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람 중사 사건 수사 실패 이유는 국방부의 제식구 감싸기"

2023년 02월 16일 20시 00분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낸 책 ‘권력과 안보’는 소위 ‘천공 의혹’으로 화제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는 무속인 ‘천공’이 지난해 대선 직후 대통령 관저 후보지와 국방부 영내를 휘젓고 다녔다는 의혹이었다.
하지만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재직 기간(2020년 12월~2022년 4월) 동안 매일 기록한 일기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은 따로 있다. 바로 부 전 대변인이 직접 목격한, 군 내에서 발생한 여러 죽음에 대한 얘기다. 부 전 대변인은 각기 다른 이유로 세상을 떠난 군인들의 이야기, 이 죽음들이 국방부에서 수사되고 처리된 과정을 꼼꼼히 기록했다. 특히 국방부 수사와 특검 수사로까지 이어진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관련 내용을 길고 자세하게 기록했다.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졌던 내용이 많았다. 부 전 대변인은 죽음을 기록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때론 '진짜 어떻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록으로 남기자. 그게 이 중사(고 이예람 중사)에 대한 예의다, 그리고 예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성폭력의 그늘...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2021년 5월 21일, 공군 부사관이었던 이예람 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추행 피해를 당한 지 81일 만이었다. 이 중사가 사망하기까지 군 수사기관은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가해자·피해자 분리가 즉시 이뤄지지 않았고, 수사는 무단으로 지연됐다. 부대 내에서 2차 가해를 당하던 이 중사는 타 부대로 전속됐지만 그곳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며칠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군 고 이예람 중사 사망 1주기를 하루 앞둔 2022년 5월 20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신옥철 공군참모총장이 고인의 영정에 경례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5월 31일 MBC 보도로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지면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방부 장관은 사건을 공군본부에서 국방부로 이관했다. 공군의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방부로 사건이 이관된 후에도 제대로 된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부 전 대변인은 이렇게 기록했다.
“솔직히 (국방부) 조사본부는 수사 의지가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사건이 이관되고 벌써 20일이 지나가는데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 2021년 6월 19일 (부승찬 저서 ‘권력과 안보’)
국방부 조사본부는 자신들이 결정해야 할 입건 여부조차도 수사심의위원회에 떠넘겼다. 수사의 공정성을 위해 만든 수사심의위가 사실상 군사경찰과 군검찰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조사본부의 방침은 한결같다. 무리하게 입건하면 나중에 자칫 자신들이 고소당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신중히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한다. 그간의 수사자료를 모두 검찰단으로 보낼테니 거기서 처리해 달라고 한다. 또한 자신들은 입건할 수 없으니 수사심의위에 보내 의견을 묻겠다고도 했다."
- 2021년 6월 16일 (부승찬 저서 ‘권력과 안보’)
초동 부실 수사 책임자로 지목된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에 대한 수사가 난항을 거듭했다는 내용도 책 곳곳에 나온다. 전익수 실장은 공군 수사 단계에서는 부실 수사와 허위 보고 혐의를, 사건이 국방부로 넘어간 뒤에는 담당 군검사에게 수사 내용이 잘못됐다고 추궁하는 등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전 실장은 현재 특검 기소로 재판을 받고 있다.
부 전 대변인은 책에 “누구나 핵심 관계자로 공군본부 전익수 실장과 공군참모차장를 꼽으”면서도 “J 실장을 실세로 여기는지 검찰단장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나서질 않았다”고 적었다.
