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잠든 '셰프의 꿈'... 이태원 참사 프랑스 유가족 인터뷰

2024년 01월 24일 15시 01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450일이 넘었다. 시간이 약이 된다고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산다. "참사의 진상은 이미 다 밝혀졌다"는 정부의 말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외국인 유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 중 외국인은 14개국, 26명이다. 참사에 대한 정보 접근 자체가 어려운 외국인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 뿐만 아니라 고립감에도 시달리고 있다. 뉴스타파는 이런 상황에 놓인 외국인 유가족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이란, 노르웨이인 유가족 인터뷰를 통해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유가족 문제를 알렸다. 
지난 1월 3일, 뉴스타파는 이태원 참사 프랑스인 희생자 가족을 최초로 인터뷰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중 프랑스인은 1명, 희생자의 이름은 '리바세 게네고'(공식 이름 : 리마무 게네고)다. 뉴스타파는 리바세 씨의 아버지, 파스칼 게네고 씨를 화상으로 만났다.
파스칼 게네고 씨는 "참사 이후 한국과 프랑스, 양국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우리는 참사 직후 잊혀졌다. 아직도 힘들다. 매일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 유가족들의 진상 규명 활동을 언급하며 "그들이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과 같은 편"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프랑스인 유가족 최초 인터뷰

프랑스인 희생자 '리바세 게네고' 씨는 1988년 2월 27일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프랑스로 이주했다. 서류상 이름은 리마무 게네고지만, 가족은 '리바세'라고 불렀다. 리마무는 세네갈 역사에서 유명한 종교인의 이름이다. 그래서 가족은 종교인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리마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리바세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 프랑스인 희생자 고 리바세 게네고 씨. 서류상 이름은 리마무 게네고다. 
리바세 씨는 어릴 적부터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고급 문화를 동경했다고 한다. "리바세는 기타도 잘 치고, 그림도 잘 그렸다. 항상 럭셔리한 것도 좋아했다. 나와는 다르게 섬세하고, 멋진 시계도 차고, 항상 옷을 잘 입었다"고 파스칼 씨는 말했다. 
리바세 씨는 요리사가 됐다. 프랑스의 유명 식당에서 일했다. 파리 에펠탑 2층에 있는 '미슐랭' 식당인 '쥴르 베르느(Jules Verne)'에서 일했다.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도 요리를 했다. 파스칼 씨는 "유명 배우들이 화보 사진을 찍으러 오는 스튜디오의 레스토랑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직접 회사를 차려서 (고객 집을 찾아가 요리해 주는) 가정 요리사로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파스칼 씨에게 '아들의 요리를 맛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파스칼 씨는 "아들 덕분에 처음 먹어본 요리가 많았고, 생소한 향신료도 많이 경험했다"며 아들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리바세는 집에 올 때마다 엄마, 동생, 조카의 요리를 도와줬어요. 자기가 손님에게 해줬던 요리를 했죠. 닭가슴살로 완벽한 요리를 완성했고, 평범한 요리도 고급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어요. 향신료인 '화자오'도 아들이 처음으로 맛보게 해줬어요. 

파스칼 게네고 / 이태원 참사 프랑스인 희생자 고 리바세 게네고 씨의 아버지
이태원 참사 프랑스인 희생자 고 리바세 게네고 씨의 직업은 요리사였다. 프랑스에 있는 여러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했고, 몇 년 전부터는 고객에게 맞춤형 요리를 해주는 '가정 요리사'로 활동했다. 사진은 리바세 씨가 직접 만든 요리들이다. 

한식 경험하려 '참사 이틀 전' 한국에 온 프랑스인 셰프

아버지 파스칼 씨의 표현에 따르면, 리바세 씨는 "발전하고자" 했다.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배우고, 이를 자신의 요리에 접목하려는 욕심이 컸다. 한식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였다.
리바세 씨는 이미 2019년 한 번 한국을 관광 목적으로 와본 적이 있었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한국 음식을 맛봤다. 특히 서울의 길거리 음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기억이 인상적이었던지, 리바세 씨는 2022년 다시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식을 맛보고, 그 경험을 요리에 녹여내기 위해서였다. 파스칼 씨는 "그동안 가정 요리사로 사업체를 운영하며 리바세의 고객층이 한정적이었던 것 같다. 고객층을 더 넓힐 수 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 한국에 간 거다. 먹어본 음식을 통해 영감을 받고, 한국의 맛을 보여줄 수 있는 샘플들도 갖고 오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리바세 씨는 2022년 10월 26일 프랑스를 떠났고, 10월 27일 서울에 도착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이틀 전이었다. 
이태원 참사 프랑스인 희생자 고 리바세 게네고 씨가 자신의 SNS에 올린 영상. 리바세 씨는 이태원 참사 발생 이틀 전인 2022년 10월 27일 한국에 도착했다. 참사 전날인 10월 28일에는 서울 명동을 구경하며 길거리 음식을 맛봤다. 오른쪽 사진에 있는 프랑스어 글귀는 "안녕 서울, 잠들지 않는 역동적인 도시!"라는 뜻이다. 

