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형제’로 불린 사건_110일의 기록

2021년 03월 02일 15시 31분

‘라면 형제 사건’으로 불렸던 화재가 난 지 6개월이 돼 간다.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한 임대주택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사고 당시 집에는 11살, 9살 두 남자 형제가 있었다. 둘째 아이는 사고 한 달쯤 뒤 사망했다.  
사고 소식은 언론 보도를 타고 일파만파 퍼졌다. ‘배를 곯던 아이들’, ‘라면 형제’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한 몫 했다. ‘라면 형제’가 오보였음이 밝혀진 뒤에도 보도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문준규 인천 미추홀경찰서 형사과장은 "라면 이야기는 언론이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이었다"고 말했다.
자극적인 보도의 끝은 마녀사냥이었다. ‘집을 비운 엄마’로 시작된 잡도리는 ‘엄마가 장애 아들 폭행’ 등으로 이어졌다. 둘째 아이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은 거의 생중계됐다. 간간히 저소득층 아동에 대한 사회와 학교의 관리 책임, 국가 보육 시스템의 문제를 짚는 보도가 나왔지만, 제목 장사에 목 맨 다수 언론의 행태를 이기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엄마에게 모든 사고 책임을 돌리면, 우리 사회는 이 비극적인 사고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이 의문을 품고 사고를 처음부터 다시 취재했다. 사고를 당한 가정의 지난 시간, 특히 사고 발생부터 11살 첫째 아이가 퇴원하기까지 걸린 110일간 벌어진 일에 주목했다. 사고 관련 기록을 입수해 분석했고, 두 형제의 엄마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엄마가 인터뷰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뉴스타파가 이번 취재과정에서 확인하고자 했던 건, 우리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었다.  

# 예견된 비극

취재진은 먼저 사고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119 소방대원의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문) 처음 목격한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답) 2층 창문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고 … 거실과 주방에서 화염이 분출되고 있었습니다.
(문) 형제는 왜 대피하지 못했나요?  
(답) 피난을 위한 출입문과 인접해 있던 거실과 주방에서 불이 크게 나고 있는 상황으로 보아 현관문을 통해 나오기가 무서워서 불길을 피해 방쪽으로 들어가 피난한 것 같습니다.
(문) 형제를 구출했을 때 상태는 어떠했나요? 
(답) 첫째 아이는 침대위에서 발견했으며, 구출 당시 의식 없이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둘째 아이는 침대와 화장대 사이 공간에서 발견했으며 역시 의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인천 미추홀소방서 출동대원 서면 인터뷰 (제공: 인천 미추홀소방서)
현장에서 구출된 형제는 인천의 대형병원을 거쳐 화상전문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입원기록지에 따르면 11살 첫째는 전신 49%에 2도에서 3도에 달하는 화상을 입었다. 호흡곤란, 상처로 인한 고통과 탄성객담(carboneous sputum), 즉 유독가스로 인해 가래와 목이 쉬는 증상이 확인됐다. 9살인 둘째는 병원에 이송되었을 때 심정지 상태였으나 심폐소생술로 맥박이 되살아났다. 화상부위는 전신 6%에 2도에서 3도에 달했다. 하지만 둘째는 버텨내지 못했다. 2020년 10월 21일 15시 52분, 화재로 인한 외인사 판정이 내려졌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화재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사고 현장 조사에 이어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첫째 아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6일이었다. 뉴스타파는 전화로 진행된 이 조사 내용이 기록된 음성파일을 입수했다. 아래는 조사 내용 중 일부다. 
(문) 어떤 걸로 불장난 한거야?휴지랑 햄버거 종이 남은 거 그거로 하고, 불 끄고 그랬는데 불났어요. 두루마리 휴지는 반쯤 넘게 탔어요. 
(문) 불장난 한 게 냄비 밑에 나온 불에 넣었단 거지? 네. 차가워져서 흰색 쓰레기봉지에 버렸는데….
(문) 흰색 쓰레기봉지는 정확히 어디에 있었어?저랑 000이(동생이) 쓰는 방 앞에요. 
(문) 부엌 옆이야? 부엌 근처요. 눈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서 방에서 그래서 나와 봤는데 불이 나있어서 일단 화장실은 갈 수 있어서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불 끄려는데 까먹고 방으로 들어가서…. 

