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국민의 국회 vs 로비스트의 국회

2024년 04월 04일 20시 00분

26,773건. 21대 국회가 지난 4년간 다룬 의안 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누군가는 민의를 거스르고 특정 집단의 이해를 쫓는 '악마'를 그 많은 의안 어딘가에 숨긴다. 높은 전문성을 가지고 의안 속 악마를 가려낼 국민의 대표가 절실하다. 
뉴스타파는 22대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 가운데 경제 분야 전문성을 내세우는 학계, 재계, 중소·중견기업인 출신 후보를 추려 검증했다. 앞으로 4년간 국회에서 민생과 미래 문제 최일선에서 활약해야 할 후보군이다. 경제 분야 후보들의 전문성 면면을 따지고, 후보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숨은 이해 관계를 들여다 봤다. 

삼성 출신 후보들, 과거 국회에선 '삼성생명법' 방어막

뉴스타파는 국민의힘(국민의미래),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 양당을 중심으로 학계, 재계, 중소·중견기업인 출신 경제 전문가 총 34인을 검증했다. 이들 후보 가운데 두드러지는 키워드는 단연 삼성과 기획재정부다. 삼성 임직원 출신이거나 사외이사를 지낸 후보가 6명, 기재부 출신 후보가 9명으로 확인됐다. 삼성과 기재부 경력을 동시에 가진 후보도 2명이다.
고동진(국민의힘, 서울 강남구병), 한정민(국민의힘, 경기 화성시을), 양향자(개혁신당, 경기 용인시갑) 후보는 삼성그룹 임직원 출신이다. 삼성전자 IM(IT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 부문 사장을 지낸 고동진 후보는 국민의힘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는 등 '갤럭시 성공 신화' 이미지를 앞세워 이번 총선의 간판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 임직원 출신 후보들이 자신의 삼성 관련 이력을 내세우는 반면, 사외이사 출신 후보들은 그렇지 못하다. 국회의원의 삼성 사외이사 이력은 이미 지난 국회에서 이해충돌 논란을 빚은 바 있다.
22대 총선 삼성의 사외이사 출신 후보들. 삼성 사외이사 출신 국회의원은 과거 의정활동 중 삼성 법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이해충돌 논란을 빚었다.
2015년부터 5년간 삼성물산 사외이사를 지낸 윤창현(국민의힘, 대전 동구을) 후보는 재선에 도전한다. 당시 공시된 사외이사 연봉은 8,500만 원  수준이었다. 윤 후보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합병에 찬성한 대표적인 학계 인사다. 2018년 뉴스타파 장충기 문자 보도에 따르면, 그는 한국선진화포럼 정책위원장 자격으로 합병을 지지하는 세미나와 기자회견을 주도했다.
21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한 후 4년 내내 정무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임기 초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이른바 '삼성생명법'이 정무위원회에 상정되면서 윤 후보의 자격이 문제가 됐다. 삼성 사외이사 출신인 윤 후보가 정무위원 자격으로 삼성 관련 법안을 심사하는 것은 이해 충돌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 후보는 기업친화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라며 정무위원 사퇴 요구를 거절했다. 삼성생명법은 여러 차례 상임위 법안 상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윤 후보를 비롯한 반대파에 가로막혔다. 결국 이 법안은 21대 국회가 마무리되는 다음 달 임기 만료 폐기될 예정이다. 
삼성화재에서 사외이사를 지낸 박대동(국민의힘, 울산 북구) 후보도 재선에 도전한다. 박 후보는 19대 국회의원 시절 보험업계와 삼성을 적극적으로 대변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보험업계의 오랜 바람이었던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을 대표발의해 법안 통과까지 이끌었다. 당시 정치권, 학계, 시민단체에서는 이 법이 보험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1대 국회에 윤창현 후보가 있었다면 19대에는 박대동 후보가 있었다. 정무위원 활동을 하며 삼성생명법 통과를 막았다. 
20대 총선 공천 탈락 이후 박 후보는 삼성화재 사외이사로 신규 임명됐다. 이번 총선 직전까지 6년에 걸쳐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공시에 따르면, 연봉이 1억 원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2차관을 지낸 안도걸(더불어민주당, 광주 동구남구을) 후보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외이사 출신이다. 지난해 3월부터 총선 직전까지 1년간 사외이사를 지냈다. 연봉은 9,200만 원 수준이다.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 결과에 따르면, 안 후보는 2022년 퇴임 후 채 1년이 안 돼 재취업 심사를 신청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퇴직 공직자는 원칙적으로 3년간 재취업이 제한되지만, 안 후보는 업무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재취업이 허용됐다.
안도걸 광주 동구남구을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업무 연관성이 없다는 심사 결과와 달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금 공제 문제로 기재부와의 소통을 원하는 상태였다.
형식적인 심사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후보는 관료 생활 중 보건산업정책국장 등을 역임하며 이미 산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더구나 안 후보 영입 시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세금 공제 문제로 기재부와의 소통을 원하는 때였다. 실제 기재부는 안 후보 영입 이후 국가전략기술 관련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을 고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주력으로 하는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공제 혜택을 확대했다. 
안 후보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해당 세금 공제 사실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밝혔다. 관료 시절의 활동을 보고 삼성이 먼저 사외이사를 제안했을 뿐, ESG, 감사 분야 중심으로 활동했다고 했다.    

