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간 뉴스타파>는 '대북 송금' 사건 1심 판결문에 담긴 내용과 의미, 그리고 이 판결을 뒤집을 수도 있는 쌍방울 임원의 폭로 내용과 취재 비화를 자세하게 전한다. 뉴스타파는 지난달 초부터 이 사건의 실체를 추적해왔다. 그 과정에서 검찰 수사기록과 국정원 비밀 문건을 확보해 공개했다. 이어 지난주부터는 쌍방울 고위 임원의 구체적인 증언을 검증해서 보도하고 있다.
이화영 1심 판결문 200쪽(총 365쪽). 김성태 · 방용철· 안부수의 진술에 강한 신빙성을 부여하면서, 이들의 진술이 국가정보원 문건보다 더 믿을 만하다고 적었다.
판사가 믿었던 핵심 3인방 '김성태 · 방용철· 안부수'
수원지법은 지난 7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징역 9년 6개월에 벌금 2억 5천만 원의 중형을 선고했다. 뇌물과 정치자금법, 외국환거래법, 증거인멸 등 4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이 중 논란이 됐던 '대북 송금'은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항이다.
판사는 쌍방울 김성태 회장과 이화영 전 경기도평화부지사가 공모하여 북한에 800만 달러를 불법적으로 건넸다고 봤다. 이렇게 판단한 근거는 김성태(쌍방울 회장), 방용철(쌍방울 부회장), 안부수(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등 세 명의 법정 증언이었다. 판결문 곳곳에 '관련자들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들의 일치된 증언은 이번 판결의 결정적 증거가 됐다.
2020년 1월 31일자 국정원 보고서 1쪽. 쌍방울과 북한 정찰총국 대남요원 리호남이 공모해 주가 조작을 시도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br>
국가정보원 보고서보다 3인방의 '증언'을 더 신뢰
앞서 뉴스타파는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김성태 회장이 자사의 주가를 띄우기 위해 북한 측 인사와 사전에 모의했고, 이를 통해 발생할 수익금도 북측과 나누기로 했다는 첩보가 담긴 국가정보원 비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모두 45건에 이르는 문건에는 쌍방울이 대북 사업 호재를 이용해 주가 조작에 나섰고, 국정원이 그에 따른 대책까지 세웠던 사실이 들어있다.
이에 더해 뉴스타파는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씨가 지난해 비공개로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을 자세하게 전했다. 김 씨는 2019년 2월 1일에 2급 비밀 문건 '○○96○○ 종결 계획'을 작성했다. ○○96○○은 협조자 안부수를 뜻하고, 종결이란 표현은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의미다. 요원 김 씨는 자신이 협조자로 발탁한 안부수를 해고(종결)하면서 이 문건을 작성했다. 보고서 4쪽에는 종결 사유로 '○○96○○ 주변 인물(쌍방울 오너 김성태)의 주가 조작 및 국정원 연루 의혹 제기 가능성에 따른 사전 예방적 차원에서 종결(1.30.)'이라고 적었다. 요원 김 씨는 이미 당시에 쌍방울의 주가 조작 가능성을 파악했던 것이다.
이화영 1심 판결문 200쪽(총 218쪽). 판사가 쌍방울 주가 조작을 내용으로하는 국정원 문건(2020.1.31.)을 믿을 수 없는 이유를 적었다.
뿐만 아니라 2020년 1월 31일자 국정원 보고서에는 쌍방울의 '주가 조작'이 실제로 실행된 정황이 자세하게 나온다.
하지만 이화영 재판부는 '주가 조작'과 관련된 국정원 문건을 모두 배척했다. 이는 판사가 3인방의 진술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판사는 요원 김 씨가 법정에서 구체적으로 증언한 내용들은 판결문에 싣지 않았다. 예컨대 요원 김 씨는 2020년 1월 31일자 보고서에 대해 자신이 이 보고서를 만들진 않았지만 "쌍방울과 이호남의 주가 조작 공모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면서 "국정원 직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을 보고서에 담을 순 없다"고 증언한 사실이 있다.
이화영 재판부는 국가정보원 문건 45건 중 검찰의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극히 일부 문건만을 증거로 삼았다. 공소사실과 충돌하거나 오히려 반대되는 내용의 문건에 대해선 3인방의 진술이나 판사의 의견을 전제로 '믿기 어렵다'고 단정했다.
이화영 1심 판결문 200쪽(총 219쪽). 이화영 1심 판결문 200쪽(총 218쪽). 판사가 쌍방울 주가 조작을 내용으로하는 국정원 문건(2020.1.31.)을 믿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리호남이 자체적인 '대남공작'을 도모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적었다. 즉, 김성태와 리호남이 공모한 것이 아니라, 리호남 혼자서 주가 조작을 실행했을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쌍방울 임원 A씨의 증언 내용을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3인방 진술 뒤집고, 판결 흔드는 쌍방울 임원의 폭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판부는 3인방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하지만 뉴스타파는 이들의 진술 신빙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증언을 확보했다. 그 주인공은 대북 송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쌍방울그룹 고위 임원 A씨다.
A씨의 증언은 철저히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했으며, 구체적이고 정확했다. 또 다른 제보자인 안부수 아태협회장의 측근 B씨 그리고 B씨가 안부수의 딸과 나눈 SNS 대화도 A씨 증언과 일치한다.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룹 윗선의 지시를 받고 회삿돈으로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오피스텔을 얻어준 사실이 있으며, 수원지검에서 김성태 회장과 공범들이 수시로 만났다"고 폭로했다. 의혹만 무성하던 '진술 세미나'에 A씨 자신도 직접 참여했고, 핵심 증인인 안부수에게 쌍방울이 금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증인 매수' 의혹은 '진술 세미나' 정황과도 연결된다.
사건의 경과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① 2023년 1월 김성태 쌍방울 회장 체포 ② 같은 해 2월부터 수원지검 검사실에서 일명 '진술 세미나' 시작 ③ 이어서 쌍방울 임원이 안부수 회장의 딸과 측근 B씨를 접촉 ④ 그 결과 3월 31일 안부수 딸이 송파구 오피스텔로 이사 ⑤ 마침내 4월 안부수의 법정 증언 내용이 김성태와 같은 방향으로 변경됐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
'진술 세미나'와 '증인 매수' 정황은 복수의 증언과 물증으로 확인된다. 이에 따라 법원이 철썩같이 믿은 안부수 증언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쌍방울 소속 두 명(김성태, 방용철)의 증언에 한껏 힘을 실어준 안부수가 무너지면, 3인방 전체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화영 1심 판결에 대한 정당성과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