"아들이 저 군중 속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리바세 씨는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사망했다. 사망 시간은 알 수 없다. 발견 시간만 있을 뿐이다. 소방 구급활동일지에 따르면, 구급대원이 리바세 씨를 발견한 시간은 10월 30일 새벽 00시 36분, 리바세 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곧바로 용산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병상이 부족했고, 방치되다 10월 30일 새벽 5시 20분 강동 경희대병원으로 재이송됐다. 리바세 씨의 신원은 강동 경희대병원에 도착해서야 확인됐다.
그 시각 프랑스에 있던 가족은 아무것도 몰랐다. 프랑스는 한국보다 8시간이 느리다. 리바세 씨의 시신이 발견된 10월 30일 새벽 00시 36분, 프랑스는 10월 29일 낮 4시였다.
그날 파스칼 씨는 어머니를 만나러 집에서 수백km는 떨어진 노르망디(프랑스 북서부 지역)로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 서울 이태원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스칼 씨는 이태원이 어딘지 몰랐다. 다만 전날 아들이 왓츠앱(SNS 애플리케이션)으로 한국의 '핼러윈 축제'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낸 게 떠올랐다. 설마 하는 마음에 리바세 씨가 묵던 호텔에 전화했다. 호텔 직원은 아직 리바세 씨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도 연락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불안했지만, 파스칼 씨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단 노르망디에 머물렀다. "아들이 저 군중 속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고 파스칼 씨는 말했다. 
불안은 곧 현실이 됐다. 프랑스 시각으로 10월 30일 오전, 현지 경찰이 파스칼 씨의 집을 찾아 왔다. 그리고 파스칼 씨의 배우자에게 아들이 숨졌다고 말했다. 소식을 들은 파스칼 씨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고, 아들의 사망 사실이 담긴 문서를 건네 받았다. 
한국 경찰이 프랑스 대사관에 보낸 고 리바세 게네고 씨 사망 통보서. 리바세 게네고 씨의 옷에서 '발자국으로 보이는 자국이 발견됐다'며 '압사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다. 
가족은 당장의 충격을 견디는 것도 힘들었다. 도저히 한국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리바세 씨의 사촌 이삭(Isaac) 씨가 대신 한국에 갔고, 리바세 씨의 뒷수습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도움을 준 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파스칼 씨는 "한국에서 도움을 준 건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해 주고, 장례비 등 명목으로 2만 4천 유로(한화 약 3천만 원, 구호금은 모든 희생자를 대상으로 지급됨)를 준 게 다였다.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리바세 씨의 짐을 정리하고, 경찰서로 가 휴대전화를 찾고, 시신 이송을 위한 각종 문서를 처리하는 등의 외국인에겐 까다로운 일 투성이였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이삭 씨가 도맡아서 해야 했다. 그나마 이삭 씨가 과거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와본 적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모든 절차가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파스칼 씨는 말했다. 
리바세 씨는 2022년 11월 8일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태원 참사 발생 열흘째, 리바세 씨가 한국에 간 지 2주 만이었다. 리바세 씨는 자신이 태어난 세네갈에 묻혔다. 

고통 속에 홀로 남겨진 유가족...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이태원 참사 외국인 희생자들의 본국에서 이태원 참사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희생자 수가 적다 보니 관심 갖는 언론도 거의 없다. 총 14개국 중 희생자가 가장 많은 곳은 이란으로 5명이다. 노르웨이, 호주, 오스트리아, 베트남, 태국 등 9개국에서는 모두 희생자가 1명이다. 프랑스도 1명이다. 
프랑스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보도나 정보는 그냥 "프랑스인 1명이 이태원에서 사망" 이라고만 돼 있죠. 참사 다음날 바로 잊혀졌어요. 참사 1주년 날에도 기사 한 줄만 쓰여있었어요. 아무도 신경을 안 쓰죠. 

파스칼 게네고 / 이태원 참사 프랑스인 희생자 고 리바세 게네고 씨의 아버지
리바세 씨 가족은 이태원 참사가 왜 발생한 것인지, 이후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 이메일을 보냈다. 돌아온 것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의'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메일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가 끝이었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 한국 정부, 주 파리 한국 대사관은 아예 접촉 시도조차 없었다. 리바세 씨가 차가운 시신이 되어 프랑스 땅을 밟았던 2022년 11월 8일,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게 전부였다고 한다. 파스칼 씨는 "한국에서 받은 연락은 유가족협의회 말고는 없다. 이메일도 주한 프랑스 대사관과 주고받은 게 전부"라고 말했다. 
지난 1월 2일, 뉴스타파와 인터뷰 중인 이태원 참사 프랑스인 희생자 고 리바세 게네고 씨의 아버지 파스칼 게네고 씨. 
참사로 가족을 잃은 정신적 고통 역시 철저히 외면당했다. 한국·프랑스 정부는 리바세 씨 가족의 회복을 위한 '공적 지원'을 전혀 해주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소속 국가트라우마센터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외국인 피해자도 영상통화 등을 통해 무료 심리 상담을 지원받을 수 있고, 통역도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리바세 씨 유가족은 이런 사실을 한국 정부로부터 안내받지 못했다. 참사 발생 1년도 넘은 시점, 뉴스타파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무료 심리 상담을 해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프랑스 정부는 (다른 사고 등으로 가족을 잃은) 프랑스 유가족 단체가 있으니 찾아가 보라고만 했다. 다행히 이 단체는 리바세 씨 가족에게 무료 정신과 진료를 지원했다. 하지만 5개월 전쯤, 프랑스 담당 의사가 유가족 단체 지원을 그만두면서 리바세 씨 가족이 받던 무료 진료도 끝이 났다. 이후 리바세 씨 가족은 아무런 의료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뉴스타파 취채진은 파스칼 씨에게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 때 한국 정부나 대사관으로부터 조의를 담은 이메일이나 편지, 연락은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파스칼 씨는 "전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진상 이미 다 밝혀졌다는 한국 정부·여당... 프랑스인 유가족 "인정만이라도 해라" 