“장관 주관으로 현안점검회의가 있었다. 수사심의위 분위기에 대한 법무과장의 설명이 있었다. 이어 내가 J 공군본부 법무실장에 대한 감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을 두고 총장이 어떤 지시를 했고, 법무실은 어떤 조치를 이행했는지에 대해 최소한의 감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감사관실은 수사 당사자에 대한 감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그런데 J 실장을 실세로 여기는지 검찰단장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나서질 않았다. 오히려 검찰단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2021년 6월 18일 (부승찬 저서 ‘권력과 안보’)
2022년 8월 24일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의 부실 초동수사 의혹 책임자로 지목된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서울 서대문구 특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출처 : 연합뉴스)
부 전 대변인은 “공군 법무실에 대한 국방부 수사가 잘 이루어졌는지”를 묻는 질문에 “국방부, 군검찰, 군판사 간에 형성된 '철옹성 같은' 권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수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법무, 군검찰 권력이 상당히 철옹성 같았다고 해야 될까요?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국방부, 군, 군검찰, 군판사가 다 인연이 있는 분들입니다. 사건을 사건으로 보지 못하고 인연으로 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식구 감싸기라는 언론의 비판도 많았고 국민적 비판도 상당했죠. 역시 군검찰이 건들 수 없는 영역이었다라는 생각을, 벽에 부딪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부 전 대변인은 고 이예람 중사 사건에 대한 국방부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원인을 ‘제 식구 감싸기’로 봤다. 군검찰이 군검찰을, 군사경찰이 군사경찰을 수사하다 보니 관련자들의 혐의를 엄밀하게 따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는 ‘제 식구 감싸기’로 봐요. 우리(국방부)가 가해자를 하루 만에 전격 구속하기는 했지만, 다른 문제도 많잖아요, 군사경찰부터 군검찰까지. 군검찰 입장에서는 ‘과연 20비(제20전투비행단) 군검찰이 뭘 잘못했나’ 하는 것이고, 군사경찰 입장에서는 ‘초동 수사를 했던 수사관들이 무슨 잘못을 했나’ 하는 식이었죠. 영장을 발부하더라도 근거가 있어야 된다라는 논리가 강했죠, 군사경찰이나 군검찰이나...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국방부가 초동 부실 수사 책임자들을 한 명도 기소하지 않는 등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재수사 필요성이 제기됐고, 결국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군을 수사 대상으로 한 최초의 특검이었고, 특정인의 죽음을 대상으로 한 첫 특검이었다. 부 전 대변인은 “군이 외부로부터 수사를 받게 될 경우 겪게 될 고초가 걱정이 되면서도 차라리 특검 수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저는 특검으로 가기를 바랐어요. 차라리 특검 갔으면 좋겠다. 진짜 솔직한 기분으로… 답답하고 미치니까 특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당연히 특검이다, 라고 생각했죠. 그런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했던 것 같아요.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지침을 숙지 못했다”... 공군 양성평등센터장의 황당 발언

2021년 6월, 고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현안질의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 이예람 중사가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사건 초기 인지하고도, 이를 국방부에 보고하지 않아 문제가 된 이갑숙 공군 양성평등센터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의원들은 “왜 이예람 중사 사건을 국방부에 즉시 보고 하지 않았는지”를 캐물었다. 황당한 답변이 나왔다.
제가 지침을 미숙지했습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갑숙 공군 양성평등센터장 (2021.6.10)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이수진, 박주민 의원 등이 나섰다. 박 의원은 “양성평등센터장님께서 지침을 숙지하지 못 했다라고 하신 말씀은 정말 충격적이에요. 지침대로 보고가 안 이루어지고 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게 지침을 다 숙지하지 못 해서 그런 겁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일이 있던 날, 부 전 대변인은 당시 느낀 감정을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국회 법사위가 10시부터 진행됐다. 장관은 국방위에서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대전시에서 양성평등 특보도 역임하고 이 분야에 상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지침을 숙지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될까. 국방일보에서 양성평등 관련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홍보까지 했는데 이해가 되질 않았다.”
- 2021년 6월 10일 (부승찬 저서 ‘권력과 안보’)
국회에서 나온 공군 양성평등센터장의 발언은 우리 군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부 전 대변인은 “성폭력 대응 지침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저는 그냥 변명입니다, 해서는 안 될 변명. 사건을 처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생각나는 변명이 없으니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변희수, 해군 부사관, 조종사... 세상을 바꾼 죽음들

고 이예람 중사 사건 외에도 부 전 대변인이 대변인으로 재직하는 동안 군에서는 여러 사망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임무 중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군인들도 있었고, 군의 폐쇄적인 구조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도 있었다.
