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이태원 참사 100일… 지지부진 진상규명, 왜?

2023년 02월 02일 20시 00분

오는 6일이면 159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꼭 100일이 된다. 그 사이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고 국회의 국정조사 결과보고서도 채택됐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물론, 대다수 국민들은 왜 그날 그곳에서 그렇게 많은 생명이 사라져야 했는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이태원 참사의 진상은 어디까지 드러났고 어떤 부분들이 설명되지 못했는지, 온전한 진상 규명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정리했다.

특수본 “예방 없고 대응 부실” 23명에 법적 책임 물어

참사 직후 꾸려진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사고 현장 주변의 관제·사설 CCTV와 SNS 게시물 등 180여 개의 영상물을 분석해 시간별 인파의 이동과 사고 당시 상황을 검증했다.
특수본 조사에 따르면, 오후 6시 반쯤 사고 골목은 주변 사람과 접촉 없이는 이동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오후 8시 반쯤 세계음식거리로 모여드는 인파가 최고조에 달해 사고 골목 초입인 T자형 삼거리를 중심으로 인파 이동이 멈췄다 움직이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어 오후 9시부터 T자형 삼거리 부근에서 ‘군중 유체화’(자의로 이동하지 못하고 떠밀려 움직임) 현상이 나타났다. 
오후 10시 15분쯤 T자형 삼거리의 내리막길 방향으로 밀집 인파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떠밀려 내려오며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넘어졌다. 위쪽 사람들 수백 명이 연쇄적으로 넘어져 눌리고 끼였다. 이로 인해 158명이 숨지고 196명이 다쳤다.
특수본이 발표한 사고 경위는 시간대별 밀집 인파 상황을 세부 분석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간 알려진 것과 대동소이하다. 
▲ 참사 당일 10시 15분 사고 골목길 CCTV 장면
특수본은 이 같은 참사가 일어난 데에 경찰과 소방, 지자체 등의 공동 책임이 있다고 봤다. 
우선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몰리는 인파의 안전 관리에 대한 법령상 책임이 있는 기관은 용산경찰서와 서울경찰청, 용산구청, 용산소방서, 그리고 교통공사다. 이들 기관은 코로나19 행정명령 해제로 기존보다 더 많은 인파가 이태원에 몰릴 것이 충분히 예측되었음에도 안전 관리를 위한 예방적 조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경찰은 6시 34분부터 ‘압사’ 표현이 들어간 112 신고전화가 계속 접수되며 위험 신호가 나타났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고 발생 후 경찰과 소방, 지자체, 교통공사가 모두 현장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빨리 전파하지도 못했다. 이로 인해 기관 간 협조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응급조치와 이송까지 늦어지며 피해를 키웠다. 
특수본은 이러한 책임을 물어 이임재 용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6명을 구속 송치하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17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 이태원 참사로 구속 기소된 경찰과 용산구청 관계자들
유가족들은 특수본의 책임자 처벌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 대표는 “특수본 수사는 처음부터 가족이 가족을 수사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경찰의 총수 격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 이른바 ‘윗선’에 대해 소환 조사조차 하지 않은 사실상 ‘꼬리 자르기 수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수사는 근본적으로 사법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어서 특정 법률에 위배되는 특정 행위로 인해 특정한 결과가 빚어졌음을 엄격하게 증명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고 현장에서 실제 대응한 인원들과 직접 지휘한 이들에게는 여러 구체적 법리 적용이 가능하지만 관리자 격인 경찰 총수나 장관의 법적 책임을 따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의 분노가 이해되는 것은, 적어도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져야 한다고 봤던 이상민 장관이 참사 초기부터 책임회피성 발언과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참사 후 첫 브리핑에서 “경찰을 더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라고 발언해 논란을 불렀다. 그러나 특수본 수사 결과로만 봐도 이 발언은 잘못된 것이었다.

“내 아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숨졌는지 설명이 없다”

