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10년 전인 2013년 4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와 함께 처음으로 조세도피처 국제협업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어 7년 전인 2016년 4월에는 국제협업의 새 기원을 연 ‘파나마페이퍼스’에도 한국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참여했습니다. 두 프로젝트를 통해 전두환의 장남 전재국, 노태우의 장남 노재헌의 조세도피처 유령회사 설립 등을 폭로했죠.
ICIJ는 ‘오프쇼어 리크스’ 프로젝트 10년,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 7주년을 맞아 여러 편의 특집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가운데 2편을 번역해 ICIJ와 공동으로 게재합니다.
4월 3일(한국 시간 4월 4일)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의 달력에서 두 가지를 기념하는 날이다. 2016년에 전 세계 신문과 TV 화면을 뒤덮은 파나마페이퍼스 보도가 시작된 날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2013년 ICIJ 최초 조세도피처 탐사보도, 즉 '비밀 판매’(Secrecy for Sale), 또는 '오프쇼어 리크스’(Offshore Leaks) 프로젝트가 처음 신문 지면을 장식한 날이기도 하다.
'오프쇼어 리크스'은 호주 출신 저널리스트 제라드 라일이 ICIJ의 대표로 워싱턴 D.C.에 오게 된 계기가 됐다. 이 국제협업 탐사보도를 통해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유출된 금융 기밀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그 프로젝트는 ICIJ 저널리즘의 고유한 특징이 된 대규모 데이터 기반 국제협업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제라드 라일 대표에게 지난 10년간 ICIJ의 보도가 미친 영향과 그 보도가 그 자신과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물었다.
▲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제라드 라일 대표
Q: 역외 금융의 비밀스러운 세계와 이를 통한 지하 경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제인가?
A: 역외 조세도피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내가 ICIJ를 맡기 몇 년 전 호주에서 탐사보도 기자로 일할 때였다.
그것은 마법의 알약을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한 남자에서 시작됐다. 이 알약을 자동차 연료 탱크에 넣으면 유독성 배출가스가 기적적으로 제거되고 연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는 것이었다. 이 알약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호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스포츠 유명인들의 관심을 끌며 6천만 달러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거대한 폰지 사기에 불과했다. 이 마법의 약 발명가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회사의 주식 수백만 주를 제대로 된 금융 규정을 따르지 않고 판매했다.
많은 사람들이 백만장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사기가 무너지고 투자자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한 주주가 나에게 역외 시스템이 제공하는 조세도피처 회사의 비밀을 당신은 절대 뚫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어떤 탐사보도 기자도 거부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Q: 당신이 오프쇼어 리크스의 원본 데이터를 가지고 ICIJ를 찾아왔을 때, 그것이 10년에 걸친 탐사보도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 적이 있나?
A: 내가 마법의 알약 회사 관련 책을 쓴 후 한 제보자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의 조세도피처에 어떻게 재무 구조가 설정돼 있는지를 밝히는 매우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나는 곧 두 군데 역외 서비스 제공업체(비밀 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세도피처에 역외 계좌를 개설해 주는 회사)의 기록 250만 건을 입수했다.
마법의 약 회사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금세 분명해졌다. 그 기록에는 전 세계에 걸쳐 있는 수천 개의 다른 역외 비밀 회사 관련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 누구도 이 비밀의 세계에 침투할 수 없었는데 누군가 나에게 열쇠를 건네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취재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내가 긴 여정의 시작점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탐사 저널리스트로서 배워온 모든 것의 반대인 공유를 실천해야 했다. 당시에는 그 여정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그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저널리즘 형식을 고안해 내게 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Q: 10년 전, '오프쇼어 리크스' 탐사보도를 처음 내보낸 날에 어떤 기억이 남아있나?
A: 전화가 계속 울렸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당시 ICIJ는 비좁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작은 조직이었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관심에 대응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Q: ‘오프쇼어 리크스’ 데이터를 지난 10년간 ICIJ가 해 온 ‘파나마페이퍼스’, ‘판도라페이퍼스’ 등 다른 탐사보도 결과와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가?
A: 그 순간부터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까지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선이 있다. 당시 나는 "유출은 새로운 유출을 낳는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언론인들에게 정보 공유의 이점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그 첫 번째 국제협업 프로젝트는 다른 일련의 금융 기밀 조사로 바로 이어졌다.
우리는 곧 차이나 리크스, 룩셈부르크 리크스, 스위스 리크스 자료도 입수해 깊이 파고들었다. 파나마페이퍼스에서 촉발된 룩셈부르크 리크스 사건은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촉발시켰다. 결국 우리 작업에 매료된 한 제보자가 나에게 연락해 1,200만 건의 기록이 담긴 판도라 페이퍼스를 제공했고, 100여 개국에서 150개 언론사, 600여 명의 저널리스트가 함께 참여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협업 저널리즘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Q: 지난 10년간 조세도피와 금융 비밀을 조사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웠던 순간이 있나?
A: 우리가 밝혀낸 엄청난 규모의 부패, 특히 정치인들의 부패를 생각하면 아직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 시스템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거의 믿을 수 없는 격차를 영속화하고 있다. 또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범죄를 조장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이 시스템은 해체돼야 마땅하다.
Q: 조세도피처 관련 첫 탐사보도가 나온 이후 지난 10년 동안 상황은 어떻게 변했나? ICIJ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A: 각각의 탐사보도에서 교훈을 얻어 더 나은 업무 수행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체 이식형 의료기기 문제부터 국제 외교계의 지하 세계, 전 세계적인 환경 파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다른 주요 주제를 취재하는 데도 공유와 협업 모델을 적용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백 명의 저널리스트를 훈련시켰다. 부정과 비리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세상을 뒤흔드는 저널리즘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