2021년 8월, 한 해군 부사관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지 70여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상부에 알렸으나 상관은 이를 묵인했고 두 달 동안 가해자·피해자 분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 전 대변인은 당시 국방부와 해군이 사건을 인지한 이후 조치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사건이 발생한 5월 27일부터 정식 보고가 이뤄진 8월 7일까지 두 달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해군의 조치를 문제 삼았다. 군도 그 점이 문제가 된다고 보고 수사를 통해 밝히겠다고 했다.”
- 2021년 8월 13일 (부승찬 저서 ‘권력과 안보’)
같은 해 11월에는 공군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한 또 다른 부사관이 부대 밖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당시 공군은 해당 군인의 사망 원인이 ‘업무상 스트레스’였다고 적어서 사건을 처리했다. 그러나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관의 성추행 정황이 드러나면서 군이 이 사실을 은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소통간담회에서 8전비 공군 부사관 사망 관련 보도의 방향이 어디로 튈지를 논의했다. 사전에 알아보니, 8전비 공군 부사관은 업무 스트레스에 의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확인돼 장례식과 순직 처리가 완료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추후 유족이 강제추행 관련 정황에 대해 수사를 요구하면서 수사가 확대됐고, 강제추행이 확인돼 기소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여하튼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 2021년 11월 16일 (부승찬 저서 ‘권력과 안보’)
성전환 수술을 받은 고 변희수 하사에 대한 군의 강제전역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2021년 10월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부 전 대변인은 고 변희수 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건에 관해서도 기록을 남겼다. 육군 하사관으로 군 복무를 시작한 변희수 하사는 2019년 11월에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변 하사는 수술 이후에도 군 복무를 이어가고자 했으나 육군본부는 ‘심신장애’ 등을 이유로 강제 전역 처분을 내렸다. 2021년 10월, 법원은 군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지만, 변 하사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법원 판결 이후 국방부는 트랜스젠더 군 복무 관련 정책 연구를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실 나는 성전환자도 군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고, 조직 차원에서는 성전환자의 군 복무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군 내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항소를 포기하는 것이 맞느냐는 원론적인 고민에 빠지게 된다."
- 2021년 10월 15일 (부승찬 저서 ‘권력과 안보’)
2021년 1월에는 해군 부사관이 임무 도중 실족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부 전 대변인은 순직한 해군 중사의 빈소에 다녀온 날 “개인과 가족은 물론 함정의 안전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썼다. 공군 조종사 심정민 대위가 전투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일도 있었다. 심 대위는 전투기가 추락하는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민가를 피하려다 비상 탈출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직 이후 소령으로 추서됐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토요일 오전 해군 중사 실종 보고가 있었다. 보고 요지는 금요일 밤늦게 백령도 인근에서 임무 중이던 고속함 무장사인 해군 중사가 항해 중 실족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그 차디찬 바다에서…”
- 2021년 1월 9일 (부승찬 저서 ‘권력과 안보’)
“결국 조종사가 순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심정민 대위. 공사 64기 결혼 1년 차. 나의 21년 후배가 그렇게 순직했다. 문득 내 동기생 한세희가 생각났다. 세희도 순직 당시 10전비 소속이었다. 세희가 순직하고 나서 부인이 뒤따라가는 슬픈 사건이 10여 년 전에 벌어졌다. 심 대위나 세희나 모두 국가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영웅들이다. 그런데 사회는 이런 군인들의 모습은 잊은 채 조그마한 사건만 발생해도 비난하기에 바쁘다.”
- 2022년 1월 11일 (부승찬 저서 ‘권력과 안보’)
2022년 1월 14일 공군 전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고 심정민 소령의 안장식이 열린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유가족이 헌화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부 전 대변인은 자신이 대변인으로 재직하는 동안 군 내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들을 되돌아보며 “그런 분들의 희생이 개인적으로 군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희생된 군인에 대한 예우를 강조하며 “특히나 성폭력으로 인해 희생된 분들,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예우, 훈장이 됐건 모든 예우를 다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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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김주형 한상진
영상김기철 오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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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