첫째 아이 전화 조사 내용(인천 미추홀경찰서 형사과, 2020.11.6)
화재원인은 실화(失火), 즉 아이들의 불장난이었다. 주의력결핍 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던 첫째 아이는 불이 난 것을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ADHD로 인해 불을 꺼야한다는 생각을 유지하지 못하고 주의가 흐트러진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러 달에 걸친 수사 끝에, 경찰은 화재 원인을 아이들의 불장난으로 결론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사고 당시 집에 없었던 엄마 이유나(가명) 씨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로 입건돼 현재 수사를 받고 있다. 

엄마의 부재, 아이들의 불장난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사고 당일 형제의 엄마는 집에 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두 자녀를 두고 장시간 집을 비운 건 처음이 아니었다. 검찰이 작성한 범죄일람표에 따르면, 엄마 이유나 씨는 8월 15일부터 화재사고 당일인 9월 14일까지 총 14회나 집을 비웠다. 이틀간 집을 비운 경우도 세 차례나 확인됐다. 
형제의 불장난도 처음이 아니었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형제는 가스레인지에 행주를 넣어 태우는 등의 장난을 여러번 했다. 첫째 아이가 음식을 만들다 두번이나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도 수사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났다. 
엄마의 14번 외출, 아이들의 불장난, 첫째 아이의 화상 사고. 9살 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 사고는 어쩌면 예견된 비극이었다.
취재진은 엄마를 만나 직접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왜 아이들을 두고 집을 비웠는지, 아이들을 방치한 것이 사실인지, 혹시 그 과정에서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지난해 11월, 오랜 설득 끝에 두 아이의 엄마인 이유나 씨가 인터뷰에 응했다. 뉴스타파와의 첫 전화통화에서 이유나 씨는 “화재 원인이 ‘끼니’는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 엄마의 첫 인터뷰

인천 형제 화재 사고의 친모 이유나 씨가 뉴스타파 취재진과 인터뷰했다.  
뉴스타파 취재진과의 첫 만남에서 엄마 이유나 씨는 화재 당일 아이들과 주고받은 전화 녹음내용을 들려줬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아침에 컵라면을 끓여먹었고, 시리얼을 먹었으며, 동생과 사소하게 다투었다”는 등의 사소한 얘기를 전하고 있었다. 마지막 통화는 화재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엄마인 이유나 씨는 자책했다. 
일단은 제가 (집에) 없었던 게 제일 큰 원인입니다. 처음에 00(첫째 아이)에게 전화 왔을 때, 불났단 얘기를 들었을 때 큰 불이라는 걸 전혀 생각을 못 해서 나오라는 소리를 안 하고 그냥 끊어버린 게 문제였어요. ‘집에 가보면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두 번째 전화했을 때인가, 얘(첫째 아이)가 기침밖에 안 하고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냥 내가 그때라도 ‘집에서 나오라’고 했으면 됐는데...그때만 해도 작은 애 목소리가 들렸거든요.

이유나 (화재사건 피해 아동의 친모)
” 
이유나 씨는 먼저 세상을 떠난 둘째 아이에게 미안해 했다. 
00이(둘째)는 (의식을 찾은 뒤에) 아예 말도 못 하고 저를 알아 보지도 못했어요.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만 있었어요. 00이(둘째)가 입모양으로 밖에 얘기를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그냥 끄덕끄덕하고 도리도리 정도 힘겹게 하고요. ‘엄마가 미안해’ 그랬더니 고개를 도리도리하더라고요. 둘째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저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이유나 (화재사건 피해 아동의 친모)
‘인천 형제 화재사고’의 1차 책임이 아이를 방치한 엄마에게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11살, 9살짜리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밤새 집을 비웠다는 사실이 용납되긴 힘들다. 하지만 엄마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고 사고 원인이 밝혀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보육의 책임은 국가와 사회에도 있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형제의 엄마인 이유나 씨와 그 동안 여러번 만나 인터뷰했다. 화재 사건으로 시작됐지만, 대화의 폭은 시간이 갈수록 넓어졌다. 이유나 씨 삶의 궤적을 따라갔다. 그것이 아동방임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유나 씨 가정이 감당해 온 시간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 폭력의 대물림

이유나 씨는 자신이 가정폭력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어릴 때는 부모의 방임과 가족의 폭력, 가정을 꾸린 뒤에는 남편에게도 각종 폭력을 당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는 아빠가 술을 진짜 많이 드셨어요. 알코올중독인 것 마냥 진짜 엄청 취하시기까지 많이 드셨는데. 많이 혼났죠. 아빠가 화가 좀 많으셨던 거 같아요. 엎드려 뻗쳐 하고 엉덩이, 엉덩이나 허벅지 쪽 당구 큐대로 맞았어요.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남동생에게도 많이 맞았어요. 결혼 뒤에는 남편에게도 폭행과 폭언을 당했어요. 남편은 날 무시하고 막말을 심하게 했어요.

