처에 배치한 이유는 여전히 의문이다. ‘2차 계엄’ 상황에 대비해 이동기지국을 미리 운용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하긴 어렵다.
국방부는 체포조 의혹 부인… 경찰 수사 공정성에도 의문
정리하면, 경찰은 계엄 당시 국회의장 공관에 투입된 경비 인력과 순찰차량, 그리고 의문의 이동기지국 차량 등을 통해 계엄군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경찰은 계엄 해제로부터 20일이 더 지난 26일에야 “체포조 의혹과 관련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4일 국회사무처가 ‘국회의장 체포조’ 의혹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찰은 군 방첩사령부와 함께 국회의원 체포조를 결성했다는 의혹도 함께 받고 있다. 군의 전방위적인 체포 작전에 가담했다면, 수사의 공정성에 당연히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국방부 역시 체포조 의혹을 받는 병력들에 대해 “계엄군이 아닌 수방사 예하 병력”이라며 “국회의장 공관 쪽에 투입된 게 아니라 관저 경계 강화를 위해 투입된 병력”이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날 밤’ 용산에서 누구의 지시로 정확히 어떤 계획이 실행됐는지 더욱 철저한 수사가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