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경찰 수갑에 장애...무죄됐지만 보상은 막막

2015년 09월 02일 15시 00분

지난해 4월 한 장의 끔찍한 사진을 휴대전화 메시지로 받았다. 오른손이 퉁퉁 부은 채 붉은색 수포가 올라와 있었고 손목 부위는 무엇엔가 깊게 파인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구에 사는 김아무개(60) 씨가 경찰에 연행됐다가 부상을 당한 사진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진이었다. 이 사건은 원래 대구 지역에 있는 언론사에 먼저 제보가 됐다고 한다. 기자들의 첫 반응은 이랬다고 한다.
"특종감입니다. 아직도 이런 게 있습니까?"
하지만 지역 언론에 기사는 한 줄도 나가지 못했다. 변호사마저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다”며 변호를 꺼렸다고 한다. 이곳 저곳에 도움을 요청하던 김 씨의 아들은 급기야 정당까지 찾아간다. 하지만 큰 정당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들은 지금은 없어진 통합진보당까지 찾아가게 된다. 마침 비슷한 시기 대구지역 관변단체를 취재하다 알게 된 통합진보당 관계자를 통해 이 제보가 기자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다. 그때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찾고 찾다 도움받을 곳이 없으면 마지막으로 오게 되는 곳이 저흽니다."

지역 언론이 외면한 이야기<br>

사단은 2014년 2월 14일 저녁 김 씨가 술을 마신 후 벌어졌다. 김 씨는 동네 포장마차에서 동네 후배 이아무개 씨와 함께 저녁 식사 겸 술을 마신다. 당시 김 씨와 이 씨는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 씨가 김 씨의 가정 문제를 동네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고 다녔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던 중 이 씨의 다른 후배 2명이 동석하게 된다. 김 씨가 화장실에 갔다 오면 맥주잔은 채워져 있었다. 이 씨는 김 씨에게 “오늘 어디서 자냐”고 물었는데, 김 씨는 집에 간다고 말하고 실제는 포장마차 바로 옆에 있는 모텔에서 혼자 투숙한다. 김 씨는 혹시나 이 씨가 자신에게 해코지하지 않을까 싶어 이날 일부러 집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김 씨 아들에게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온다.
내 상태가 이상하다. 환청이 들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옆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한숨도 못 잤다. 빨리 대구에 와서 같이 병원 가고 경찰에 신고해라.
당시 아들은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이후 아들은 아버지 김 씨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김 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다른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이상한 소리를 하신다”고 말했다. 후배는 “걱정 말고 회사 일에 신경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날 퇴근길, 아들은 대구서부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김 씨가 경찰서에 있다는 것이다. 그 날 낮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 술에 탄 약

이날 오전 김 씨는 약에 취해 모텔 창문을 열고 술에 약을 탄 것 같다며 “이아무개를 잡아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소동에 놀란 모텔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과 119구조대가 출동했다. 경찰은 이 씨를 불러 김 씨가 있는 방 옆방으로 가게 한다. 이 씨와 대화를 하던 김 씨는 창문 커튼을 잡고 있다가 그만 아래로 떨어진다. 아래에는 다행히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다.
경찰과 119구조대는 김 씨를 데리고 병원에 간다. 김 씨는 병원에서 별다른 치료 없이 경찰로 연행된다. 치료를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경찰과 김 씨의 말이 서로 엇갈린다. 김 씨는 의사가 외관상 이상이 없다고 해서 병원을 나왔다고 하고, 경찰은 김 씨가 진료를 거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구서부경찰서는 김 씨에게 소변검사를 요구했다. 김 씨는 거부하지 않고 소변검사에 응한다. 자신이 스스로 술에 약을 탄 게 아니라 “나에게 약을 타 먹인 사람을 좀 밝혀 달라”는 차원이었다. 1차 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왔지만, 2차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고 김 씨는 필로폰 복용 혐의로 긴급체포된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모발검사에서도 음성반응이 나왔다.)
김 씨의 아들이 서부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김 씨는 뒤로 수갑을 차고 있었다. 김 씨는 유치장이 있는 대구성서경찰서로 이송됐고 김 씨의 아들은 김 씨가 호송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응급실에 실려간 아버지