한국 정부와 여당은 공공연히 '이태원 참사의 진상은 이미 다 밝혀졌다'고 말한다. 용산경찰서장, 용산구청장 등에 대한 재판은 진행 중이고, 이미 국회 국정조사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유가족들이 줄기차게 '몇몇 공무원만 처벌할 게 아니라,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혀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파스칼 씨는 "참사의 진상이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많은 것을 들었어요. 이태원 참사 당시 근처에서 (대통령실 앞 집회를 관리하던) 경찰 100명 정도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현장에 갔었어야 했는데... 구청에서는 왜 아무런 조치도 안 했을까요. 이태원이 사고에 노출돼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요. 종합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경찰, 구청, 그리고 정부까지 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파스칼 게네고 / 이태원 참사 프랑스인 희생자 고 리바세 게네고 씨의 아버지
파스칼 씨는 한국 유가족협의회의 활동을 지지한다는 뜻도 밝혔다. "나는 한국 유가족들이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들과 같은 편이다. 내 방에는 한국 피해자들의 이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최대한 축소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유가족협의회가 꾸준히 파헤치면 해결이 될 것이다. 최소한 (한국 정부가 잘못을) 인정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추후 한국 정부의 잘못을 가리기 위한 소송이 진행된다면 원고 명단에 내 이름을 올리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절차에 내 이름이 올랐으면 한다. 그렇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고 덧붙였다. 
이태원 참사 프랑스인 희생자 고 리바세 게네고 씨(왼쪽에서 두 번째)의 가족 사진. 

참사 이후 450일... 오늘도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태원 참사 발생 약 1년 3개월이 지났다. 시간은 약이 되지 않았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여전히 고통 속에 산다. 파스칼 씨는 "(뉴스타파가 지난해 5월 보도한) 오스트리아 유가족 인터뷰도 보려고 했는데, 첫 장면만 봤다. 끝까지 못 보겠더라. 내 아내는 더 심하다. 기자와 얘기도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가고 있다. 아들을 자주 생각하고, 매일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해 준 요리와 아들이 풍기던 '에너지'가 특히 그립다고 했다.
(아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인정받고 싶어 했고, 하는 일에서 더 발전하고자 했어요. 향기가 나는 책도 만들고 싶어 했어요, 프랑스적인 향료를 넣어서요. 벌써 시작했어요. 조향사도 만나고, 편집자도 만났었고, 유명한 셰프들과도 연락하고요. 그림을 전공하는 다른 조카와 요리에 관한 만화책도 만들고 있었어요. 아들이 풍기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어요. 항상 무엇을 하고 싶어 했고,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도 많았죠. 아들의 에너지가 그립네요.

파스칼 게네고 / 이태원 참사 프랑스인 희생자 고 리바세 게네고 씨의 아버지
인터뷰가 끝날 즈음 파스칼 씨는 아들을 위해 올리는 기도문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우리는 이슬람교도다. 코란에는 '수라'라는 게 있다. 고인의 평화를 위한 기도다. 손에 바람을 불면서 기도한다. 이 기도가 필요한 자에게까지 멀리 퍼지도록 하기 위한 거다. 이 기도가 참사로 힘들어하는 모두에게 전해지기 바란다"고 파스칼 씨는 말했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 우주의 주님이신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나이다.
그분은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심판의 날을 주관하십니다. 
우리는 당신만을 경배하오며 당신에게만 구원을 비노니
저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은 당신께서 축복을 내리신 길이며
노여움을 받은 자나 방황하는 자들이 걷지 않는 가장 올바른 길이옵니다.   

(중략)
오 알라시여, 닫힌 것을 열고 이미 지나간 것을 봉인하시고
진리에 의한 진리의 조력자이시며
당신의 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무함마드에게 기도를 보내소서.

(중략)
그리고, 우리는 죽은 자들을 위해 손에 바람을 불어 넣었습니다.

파스칼 게네고 씨가 아들 고 리바세 게네고 씨를 위해 올리는 코란 기도문 중 일부
제작진
취재홍주환
촬영정형민 이상찬
편집장주영
CG정동우
통역김안젤라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