유가족들이 특수본 수사에 만족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개별 희생자들의 정확한 사망 경위가 설명되지 않고 있어서다. 이종철 유가협 대표는 “유가족 가운데는 자기 아이가 살아 있는 상태여서 직접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했는데도 경찰과 구급대가 막아 끝내 숨졌다고 증언하기도 한다”라면서 “모든 아이들이 10월 29일 오후 11시경 이태원 노상에서 숨졌다고만 일괄 설명하고 있는 사망진단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한다.
▲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故 이지한 군 아버지)
이런 상황은 이태원 참사가 ‘골든타임’, 즉 희생자들을 살릴 수 있었던 시간을 특정하기 어려운 성격을 가지는 데서 비롯된다. 달리 말하면 159명 희생자들의 골든타임이 모두 제각각이었다는 얘기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의 경우는 모든 희생자들이 여객선이라는 독립적 공간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선체가 침몰하기 전까지가 골든타임이었다. 따라서 곧 침몰할 것 같다는 현장 보고가 있었음에도 승객 퇴선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과 책임을 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현장의 사람들은 넘어져 깔렸더라도 다리만 끼어 있다가 구조되기도 했고 비교적 뒤쪽에 선 채로 끼어 있었지만 몸통에 압박이 가해져 그 자리에서 숨지기도 했다. 호흡이 멈춘 채 구조된 뒤 심폐소생술을 받고 회생한 경우도 있었고 그냥 방치돼 숨진 경우도 있었다. 심폐소생술로 한숨을 돌리고도 병원으로 이송이 늦어져 숨지거나 이송 후 병원 치료 중 숨진 경우도 존재했다. 골든타임이 일괄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들은 여러 증언들은 유가족들의 분노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지 짐작게 한다. 아래 증언에 따르면 희생자는 오후 11시쯤 구조된 뒤 구급 대원으로부터 생존 상태임을 확인받고도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한 채 2시간 이상 방치된 끝에 숨졌다. 
답답했던 건, 제 친구를 거의 1시간 반 정도 계속 응급처치를 했어요. 맥박이 있어 가지고. (맥이 있었어요?) 네, 맥이 있어 가지고 친구를 들고 골목을 조금씩 내려갔어요. 조금 들고 내려가서 또 CPR 하고 또 내려가서 CPR 하고 그랬는데 구급차가 없으니까... 그래서 제가 달려 내려가서 거기 있는 구급대원한테 “맥박 있는데 왜 안 실어가냐!”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제야 오더라고요. 구급 대원이 맥을 짚어보더니 계속 CPR을 하라고 해서 거기 대로변에서도 한 30분 정도 계속하고... (구급 대원이 직접 맥을 짚어보고, 맥이 있다는 걸 구급 대원이 직접 확인을 해줬다는 말씀이죠?) “맥이 있다. 계속 CPR 하세요”라고 말하고 어디로 갔어요. 그래서 또 CPR을 한참 하고 있었는데 10분, 15분 정도 지나서 간호사 분인지 구급 대원 분인지 정확지 않은데 “이제 안 된다”라고 “사망하셨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곤 어떤 여자분이 립스틱을 꺼내서 친구 배에 ‘N’ 표시를 했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A씨의 친구
특수본 수사 결과 속에도 이 같은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건 아니다. 초기 상황 판단과 전파가 늦어 지원 요청도 지연됐고, 현장에서 환자 분류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이송도 지연됐다는 점이 미흡한 사후 대처의 내용으로 포괄적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특수본 수사는 개별 희생자들이 실제로 처했던 상황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다루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내용이 비어있었던 셈이다.

여당 몽니에 조사기간 절반 날린 국정조사…경찰 미배치 이유 일부 확인

경찰의 이른바 ‘가족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은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야 3당의 국회 국정조사가 추진됐지만 여당은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게 우선”이라며 버텼다. 결국엔 여론에 떠밀려 지난해 11월 24일부터 45일간의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번엔 새해 예산안부터 의결해야 국정조사 위원들을 투입하겠다는 여당의 몽니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국정조사 개시는 12월 21일에야 가능했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그냥 날아가 버렸다. 여야가 다시 조사 기간을 10일 연장하기로 했지만 충실한 조사가 되기엔 턱없이 짧은 기간이었다.
여야 위원들이 가장 집중한 것은 이상민 책임론이었다. 기본적으로 야당이 정부의 실정을 질책하고 여당은 이를 방어하는 식으로 흐르기 쉬운 것이 국정조사의 특성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기간 동안 내실 있는 조사를 하기 어렵도록 만든 것은 이상민 장관만큼은 무조건 지키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시그널이 근본 원인이 됐다. 결국 여야의 이상민 공방 속에 국정조사는 참사의 법적 책임을 넘어서는 근본적이고 구조적 원인 조명과 제도적 개선책 제시라는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일부 성과는 있었다. 군중 안전 관리의 핵심 주체인 용산경찰서와 서울경찰청이 용산으로 이전한 대통령실 앞 집회 관리에 더 집중하느라 이태원 핼러윈 축제 현장에 기동대 등 경찰력 투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임재 용산경찰서장 등의 증언을 통해 간접 확인됐다.
또 현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마약 근절 정책이 경찰 일선까지 영향을 미쳐 핼러윈 축제 현장을 군중 안전 관리보다 마약 단속의 기회로 인식했다는 점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특수본 수사’ 이유로 자료 제출 극도 부실… “수사가 조사를 방해한 꼴”