이유나 (화재사건 피해 아동의 친모)
게다가 화재 사고 당시 이유나 씨와 첫째 아이는 신용불량자였다. 남편이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남편은 세탁기와 TV 등 집기를 모두 들고 도망친 뒤 연락을 끊었다. 두 아이의 양육은 오로지 엄마인 이유나 씨의 몫으로 남았다. 양육비는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결국 이유나 씨는 가정을 꾸리고 5년 만인 2015년, 집을 나간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뉴스타파는 이유나 씨가 직접 작성한 이혼 관련 서류를 확인했다. 이혼 청구 사유가 적힌 글에서 눈에 띄는 내용이 발견됐다. ‘경찰과 이웃에 여러 차례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2010년 집을 나와 부모님 허락 없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갈 곳이 없었고 둘째를 지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지우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폭언과 폭력이 있을 때마다 집안에서 소리치며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을 불러주는 이웃은 없었습니다. 결국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됐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않고 장난친다는 이유로 애들 뺨을 때렸습니다.

이유나 씨 이혼입증서면 (2015년)
이유나 씨의 정신과 진료 기록에는 ‘우울감’, ‘자살사고’, ‘감정기복’ 같은 단어들이 연달아 적혀 있었다. 화재 사고가 나기 직전에는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이유나 씨는 “아이들을 방치하고 집을 비운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고 당일 외출이 계획된 건 아니었어요. 여러번 약을 먹고(자살시도) 나쁜 생각만 들 때였어요. 집에 있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애들은 자고 있는데, 애들한테 미안한 생각밖에 안 들고, 그래서 그냥 집에 있는 게 싫었어요, 특히 그 날은.

이유나 (화재사건 피해 아동의 친모) 
취재진은 전문가들에게 이유나 씨와의 인터뷰 등 취재 내용을 전하고 의견을 물었다. 아동학대행위자 치료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해 온 형사정책연구원 윤정숙 박사(심리학)는 “친모가 아동학대행위자의 전형성을 띈다”고 진단했다.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해 정서적, 경제적 지원이 부재했다는 점, 우울 감으로 인해 자포자기 심정으로 외출을 했다는 점, 어린 시절 부모의 잘못된 양육태도로 부터 학습된 모습을 자신의 아동에게 똑같이 대물림하는 경직성을 보이고 있다.

윤정숙 형사정책연구원 심리학 박사

# 무관심, 무대책

이유나 씨와 두 아이가 위험하다는 신호는 이미 3년 전부터 여러 차례 감지됐다. 2018년 9월 16일, 한 이웃에 의해 첫 학대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접수한 인천광역시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에 남겨진 상담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인천광역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접수된 1차 신고 내용.
하지만 인천 아보전은 “아동들이 보호자 없이 가정 내 방치되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며 아동 방임학대에 해당된다”고 엄마 이유나 씨에게 고지했을 뿐 양육문제와 관련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첫 신고가 있고 약 1년 뒤 2차 신고가 접수됐다. 2019년 9월 24일 새벽 2시 40분 경이었다. “아이가 소리를 많이 지르고 있어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다. 인천 아보전은 즉시 현장조사에 나섰고 ‘엄마의 외출로 가정 내 아동들만 남겨진 상황’임을 확인했다. 
8개월 뒤인 2020년 5월 12일에는 3차 신고가 접수됐다. 밤 12시 50분경이었다. 그 날도 엄마는 없었다. 해당 사례를 담당했던 인천 아보전은 가정방문 31회, 유선상담 40회를 진행했지만 방임의 근본원인인 엄마의 ‘외출’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이유나 씨는 경찰조사에서 아동 방임이 문제였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충동적인 자살시도가 계속되면서 외출은 반복됐다. 이유나 씨는 “애들을 봐줄 사람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인천 아보전의 상담은 피해아동에 대해서만 이뤄졌다. 이유나 씨는 검찰 조사에서 “아보전에서 온 사람들이 집안 곳곳을 사진 찍어가고 아이들과 상담한 뒤 돌아갔다.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학대행위자인 엄마에 대한 정신과 진료와 돌봄 서비스 제공 등이 필요했지만, 아보전이 아무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 번의 신고가 있은 뒤인 지난해 5월, 인천 아보전은 “최장 1년간 피해아동을 아동복지시설에 위탁할 것을 요청한다”는 피해아동보호명령을 가정법원에 청구했다. 법원 판단은 3개월이 지난 지난해 8월 27일에야 나왔다. “피해아동과 친모 모두에게 상담교육을 받는 보호처분 결정을 내린다”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명령은 화재 사고가 날 때까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유나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당장이라도 상담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인천 아보전에서는 ‘앞에 대기자가 많아서 기다려야 된다’고만 얘기했어요. 그 시기엔 저에겐 이야기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이유나 (화재사건 피해 아동의 친모) 

