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 지역 일간지 기호일보의 한창원 사장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노동조합원들에게 경찰이 전원 '불송치(죄가 안됨)' 처분을 내렸다. 한창원 사장이 노조를 형사 고소한 지 3개월 만이다.
지난 2월 뉴스타파와 인터뷰를 진행한 기호일보 이창호 노조위원장.
"보조금 횡령한 한창원" 피켓 문구가 허위 사실?
지난해 12월 28일, 한창원 사장은 기호일보 노조가 진행한 '한창원 사장 사퇴 요구' 1인 시위에 대해 노조원 전원을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노조원들이 시위 피켓에 쓴 '보조금 횡령한 한창원'이라는 문구가 사실과 달라 한창원 개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주장이었다.
기호일보 노조원의 1인 시위 모습. 한창원 사장은 '보조금 횡령한 한창원'이라는 문구가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취재진은 한창원 사장이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조금 횡령한 한창원'이라는 문구를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한 이유를 물었다.
한 사장 측은 먼저 법원 판결에 대해 "관례처럼 해오던 일이 문제가 되어 회사 대표로서 책임을 졌을 뿐 한창원 개인은 횡령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조의 피켓 문구를 두고는 "한창원 개인이 횡령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했다"며 "허위 사실이다"고 말했다.
'보조금 횡령한 한창원'은 사실...노조원 전원 '불송치'
하지만 한창원 사장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천남동경찰서의 수사 결과 통지서에 따르면, 기호일보 노조원들은 모두 '불송치(죄가 안됨)' 결정을 받았다. 기호일보 노조원들의 행위가 '명예훼손죄의 위법성을 조각(阻却)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기호일보 이창호 노조위원장이 받은 경찰 수사 결과 통지서.
'위법성을 조각했다'는 말은 곧 '형식적으로는 범죄의 구성 요건을 갖췄지만, 실질적으로는 범죄로 인정하지 않을 특별한 사유가 있다'는 의미다. 형법 제33장 310조에는 명예훼손죄의 위법성 조각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형법 제33장(명예에 관한 죄) 제310조(위법성의 조각)
노조의 시위를 굳이 법으로 걸자면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가 아니라 '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데, 이 또한 노조의 행위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죄가 안 된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인천남동경찰서 관계자는 "기존 판례, 노조가 적시한 사실의 내용, 사실의 공표 방법, 언론인이라는 특성 등을 고려한 뒤 노조의 행위가 공익 목적과 관련 있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최종연 변호사는 "기호일보 노조 시위에 허위 사실이 없었을뿐더러 노동조합법에서 정해진 정당한 활동으로서 면책된다고 보고 '죄가 안됨' 결정을 내렸다고 보인다"며 "사장 측이 이의신청을 하더라도 수사기관의 판단이 바뀌진 않을 듯하다"고 말했다.
기호일보 노조 "당연한 결과"...한창원 사장 "이의신청 안 하겠다'
경찰의 불송치 처분에 대해 기호일보 노조는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이창호 노조위원장은 "한창원 사장도 애초에 안 되는 사건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며 "그런데도 노조를 고소한 이유는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실제로 고소장을 받은 노조원들은 심적 부담을 느꼈고, 노조원의 가족들이 노조 활동을 만류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창호 위원장은 "현재 인천중부지방고용노동청과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한창원 사장의 '부당노동행위' 신고 건이 올라가 있다"며 "한 사장의 고소 목적이 노조 활동을 부당하게 위축시키려는 것이었다는 점이 드러났으니 노동청과 노동위원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기호일보 한창원 사장. (출처 : 기호TV)
뉴스타파는 한창원 사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한 사장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지 않겠다며 "경찰의 법적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