이튿날 아침 아들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를 해보니 아버지가 대구가톨릭병원 응급실에 있다고 했다. 아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김 씨의 발은 침대에 묶여 있었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불을 젖혀보니 김 씨의 점퍼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양손은 수갑을 뒤로 찬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신음소리가 들렸다.
손, 손
수갑을 풀려고 했지만, 수갑이 너무 꽉 조여 있어 수갑키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수갑키가 부러지면 절단기로 잘라야 했다. 경찰 팀장이 부하 직원에게 경찰서에 가서 예비키를 들고 오라고 지시했다. 수갑을 푸는 데 수십분 넘게 걸렸다. 아들과 간호사 두 명이 김 씨가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부축하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두고두고 피눈물이 난다고 했다. 담당의사는 아들에게 “근육이 파열돼서 신장 쪽에 심각한 손상이 생겨 생명이 위험한 상태”라고 말했다.

수갑을 풀고 퉁퉁 붓기 시작한 손

수갑을 풀고 나서 손에 수포가 생기고 퉁퉁 붓기 시작했다. 김 씨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미 손을 치료하기엔 늦었다. 근육과 피부가 괴사하는 ‘구획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아 별다른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손도 손이었지만 척추까지 골절돼 척추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척추 수술은 왜 받은 것일까.
이 부분에서 다시 피해자 김 씨와 경찰의 주장이 엇갈린다. 김 씨는 성서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 경찰들이 허리를 눌러 제압하면서 척추가 골절됐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찰은 김 씨가 모텔에서 떨어질 당시 입은 부상이라고 주장한다.
김 씨는 성서경찰서 보호유치장에 혼자 갇힌다. 당시 유치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김 씨에게 특이사항이 없어 보인다. 난동을 부리는 모습도 확인할 수 없다. 경찰은 김 씨를 한 명만 가두는 보호유치실에 수감하려고 한다. 김 씨는 일반 유치실에 가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다 그 뒤로 정신을 잃는다.
▲ 김 씨가 대구성서경찰서 유치장으로 이송됐을 당시 CCTV. 김 씨는 뒤로 수갑을 차고 있었지만, 난동을 벌이는 정황은 확인할 수 없었다.
사단은 보호유치실에서 일어났다. 경찰은 김 씨를 엎드리게 한 채 양팔을 벌려 벽에 달린 고리에 수갑을 연결했다. 지난해 취재진과 만난 김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경찰이 급소를 눌러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며 “죽다 살아났다”고 말했다.
▲ 경찰은 김 씨의 엎드려 놓고 양팔을 벌린 채 수갑을 채워 놨다. 경찰은 사건 초기 CCTV를 공개하지 않고 버텼고, 김 씨는 결국 소송을 한 후에야 CCTV 영상을 받아냈다.
김 씨 주장에 따르면 김 씨가 수갑 때문에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 그때마다 서너 명 이상의 경찰이 와서 자신을 누르고 갔다고 한다.
경찰 측 주장대로 김 씨가 약물에 취해 난동을 부릴 수 있었다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김 씨를 엎드린 상태로 팔을 벌려 수갑을 채울 필요가 있었을까. 엎드린 채 팔을 벌려 수갑을 차고 있는 것만으로도 일반인은 고문으로 느낄 수 있다.
경찰이 수시로 와서 김 씨를 위에서 누르는 듯한 장면은 CCTV에서도 여러 차례 발견된다. 아래 사진을 보면 최소 4명의 경찰관이 김 씨를 못 움직이게 누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엎드려서 양팔을 벌려 수갑을 채운 사람을 또 제압해야 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 경찰이 김 씨의 양쪽 다리를 잡고 김 씨를 위에서 누르고 있는 듯한 모습.
경찰 측은 김 씨의 자해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김 씨는 너무 고통스러워 소리를 지를 때마다 경찰이 와서 자신을 위에서 눌렀다고 말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머리를 바닥에 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보호유치실 동영상은 약 2시간짜리인데 1시간 40분 정도가 흐른 후 김 씨는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간다. 응급실에 이송된 후에도 뒷수갑을 찬 채 12시간 이상 방치된 김 씨는 오른손에 구획증후군으로 7급 장애 판정을 받았고 척추 핀 삽입 수술까지 받게 됐다. 척추는 경찰 말대로 김 씨가 모텔에서 떨어지며 부상을 당한 것일 수도 있고, 김 씨의 주장대로 경찰이 보호유치실에서 수차례 눌러 생긴 부상일 수 있다. 그런데 경찰 주장대로 김 씨가 모텔에서 떨어지면서 척추가 골절됐다면, 경찰은 이미 척추가 골절된 사람을 위에서 수차례 눌러 부상을 가중시킨 셈이다.