'내 지역에 예산폭탄'...국회 기능 무너뜨리는 기재부 출신 후보

기재부 출신 후보 9명 가운데 추경호(국민의힘, 대구 달성군), 방문규(국민의힘, 경기 수원시병), 김완섭(국민의힘, 강원 원주시을) 후보는 윤석열 정부 전반기를 이끈 경제 수뇌부다. 56조 원에 이르는 세수 펑크를 낳은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총리에서 정부 산하 청장까지 이어지는 윤석열 정부 경제라인은 이미 기재부 출신들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국회까지 기재부 출신 인사들로 채워진다면 관료-의회의 상호 견제와 감시라는 균형은 심각하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안도걸, 방문규, 김완섭, 송언석(국민의힘, 경북 김천시) 후보는 과거 정부 예산을 직접 다뤘던 기재부 '예산통' 출신이다. 지난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경우, 송언석 후보가 여당 간사, 김완섭 후보가 기재부 2차관으로 예산 계획 수립과 심의에 참여했다. 회의록도 없이 657조 원에 이르는 정부 예산을 재단하는 이른바 '소소위' 참석자 5명 중 2명도 이들이다.
김완섭 강원 원주시을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해 기재부 2차관 자격으로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 참여했다. 김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지역 예산 유치'를 홍보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후보들이 본인의 경력을 '지역 예산 확보' 공약에 활용한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해 소소위에 참석했던 김완섭 후보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지난해 강원지역 예산을 확보했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기재부 출신들이 관료와 정치권을 오가며 정부예산을 주무르게 되면 국회의 예산심의 기능이 심각하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민생·미래 위기 풀 골든타임...국민 대변할 전문가 후보는 태부족

유권자는 사회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정치는 해법을 내놔야 한다. 선거가 가진 본래의 사회적 기능이다. 전문가들은 극한의 정쟁 속에 치러지는 22대 총선에 이 기능이 빠져있다고 입을 모은다. 고물가·고금리 상황 속 민생의 위기, 저출산·저성장·기후위기 같은 미래의 위기 앞에 앞으로 4년간 국회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어느 때보다도 무겁지만, 정작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삼성과 기재부 등 재계, 관료를 대변하는 전문가 후보는 넘치는데 반해 다른 분야 전문가는 부족하다. 대응이 시급한 기후·에너지 분야 전문가는 각 당에 딱 한 명씩 있다. 분야별 안배를 고려해 환경 전문가를 영입하던 예전 선거때와 다를 바 없다. 총선 이후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PF 대출 위기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들여다 볼 금융 전문가 후보는 찾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에서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정치적 해법을 모색한다'는 선거 본연의 사회적 기능이 빠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양당은 약점으로 지적되는 분야를 보완하기 위해 비례후보를 배치했지만 국회 개원 전부터 잡음이 나온다. 국민의미래는 대구·경북 지방과 노동계를 대표하겠다며 당선 안정권에 한국노총 출신 김위상(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를 배치했지만, 정작 지역 시민단체들은 김 후보의 노조 복지기금 횡령 전력을 지적하며 부적격 후보라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시급한 민생·미래 문제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는 양당 체제가 전문성 있는 후보자의 출마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해 의정 활동을 펼쳐도 평가나 공천, 당선으로 연결되지 않다 보니 동기 부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전문가 후보·의원을 우선 평가하는 제도적 기반, △공직 선거 후보자의 이해관계를 투명하게 드러내 유권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제작진
취재오대양
촬영김희주
편집정애주, 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