사례 관리 실패, 문제는 돈?

전문가들은 이유나 씨 가정에서 벌어진 문제가 전형적인 ‘관리 실패’의 사례라고 말했다. 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보전은 아이 뿐 아니라 부모의 문제에도 개입해야 하는데, 엄마에 대한 지원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는 사례 관리를 맡았던 인천 아보전에 연락해 엄마에 대한 상담이 진행되지 못한 이유를 물었지만, 아무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인천 아보전의 상급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에도 질의서를 보냈지만 마찬가지였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에만 우리나라에서 총 4만 1389건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 3만 45건이 ‘학대’로 판단됐다(2020년 7월 기준). 학대 신고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14년에 1만 7782건이었던 것이 2016년엔 2만 9671건으로, 2018년에는 3만 6416건으로 늘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아동학대행위자인 부모에 대한 교육 치료는 턱없이 부족하다. 2019년 감사원이 발표한 <보호대상 아동지원실태> 감사보고서는 “학대행위자의 교육 및 치료 등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보전이 행위자에 대한 치료를 의무가 아닌 서비스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감사원이 모니터링 한 아동학대 사례 1만 2174건 중 교육치료가 이뤄진 경우는 9.1%(1113건)에 불과했다. 90.9%(1만 1061건)는 방치됐다. 
보건복지부 ‘2019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
감사원 '감사보고서-보호대상아동 지원실태' (2019.11) 
지난해 7월, 정부는 <아동·청소년 학대방지대책>을 발표했다. 지역 거점 아보전에 심리치료센터를 확충하고 심리치료전문가 등을 배치해 심리치료 인프라를 강화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심리치료 전담 인력을 17개소에 3명씩 배치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보전에서) 심리 정신 치료를 할 수 있는 치료사를 고용하려고 공고를 냈는데, 1년 동안 지원자가 없었어요. 임상치료 심리 상담에서 받는 정도의 처우가 사회복지, 특히 아동복지 쪽에서 받는 처우와 갭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은 기준으로는 전문적인 심리 상담 인력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아동복지연구센터 센터장)
현재 정부의 아동학대 관련 재정은 보건복지부 일반회계, 범죄피해자보호기금, 복권기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범죄피해자 보호기금(76%)이다. 보건복지부 일반회계에서 오는 예산은 4%에 불과하다. 문제는 법무부가 관리하는 범죄피해자 보호기금을 늘리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다소 재량권이 있는 보건복지부 쪽 예산을 늘린다 해도 워낙 비중이 작아 티가 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특수한 예산구조가 아동 학대 관련 예산 증액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기관의 경우 아동에게 쓸 수 있는 사업비는 현재 2900만 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저희 기관에 연간 들어오는 피해 아동 사례만 약 1000건에 달합니다. 이 중 10%만 심리검사를 한다고 해도 3000만 원 정도가 필요하죠. 지금의 사업비로는 심리검사도 할 수 없습니다. 예산 증액 요구를 많이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동건 전국 아동보호 전문기관협회장 (빛고을 아동보호전문기관장)
취재진은 주무 부서인 보건복지부에도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어떤 예산 증액, 제도개선 계획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박은정 보건복지부 아동학대대응과장은 “예산확보를 위해서는 재정당국과 법무부 등을 설득하고 협의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작진
촬영정형민, 최형석, 김기철, 오준식
편집윤석민
디자인이도현
CG정동우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