경찰의 거짓말

기자는 취재 당시 유치장을 운영했던 성서경찰서 측에 왜 굳이 김 씨를 엎드리게 한 채 수갑을 채웠냐고 물었다. 천장을 바라보게 눕히고 수갑을 채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양팔을 벌린 채 수갑을 차고 있었다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엎드려서 수갑은 안 채운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어떤 보호 상태로 유치해둔 상태를 본인이 몸을 움직이고 과격하게 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일부러 경찰관이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본인이 몸을 과격하게 움직여서 엎드린 상태가 됐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기자 : 과장님 직을 걸고 엎드린 채로 수갑을 채운 적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나요?
경찰 : 그렇죠. 그렇죠. 당연하죠. 왜 사람을 엎드려서 수갑을 채웁니까.
그렇다. 왜 사람을 엎드려서 수갑을 채웠나.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 경찰은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경찰의 가혹 행위가 있었다면 공중파나 메이저에서 우리 경찰을 가만히 놔뒀겠습니까. 경찰이 가혹 행위 해서 사람을 병신 만들었다고 하면 얼마나 좋은 뉴스거립니까?

경찰은 왜 그랬을까

사건을 취재하면서 경찰들에게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이것이다.
김OO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압니까?
기자는 알고 있었다. 김 씨에게는 전과가 있었고 몇 차례 수감된 적도 있다. 경찰은 또 김 씨가 약물에 취해 김 씨가 ‘엄청난 괴력’을 행사했고 통제 불능의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처음 체포될 때부터 뒷수갑을 차고 있었는데 어떤 난동을 어떻게 부렸다는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공개된 CCTV 영상에서는 그런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오히려 김 씨 부자는 난동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대구 서부경찰서와 성서경찰서 사무실 내부와 이동 동선의 CCTV까지 공개하라고 했지만, 경찰은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김 씨가 과거 ‘유명했던’ 전과자라는 사실 때문에 선입견을 품고 김 씨를 거세게 제압했던 것은 아닐까.

보상은 누구에게 받아야 하나

1년 전 이야기를 지금 다시 하는 것은 최근 김 씨의 필로폰 복용 혐의에 대해 1심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판사 이용희)은 올해 7월 23일 김 씨의 필로폰 복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김 씨는 1차 소변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온 후 그냥 집에 돌아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저지했다.
법원은 “이 사건의 임의동행은 적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위법한 강제연행”이라며 “위법한 임의동행 상태에서 임의로 제출받은 소변을 검사해 얻어진 소변채취동의서와 시험성적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은 위법행위를 기초로 수집된 증거”라고 판결했다. 또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김 씨가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경찰이 1차 소변검사 후 김 씨가 원하는 대로 풀어줬더라면 김 씨가 영구 장애를 입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김 씨는 오른손으로 숟가락질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다.
▲ 현재 김씨의 오른손. 손목 윗부분 근육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물론 경찰 입장에서는 김 씨를 의심하고 조사를 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법원에서도 경찰의 강제연행은 위법행위라고 인정했다. 김 씨는 무죄를 받았지만, 장애를 입은 신체는 복구되지 않는다. 이 피해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김 씨는 당시 경찰들을 독직폭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1심과 2심 모두 패소하고 대법원 판결만 남겨두고 있다. 김 씨는 이미 병원비와 변호사비로 수천만 원을 날리고 영구 장애까지 입었지만, 법원은 경찰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국가와 경찰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은 현재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