국정조사가 부실하게 진행된 또 다른 이유는 조사 대상 기관들이 자료 제출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참사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고 복원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들이 대부분 제출되지 않았다. 
▲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제출 및 미제출된 핵심 자료 현황
참사 장면이 담긴 사고 골목 CCTV 영상은 국정조사에 아예 제출되지 않았다. 특수본이 자신에게 독점적으로 임의제출된 자료라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방청은 사고 이후 현장 대응 상황이 일부 담긴 구급대원 바디캠 영상 14건과 구급차 CCTV 영상 5건을 제출했다. 교신·통신 기록의 경우 119 신고전화와 소방 무전망 기록은 녹음파일 없이 녹취록으로만 제출됐다. 경찰 지휘 무전망 역시 녹음파일 없이 녹취록으로만 작성돼 정식 제출되지 않았고, 각 의원들은 열람을 통해서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112 신고전화 기록은 녹음파일도 녹취록도 아닌 ‘내용 요약본’ 형식으로만 간단히 처리해 제출됐다.
각 조사 대상 기관들은 “현재 특수본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중요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그러나 어떤 자료가 수사상 기밀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자료를 갖고 있는 기관이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 2014년 세월호 국정조사 당시 해경이 제출했던 주요 자료들
과거 사례를 봐도 이러한 기관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2014년 6월부터 8월까지 90간 진행됐던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당시 조사 대상기관 중 하나인 해경은 구조 실패와 관련해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를 받고 있던 처지였다. 그럼에도 해경은 구조헬기 4대와 초계기 1대에서 촬영된 채증 영상,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경비정인 123정의 채증 영상은 물론, 해경 본청과 서해청의 경비전화, TRS 무전교신, 진도 VTS 교신, 122 신고전화 등 승객 구조와 관련된 각종 교신·통신 기록에 대한 녹취록과 녹음파일을 빠짐없이 제출했던 바 있다.

경찰 "대통령실 핫라인 녹음 않는다"... 해경도 세월호 국정조사 이후 녹음 중단 

경찰은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요구한 참사 당일 경찰청-대통령실 간 핫라인 통화 기록도 제출하지 않았다. “핫라인 전화는 녹음 기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핫라인 녹음과 관련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녹음을 한 적이 없다고 취재진에게 밝혔다.
▲ 경찰청-대통령실 핫라인 녹음 기록 제출 요구에 대한 경찰청 답변서
하지만 2014년 세월호 국정조사 당시엔 해경청과 청와대 사이의 핫라인 통화 기록이 녹음파일로 제출됐던 바 있다. 업무용 통화 및 교신의 녹음과 관련해 경찰과 해경의 규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지를 여부를 확인하고자 해경에 문의했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해경도 지난 2014년 11월 9일부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핫라인뿐만 아니라 각급 해경 상황실 경비전화와 TRS 무전 교신을 녹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 2014년 11월부터 경비전화, 핫라인, TRS 무전교신에 대한 녹음을 중단했다는 해경의 답변서
세월호 국정조사 당시 제출됐던 해경의 각종 채증 영상과 교신·통신 기록들은 이후 구조 실패 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기록들이 없었다면 구조 실패 원인 규명은 아직까지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해경은 2014년 국정조사가 끝난 지 불과 2개월여 만에 사실상 모든 교신·통신 기록에 대한 녹음을 중단했다. 그 당시까지는 녹음이 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각종 교신·통신 기록이 문제가 되자 반드시 녹음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교신·통신에 대한 녹음을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향후 대형 해상 참사가 발생해도 해경이 적절한 대응을 했는지를 판단할 중요한 근거 자료는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유가족·야당, “독립조사기구 추진”… 세월호 관련 위원회 맹점 극복해야

경찰 특수본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과 국민들이 바라는 수준의 진상 규명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을 남긴 채 종료됐다. 이에 유가족들은 특별법을 통한 독립적 조사기구를 설치해 진상조사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야3당이 단독 채택한 국정조사 결과 보고서에도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추진을 명시돼 있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독립적 조사기구를 설치해 운영한 것은 세월호 진상규명 과정에서 3차례 존재했다. 2015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시작으로 2017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를 거쳐 지난해까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활동했던 바 있다. 
그러나 세월호 관련 조사위원회들의 조직 구성과 운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재난·참사 연구자인 박상은 전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은 △여야가 의석 비율대로 조사위원들을 추천함으로써 위원회 자체가 또 다른 정치적 공방의 장처럼 되어버렸던 문제, △선박 운항과 해상 구조 등에 대한 전문가 없이 변호사와 법학자 등 법률가 중심으로 조사위원을 구성했던 문제,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분리시킨 조직 구성,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신청에만 의존한 조사 과제 설정 등을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기구 설치를 위해선 여야의 합의를 통합 특별법 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과거 세월호 관련 위원회의 조직 구조와 운영 방식의 맹점들을 개선하고 보완하기 위한 고민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특별법 제정 과정 자체가 또 다시 여야의 정치적 공방 소재가 될 우려가 크다. 이럴 경우 가장 큰 고통이 돌아갈 곳은 다시, 유가족과 피해자들이다.
제작진
영상취재신영철, 정형민, 김기철
연출송원근, 박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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