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프로젝트] 헌법재판관 사건 뭉개기를 막아라 ①

2022년 12월 07일 14시 00분

정치가 토론하고 타협하는 과정인 것과 달리, 사법은 분석하고 평가해서 나오는 결론이다. 공동체 의사를 정하는 정치가 사법화하는 것이 최선일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정치의 사법화’가 21세기 현대 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란 데 있다.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이라면 정의로운 제도가 되도록 해야 한다. 사법은 우리 공동체의 운명과 개인의 행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한국 사법제도에 박힌 반헌법적이고 비민주적인 제도를 밝혀내어 바로잡는 <사법개혁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내년 있을 차기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앞두고, 일부 헌법재판관들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차기 헌법재판소장을 노리는 일부 재판관들이 자기가 주심을 맡은 사건을 재판관 평의에 부치지 않고 미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헌법재판은 입법부인 국회와 대통령 등 행정부를 견제하는 제도인데, 예민한 사건이 선고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이렇게 법정시한을 초과해서도 처리되지 않은 사건의 주심 재판관이 누구인지 헌법재판소에 문의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정보공개법에 따라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역시 거부됐다. 헌법재판소는 비공개 이유로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로서 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고려하여 공개하지 않고 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사법분야 전문가들은 헌법재판소법이 정한 처리시한을 지난 사건의 주심 재판관조차 헌법재판소가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헌법재판소의 주장을 하나씩 살펴본다.

1. 주심 재판관 공개가 재판 독립성 침해인가

헌법재판 사건의 주심 재판관이 공개되면 재판의 독립성이 침해된다는 게 헌법재판소 주장이다. 예를 들면 사건 당사자가 물리적 위협을 한다든가, 재판관 매수를 시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이 도리어 헌법재판관 지위를 욕보이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금도 전국 일선 법원에서는 수많은 피고인에게 사형과 무기징역을 비롯한 중벌을 선고하는 판사들이 이름과 얼굴을 내놓고 재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설명대로라면 이들 판사야말로 심각한 위협과 매수 유혹에 노출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막 임관한 판사부터 대법관까지 법관 모두가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를 위해 감당하고 있다. 명색이 헌법재판관이 자기가 어떤 사건의 주심인지 공개되면 공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국민이 부여한 헌법재판관의 의무를 부정하고 비하하는 것이라고 사법분야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뉴스타파는 헌법재판소에 2020년 6월30일 이전 접수되었지만 2022년 10월 31일까지도 선고되지 않은 사건을 주심 재판별로 요구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사건번호와 사건제목 뿐인 목록만 공개했다.

2. 주심 재판관 공개가 공정한 재판 방해인가

정보공개 비공개 사유들이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에 나와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이 가운데 제4호를 근거로 들었다. ‘진행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와 범죄의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 형의 집행, 교정, 보안처분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이다. 이 조항은 형사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인데, 헌법재판은 특정인에 대한 형사재판이 아니다. 더러 헌법재판소가 형사사건에 쓰이는 형법 조항 위헌성을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도 헌법재판소는 문제 형법 조항을 없앨지 놔둘지만 판단한다. 헌법재판소 주장대로 형사재판과 관련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형법 조항 이외 사건 주심까지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3. 위법 재판하는 재판관 명단도 비공개하나

헌법재판 사건 주심 비공개는 사실상 불법‧위법 행위 주체를 감추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라고 헌법재판소법 제38조가 정하고 있다. 이 안에 선고하지 않으면 위법이고, 불법이다. 그리고 뉴스타파가 공개를 요청한 자료는 법정시한 180일의 4.8배에 이르는 854일을 넘긴 사건과 주심 목록이다. 다시 말해, 위법‧불법에 해당하는 사건 심리의 책임자를 밝히라는 것이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제38조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훈시조항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은 헌법소원을 제기해야 하는 기간인 90일에서 하루만 늦어도 각하 결정을 받는다. 헌법재판관에게 적용되는 180일 규정이 훈시조항이라면 시민에게 적용되는 90일 규정인 제69조도 훈시조항이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그렇게는 재판하지 못하겠다면 적어도 어느 재판관이 헌법재판소법을 어기고 있는지는 시민에게 밝혀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주심 재판관 공개 거부는 헌법재판소법 제38조 위반 행위자를 숨기는 것이다. 
제작진
취재이범준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